나만의 길을 찾는다는 것
서울식물원 보타닉홀에서 김선미 작가님의 신작 ‘정원의 위로’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잽싸게 신청 후 방문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서울식물원에는 주말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로비 내에는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으며, 올리브를 주제로 한 영화도 상영되고 있었다. 이렇게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 더 많아지면 좋을텐데!
김선미 작가님은 2020년 동아일보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의 첫 팀장님이셨다. 팀장님께서는 내가 인턴으로서 하는 모든 일들을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칭찬해주셨다. 그 에너지는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고, 그때부터 동기부여와 칭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동아일보 기자 생활 27년차. 내가 태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 회사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해오셨다는 것. 끈기와 성실함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지금 한 회사를 3년만 다녀도 오래 버텼다고 칭찬해 주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뵌 팀장님은 어느새 <정원여행가>가 되어계셨다. 이 정체성 뒤에 수많은 고민과 노력과 경험이 겹겹이 쌓여있다는 것을 안다. 팀장님은 똑똑하시면서도 다정했으며,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보여주시던 분이었다.
이 날 2시간 동안, 크게는 정원 그리고 작가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작가님으로서 팀장님을 뵌 시간이니 이제부터는 ’작가님‘이라고 하겠다.
작가님은 약 1년간 프랑스에서 생활하셨다. 그때 이탈리아 시칠리아와 같은 지중해의 자연정원과, 그곳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도와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게 지중해의 정원 같은 공간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공공 정원이 더 많이 생기고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그 나라와 지역의 경쟁력이라고 하셨다. 완전 맞는 말이다.
책에 담긴 빌라 줄리아, 스페인 세비야의 알카사르 정원, 남프랑스의 정원(에즈, 앙티브, 엑스), 여백서원 등 전 세계 자연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주셨다. 모두 처음듣는 공간이나 단어였는데, 아, 세상에는 내가 전혀 모르고 살아가지만 알고 다가가면 좋은 것들이 정말 많구나라는 깨달음.
본인은 생계형으로 기자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성덕'이라며 부러워 한다고 하셨다. 나도 친구에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서 칼럼도 쓰시고 책도 내신 멋진 기자님이 있어'라고 팀장님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작가님의 커리어 스토리는 사뭇 달랐다.
자신은 특종기자도 아니고, 단지 워킹맘이자 평범한 기자라고 했다. 빛나던 시대는 지나가고 후배에게 자리와 길을 내어주는 시기가 왔는데, 너무나 힘들고 치열하게 살아왔음에도 소위 말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해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정원에 대한 관심은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꼭두새벽 매일 뒷산을 산책다닐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 맞다, 나는 팀장님의 정말 말 그대로 '매일' 올라오는 아침 산책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시네' 라고 생각했었지. 그 때부터 다양한 새와 꽃들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식물이 '평화로움'을 준다는 사실을 예습하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사 논설위원을 지내며 광화문 한복판이 내려다보이는 단독 룸까지 받았지만, 일이 맞지 않아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의 장점이자 단점인) 주어진 일은 숙제처럼 생각하고 묵묵히 해내며 그 시절을 꾹 참고 견뎌내 왔던 것.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좋아하는 게 명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발령난 곳은 소위 말하는 '자존심 상하는' 직책이었는데, 돌아보니 역시 쓸데 없는 경험이란 없다고 자연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 엄청난 자양분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셨지만 분명 힘든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그녀의 회복탄력성과 끈기가, 결국 이렇게 독보적으로 빛나는 정체성과 <정원의 위로>라는 책을 탄생시킨 것.
*2020년 작성한 블로그 포스팅에도 팀장님의 좋은 태도와 마음가짐이 기록되어 있다.
결국 기자들이 아무도 안하는 영역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조경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고, 상사가 '조경에 대해서 뭘쓰려고?'라고 물었을 때 '모르겠네요?'하고 시작한게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연재라고 한다. 대망의 첫 시작은, 완벽히 준비되고 나서가 아니라 말그대로 무대포로 찍박골정원을 취재하는 것부터였다고 한다. 정원은 사람 손으로 가꾸는 자연이니,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고 한다.
'알면서 논하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모르면서 논하는 건 안된다'는 생각으로 숲 해설가 자격증도 취득하고, 지금은 서울대 조경학과 박사과정까지 밟고 계신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건 기사와 책을 발행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 가는 여정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정원에 대해 더 많이 안다는 보장은 전혀 없고, 이 책을 계기로 계속 공부하고 깊어지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도심 속 정원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보니, 북토크 참석 전부터 이런 의문이 들었다. 답은 뻔할 수 있지만 직접 답을 듣고 싶었다.
Q. '시간이나 돈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살기 팍팍한 사람들이 정원의 위로를 누리기란 사실상 어려운 것 같다. 그들이 정원을 찾아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집에만 무기력하게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 보편적인 사람들이 정원을 더 많이 찾고, 정원이 주는 위로를 받게 할 수 있을까요?'
A. '그래서 도시 정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집에서 SNS만 하고, 우리들의 정신건강도 멀쩡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맘먹고 차타고 나가야 하는 예쁘고 완벽한 정원보다, 가까운 곳에 많이 생기는 게 중요하다. 주변에 걸어서 10분 이내 정원이 많이 생겨야 한다.'
우리에게는 계속 걸어야하는 그늘없는 천만송이 국화밭보다, 순천만습지처럼 햇빛을 가려주는 우산과 편히 앉아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벤치가 있는 '쉼의 공간'으로서 정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나도 회사가 공덕사옥에 있었을 때는 업무 하다가 점심시간에 경의선 숲길을 걷는 게 그렇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또 우리집 앞 사거리 신호등에도 작은 정원이 가꾸어져 있는데, 그 곳을 지나갈 때마다 괜시리 기분 좋다.
많은 분들이 참석한 강연 형태의 북토크였지만,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마치 팀장님과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고, 또 어떻게 인생을 살아오셨는지에 대해 듣는 기분이라 참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마지막 싸인회 시간에는 제주 비건책방에서 사온 엽서를 건넸고, 팀장님이 인스타그램으로 전해주신 마음도 너무 감사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숲을, 정원을 사랑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김선미 기자의 정원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담긴 시크릿가든 시리즈와 <정원의 위로>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