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다시 사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계속 씁니다
내가 글을 쓰는 주제는 나에게 힘들었던 일, 고통스러웠던 일이다.
너무나 일상적인 어떤 일들이 왜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지에 대해서 쓴다.
또는 내가 극복해야만 했던 상황에 대해 어떻게 극복했는 지를 쓴다. 사람들에게 혹시나 도움을 주기 위해, 그리고 그보다 나 자신에게 꼭 맞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쓴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대처해야지 하고 지침을 글로 써서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놓기 위해 쓴다.
최근에도 일상적인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글을 쓰려면 그 상황에 대해 기술해야 하고 나의 부족한 면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지나간 그 상황과 사건을 다시 생생하게 복귀해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미룬다. 바로 쓰고 싶은데 써지지가 않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는 며칠, 몇 주일을 미루지만 그전에는 그렇게 몇 년, 몇 십 년을 미뤘다. 어릴 때부터 힘들고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밝고 긍정적인 모습 이면에 늘 크고 작은 좌절과 극복이 있었다. 새로운 상황들이 나에게는 항상 더 어려웠다.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오리가 물 밑에서 열심히 발을 움직이듯 그렇게 보이지 않게 항상 더 많이 애쓰고 있었다.
티 나게 어려움이 표가 났던 적도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인이라면 결국 좌절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고 무너지는 것을 주변에서 볼 수밖에 없다. 10대 때부터 이미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티가 나게 어려움을 표시했지만 그냥 일반 학교에 다녀야 했고 꿋꿋이 비슷하게 학업를 마치고 일반 회사에 들어가 평범해 보이게 일상을 살아갔다.
아무도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처와 좌절이 쌓이다 보면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다. 이런 번아웃을 피하기 위해 나에게 맞는 환경을 구축하며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일반 사람들도 감당하기 힘든 극한의 부정적인 환경에 그저 놓아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구보다 크게 고통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왜, 왜 너만 그렇게 힘들어해, 왜 그렇게 예민하고, 왜 그렇게 나약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미 너무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쉬지 않고 발을 젓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저 잠시 쉬어야 될 때가 온 것뿐이다. 다른 오리들이 열 번 발을 저을 때 백 번 젓고 있었더니 조금 더 빨리 지쳐버린 것뿐이다.
이런 내 삶을 보여주기 위해 글을 계속 써야 한다. 실제로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다. 사회적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하거나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리게 하는 것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속마음을 이야기를 잘 못하니까, 보통 그냥 말 안 하고 넘기니까, 쿨해 보이고 캐주얼해 보이니까,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니까 사람들은 더 쉽게 선을 넘는다. 공감능력이 좋으니까 더 쉽게 자기의 부정적인 감정의 쓰레기를 나에게 던지기도 한다.
실제의 나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인데 어떤 사람들은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멘탈리티가 약하지는 않다. 강해야만 했다. 내 삶을 지탱하려면. 그리고 일상 속 작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인생을 살아가려면.
그래서 고통을 다시 살아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야만 한다. 책으로 나를 대변하고 싶다. 얼굴이 알려진 스펙트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다큐멘터리에도 나오고 싶고 직접 영상도 찍을 것이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저기요, 전 자폐인이니까 이런 상황 감당 못하거든요. 선 넘지 마시죠. “라고 면전에 곧장 말하기 어렵다.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스펙트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튜브 등에서 직접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고기능 자폐인들이 자폐에 대해 설명하는 채널을 제외하고는 신경전형인이 설명하는 내용은 잘못된 내용이 많다. 뇌의 구조가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이다. 신경다양인이 신경전형인과 가장 비슷한 것은 겉모습이고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은 많이 다르다. 학습을 하는 방식,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당연히 차이가 있다. 지능이 좋은 경우, 그리고 특히 여성의 경우 다른 것이 티 나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모방을 아주 잘하는 것뿐이다.
이런 내 삶을 대변하기 위해 글을 열심히 쓸 것이다. 나의 자폐에는 뿌리가 있다. 동생들이 왜 이렇게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고, 왜 나에게는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 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기록을 남겨 놓고 싶다. 그리고 40-60대, 혹은 그 이상 인생 선배님들이라도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데 내 기록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제도, 오늘도 좌절했지만 눈물 흘리는 대신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