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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모하는 현명하지 않은 습관에 관하여

by 해센스

치과에 갔는데 나이에 비해 어금니의 마모도가 심하다고 했다. 음식을 먹을 때 주로 왼쪽으로 씹는지 왼쪽은 더 마모가 많이 되었다고 한다.


왼쪽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쯤, ‘아. 나는 음식을 먹을 때 주로 왼쪽으로 먹는구나. ’하고 자각했다. 예전에 오른쪽 이를 치료하고 나서 오른쪽 이를 아끼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후에 주욱 왼쪽으로 주로 씹으니 결과적으로 왼쪽 치아가 더 닳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때 불필요하게 턱근육에 과하게 힘을 주고 와작와작 씹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미 치아가 뾰족뾰족해서 그렇게 힘을 주지 않아도 음식물이 잘게 쪼개질 텐데, 불필요한 힘을 너무 주어서 턱뼈와 치아를 손상시키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인가 이미 턱관절이 아파서 턱관절 전문 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턱 보톡스라는 것도 처음 맞아봤다. 옆광대가 튀어나온 것에 대해서는 신경이 쓰였어도 사각턱에는 별 불만 없이 살던 때였는데, 오로지 턱근육을 덜 쓰게 할 목적으로 주사를 맞았다.


그 당시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도 턱뼈가 비대칭적으로 마모가 있다고 했다. 여름에 열을 식히기 위해 컵에 얼음을 채워놓고, 얼음을 와작와작 깨어 먹는 습관이 있었는데, 아마 그 습관 때문에 턱뼈가 그렇게 마모된 것 같았다.


턱관절 병원에 방문했던 이후로 더 이상 생얼음을 깨서 먹지는 않았지만, 턱근육을 과하게 쓰는 습관은 고치지 못했다. 어렸을 때 아빠도 이가 깨져서 치과에 간 적이 있었는데, 게껍질 같은 뾰족하고 딱딱한 음식도 겁 없이 와작와작 먹어서 그렇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음식을 조심스럽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저작근이 발달된 유전의 힘을 이기지는 못했고, 매일매일의 씹는 습관이 쌓여 결국 더 발달된 턱근육과 마모된 턱뼈와 치아가 남게 되었다.


쓸데없이 턱근육에 힘을 주는 습관은 치아를 마모시키지만, 현명하지 못하게 시간과 돈, 에너지를 쓰는 습관은 삶을 소모시킨다.


얼마 전 몇 년 전에 알게 된 지인이 일하는 곳 근처로 우연찮게 가게 되는 일이 있었다. 연락해 볼까 생각이 스쳤다. 결혼식 축의금도 냈는데 싶었다. 인정욕구로 똘똘 뭉쳐있던 시절에 알게 된 지인이었다. 그는 그 당시 내 인정욕구를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느꼈는지 나를 내심 싫어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 알게 된 사실이었다.


머지않아 ‘축의금은 매몰비용이잖아. 여기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쓰면 더 마이너스인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와 그때의 그는 일면 비슷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달라졌다. 나는 이제 자유를 최우선으로 추구하고, 그는 아마 여전히 인정욕구가 중요할 것이다. 이렇게 가치관이 많이 달라져 버렸는데, 만나서 시간을 보내봤자 소모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소모적인 만남에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확 줄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결혼식에 와줄 사람이잖아. ’라며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며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같이 있을 땐 기가 빨렸고, 헤어지고 나면 뭔가 찝찝하게 마음에 불편한 것이 남았다. 그의 말을 통해 사고방식이나 성향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불편했고, 속마음을 못 숨기고 내뱉게 된 내 한두 마디 말이나 차갑던 행동에 그 역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서로에게 찝찝함과 상처를 남기던 인연을 자연스럽게 정리한 후,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잘 맞는 사람이란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지인이 함께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즉, 나랑 잘 맞는 사람이 그 사람도 함께 잘 맞는다고 느껴야 한다. 처음에 겉모습만 보고는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내면을 알게 된 후에는 애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서로의 모습을 알아보고 좋아하게 된 동네 친구가 있는데, 어떤 기회가 되어 그 친구가 그 찝찝했던 인연과 함께 자리할 일이 있었다. 동네 친구는 그 사람이 너무 불편했다고 했다. 그 사람이 함께 자리하는 내내 거의 두 시간 동안 대화를 혼자 장악하며 TMI를 늘어놓았는데, 너무 불편하고 시간이 아까웠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그 사람에 대한 불편함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어떤 사람과 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확실한 판단이 섰다.


결혼식을 위해 나를 소모하는 인연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겠다는 결심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어쩌면 결혼식에 썼을 돈을 나를 위해 써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비를 후회한다는 것이다.


쇼핑을 좋아하지만 가치관에 맞지 않는 물건을 사는 것과 여행에 많은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한다.


방에 고요히 머무르며, 또는 근교의 자연을 거닐며 삶에 내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이상이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은 이유 역시 고요한 시간을 늘리고 싶어서이다.


몇 년 전에 좋은 침대와 침구, 커튼에 투자했던 것은 이상에 맞는 합리적인 소비였다. 그런데, 최근에 현재의 불행이나 우유부단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했던 사치적 소비나 즉흥적인 여행은 후회가 된다.


손에 꼭 쥐고 있던 자산을 그대로 쥐고 있었으면 경제적 자유와 그에 따라오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앞당겼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감정적인 소비를 해버렸던 나 자신이 안타깝고 아쉽다.


여행은 관점과 취향을 넓힐 수 있고 마음에 진정한 휴식을 주는 정말 좋은 활동이지만 아직 어떻게 여행하는 것이 좋은 지를 알아가고 있는 단계인 것 같다. 소모적이고 소비적인 여행이 되지 않으려면 한 도시나 장소에 정들 만큼 충분히 머무를 것, 그리고 목적에 맞는 숙소를 택할 것, 이 두 가지가 내가 지금까지 깨달은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소비가 나의 이상에 어울리는 소비인가, 그리고 그때의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과 가까워지는데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래도 덜 소모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집에서 고요하게 휴식을 취하고 자연을 거니는데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소비인가?

경제적 자유를 이뤘을 때, 또는 할머니가 됐을 때 함께 대화하고 여행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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