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간의 행복, 그리고 2주간의 우울

NO가 NO가 아닌 문화

by 해센스

올해 두 번째로 심리상담실을 찾았다. 지난번 상담 때 커뮤니케이션에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는데, 그건 차차 진행하고 우선 오늘은 결혼 파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입장이 다른데 계속 이야기하면 서로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상처만 되니까 집에서는 이 이야기를 안 하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상담실에서 털어놓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파티 전에는 싸우더라도 계속 의견을 관철한 부분은 잘했고, 이제는 지난 일이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 것도 좋은 결정이라고 했다. 불편한 감정들에 대해 오늘 여기서 이야기해 보면 된다고 했다.


파티 전에 왜 싫은지 분명히 이야기했고, 그도 의사를 알았고, 가장 주축이 되어 파티를 주도한 회사사람도 내가 이런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동생과 동생 여친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들을 파티에서 다시 봐야 하니까 더 싫은 마음이 들어서 안 가겠다고 말했고, 그랬더니 좋게 설득하는 대신 “오지마. 나 혼자 개망신 당할게. ”라며 사실상 안 갈 수가 없게 만들었다고 했다.


파티 당일에도 이게 맞나 싶어 울었다고 했다. 친구들을 소수지만 초대해서 안 갈 수도 없고, 이렇게까지 아니다 싶으면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간다면?‘의 시나리오도 생각했지만, 안 가면 정말 이 관계는 그날로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갔다. 당장 헤어지기는 싫어서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갔다. 근처 회사에 다니는 언니와 만나서 함께 갔다. 귀한 집 공주님 스타일인 언니는 평소에도 그렇지만 그날에도 나보다 더 예쁘게 입었다. 나는 운동화에 슬랙스, 최소한의 웨딩 느낌이 나는 흰색 펀칭 블라우스를 입었다. 전혀 화려함은 없었다. 기분이 좋고 내켰다면, 내가 주인공임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그렇지만 세련됨은 포기하지 않는, 평소에 수수한 옷으로 가렸던 이목구비를 훨씬 더 하나하나 빡빡 튀게 해주는 옷으로 골랐을 테지만 말이다.


평소 피부표현은 기초 위에 톤업선크림만 바르는 것으로 하는데, 그날엔 톤업선크림에 약간의 컨실러를 더한 차이뿐이었다. 평소와 달리 눈에 섀도우를 살짝 발랐는데, 눈물과 땀으로 파티에 참석한 저녁쯤에는 거의 사라져 있었다. 기분이 좋고 내켰다면, 반차내고 샵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갔을지도 모른다.


내가 갈지 말지도 미정이라 친구들도 하루이틀 전에 초대한 마당에 옷이나 메이크업은 당연히 뒷전이었다. 마음이 이미 주인공이 아니었고 애초에 내 마음은 묵살한 파티였으니까. 사실상 주인공이 아닌데, 주인공처럼 하고 갔다면 더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원하지도 않았던 파티를 마치 이 날을 위해 준비했다는 듯이 가는 미친 x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봐도 그렇게 하지 않아서 너무나도 다행이다.


준비했으니까 참석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보이되 이런 것을 일부러 나서서 하지는 않을 소탈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내가 소탈하다거나 소탈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내 강력한 원치 않음을 그저 소탈함으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의 나는 진정성 있는 주목이라면 너무 좋아하고 진짜 나를 위한 파티라면 당연히 Yes다. 파티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남의 의사에 끌려가기가 죽도록 싫었던 것인데, 마치 원래 파티나 주목받는 것 따위는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 것처럼 그날의 옷과 메이크업으로 나름대로 포장했다. 나 자신에게 최소한의 진정성을 유지하면서 주최자와 참석자들의 체면을 배려한 행동이었다.


그날 아침에도 파티 싫다고 하다가 그는 내게 버럭 했다. 꼭 오늘까지 이래야 하냐며 눈물범벅으로 헤어진 게 무색하게, 그는 역으로 언니와 나를 마중 나왔다. 세상 젠틀하고 착한 남편 같아 보였다. 밖에선 정상인인척 해야 하지 않냐고 종종 말하는 만큼이나 그날도 집 밖에서는 천사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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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common sense)의 각도를 기울이는 생각(Hailey's sense)을 씁니다. #신경다양성 #ASD #ADHD #심리 #연애 관심있는 분들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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