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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무의식적 차별

- 몰라서 또는 선입견으로 인하여

by 노을

최근에 구입한 책 "지하철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를 보다가 문득 오래전 내가 여자여서 겪었던 일중에 피시시 웃음 나는 일화가 생각났다. 기분이 나쁠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편견에 의한 일이라는 생각은 든다.


매번 중국집에서 일어났던 그.사.건 - 곱빼기는 내껀데예-


내가 자라던 그 시절에는 가구당 자녀들이 적게는 넷 많게는 반타스(6명) 이상인 경우도 많았다. 우리 집도 그랬고 내 친구 딸막이네도 그랬다. 둘 다 딸부잣집 둘째였고 내 친구는 본명인 명선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딸막이로 불렸다 ㅎ - 딸 이제 그만이라는 염원이 담긴 아명 - 식료품 및 반찬가게 둘째 딸인 딸막이와 나는 동네 절친이었고 뭐든 함께했다. 중학를 들어간 1977년, 그때는 외식 문화라고 할 것도 없었다. 뭔 행사가 있으면 중국집을 가는 정도. 어쩌다 짜장면에 맛을 들인 두 소녀는 짜장면이 매일 먹고 싶었지만 우리는 그 사랑스러운 짜장면을 매일 사 먹을 돈 같은 것이 절대 없는 중1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딸막이가 동네 "튼튼 분식"에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 했다.


"가시나야 돈은?"

"응 내 쫌 있다"


그냥 용돈을 좀 받았나 했고 짜장면 먹을 생각에 마냥 신나서 좋기만 했다. 쌱~~다 먹고 입가도 쌰~악 닦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으로 분식집을 나섰다.

다음 날 또 딸막이가 짜장면을 제안한다.


"가시나 미칫나?"

"와?"

"우리가 돈이 어딧노?"

"내 쫌 있다"


........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내 친구 딸막이는 나와 짜장면을 먹기 위해 엄마 가게에서 돈을 꿍쳤다는 것을 ㅋㅋㅋㅋ.....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딸막이가 들켜서 혼쭐이 났거나 한 기억은 없다 그리고 언제까지 그 아슬아슬한 짜장면 투어를 계속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짜장면 사랑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했고 성인이 되어 경제활동을 시작했을 때 짜장면을 하루에 두 번 먹는 것 정도는 기본이었다. 점심시간에도 어김없이 짜장면을 먹고 싶어 했고 양은 늘 곱빼기였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지점은 여기다. 곱빼기를 가져온 분들은 묻지도 않고 곱빼기 그릇을 남자 동료 앞에 놓았다. 첨엔 "아 이거 껀데예" 했지만 계속 반복되기에 그러려니 하고 테이블 세팅이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그릇 바꾸기를 했다.


이 일은 "여자는 적게 먹는다"내지는 "여자가 짜장면 곱빼기를 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별일 아니었지만 나는 매번 섭섭했다. 뭐가 섭섭하냐고? 중국집 사람들이 나의 짜장면 사랑을 몰라주어서 ㅎㅎ.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선입견으로 세상과 상대를 재단하고 차별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아마도 반성할 일이 억수로 많을 것이다......


오늘부터 나도 각성된 인간이길 소망만 하면 안 되고 그렇게 되자.


"남자라도 항상 짜장면 곱빼기를 시키지 않는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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