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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토닥 Mar 16. 2023

[로맨스는별책부록] 인생이라는 책 한 권, '나'챕터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시간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

  얼마 전, 연말 시상식에서 이종석 배우가 이런 멘트를 남기며 자신의 열애소식을 전했다.

그의 팬이거나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기에 난 그의 인터뷰를 보며 '사랑고백도 드라마 남주같이 하네.'라고 생각했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내가 한국방송작가협회에 지원서를 냈을 때 주제로 정했을 만큼 내게 많은 여운과 의미를 남긴 드라마다. 30대 여성, 엄마, 직장인인 내게 여자주인공 강단이는 '희망'의 아이콘이었고, 비록 드라마 속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기도 했었다.

인물을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한 메인 포스터. 이미 여기서부터 이 드라마는 내 취향이었다.


  37세 전업주부인 강단이(이나영役)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30대 여성 중 한 사람이었고, 그중에서도 ‘경단녀’ 딱지가 붙은 비경제활동인구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엄마의 삶을 살아내는 동안 과거 카피라이터로서의 커리어는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운명이라 생각했던 남편은 바람이 나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나버렸다.


   싱글맘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던 단이는 다시 사회로 돌아가 제 이름 석 자로 살아가려 노력했지만 7년이란 경력단절에 사회는 '어딜 다시 기어 나오냐'며 그녀를 쉽사리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잘못도 불성실함 때문도 아닌 그저 '엄마'로 살았을 뿐인데 세상으로부터 감 떨어진 구닥다리 아줌마 취급을 받아야 했던 단이는 매일을 좌절했고, 억울해했고, 서러워했다.

"7년 전에 회사 그만둔 뒤론 쭉~ 노셨네요?" // "내가 어떻게 지킨 직장인데 이제 와서 기어 나와"


  그런 단이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고, 걱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차은호(이종석役).

최연소 편집장이자 소설작가, 교수, 인기셀럽 등 소위 잘 나가는 모든 명함은 다 가진 '까칠한 완벽주의자' 은호지만 그런 그를 유일하게 무장해제시키는 단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살던 집이 철거위기에 놓이자 단이는 은호 몰래 은호집 가정부 알바를 하며 그의 집 창고에 몰래 숨어 살게 되고 그러다 결국 은호에게 사실이 발각된다. 그녀의 이혼소식을 접한 은호는 언제나 그랬듯 소리 없이 슬픔을 삼키며 이제는 마음껏 그녀를 지켜주기로 결심하고 둘의 동거가 시작된다.  

단이가 보고 싶어 그녀의 집 앞을 찾아갔다. 그렇게 매번 울고 있는 단이를 보고도 다가설 수 없었던 은호.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 은호에게 진 빚도 갚고, 딸아이의 유학비도 벌어야 했던 단이는 과거의 화려한 경력과 고학력 스펙을 숨긴 채 은호가 일하는 출판사 <겨루>에 고졸 계약직으로 지원하게 된다. 잘 나가는 대기업 출신 카피라이터에서 無스펙 잡일전담 계약직 신세가 되었지만 단이에겐 '강단이씨'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7년 만의 직장이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웬만한 경력직보다 뛰어난 카피라이팅 능력, 마케팅 감각을 가진 그녀였지만 고졸출신 계약직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에 한계가 있었고, 능력을 발휘해 볼 기회조차 없이 공채출신과의 차별과 상사의 기획안 스틸 등 불합리한 일을 겪으며 한 번 더 좌절하게 된다.

주요 업무 : 택배 부치기, 다른 사원들 뒤치다꺼리하기, 심부름하기 + 가끔은 상사에게 아이디어도 빼앗기기

  

  그녀가 작은 상처 하나 받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는 은호지만 그녀에게 자신은 그저 '가족 같은 동생'일뿐임을 알기에 묵묵히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단이가 무너질 때마다 옆에서 말없이 어깨를 내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매력적인 단이, 그런 단이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아 자기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은호. 하지만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숨기고 숨겨봐도 단이를 볼 때마다 자꾸만 흘러나오는 사랑을 감출 수 없던 은호는 결국 단이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처음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신세 때문에 누군가 다시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단이는 언제나 곁을 내어주고, 자기보다 더 자신을 소중히 대해주는 은호를 보며 그를 향한 감정이 결국은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참 아름답네요.'라고 말하던 나쓰메 소세키가 생각나는 밤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학력 위조 등의 문제에 휘말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 단이지만 끝내 그토록 바라던 <겨루>의 정직원으로 재입사하게 되고 7년 전의 그녀와는 다르게 온전히 '강단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그랬듯 '가장 오래된 책'이자 '날마다 새로운 문장을 발견하는 책' 같은 연인 은호가 함께이다.


한 권의 책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강단이'를 한 권의 책이라 했을 때 이 드라마는 그녀의 수많은 챕터 중, 아래 두 편을 보여준 느낌이다.

  나는 이 두 챕터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이유는 나 역시 단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출근할 곳은 있었지만 회사와 아이 사이에서 매일 밤 갈등했고, 둘 중 하나라도 놓칠까 두려워 내 몸을 혹사하며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는 내 본심을 애써 외면했다. 그런 하루가 이어지면서 나는 지쳤고 병들어갔으며 나를 사랑하는 법을 점차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 단이는 취업 설문지에 작성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통해 내가 내게 하고픈 말을 대신해주었다.

단이의 진심 어린 독백 장면을 보면서 난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그동안 나를 제대로 돌보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내 인생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단이의 인생이 마냥 신데렐라처럼 흘러가지 않은 것도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내겐 되려 위로가 되었다. 경단녀가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취업시장에서의 냉대, 정규직과의 차별…. 드라마와 현실 속 냉혹함이 크게 다르지 않아 더 가슴 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마저 귀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는 단이의 모습을 통해 잠시 잊고 살던 '삶에 대한 내 열정'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사랑해 주는 은호의 모습은 내게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세상 단 하나뿐인 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사람이 웃으면 좋고 울면 마음이 아파 미치겠고 힘들면 나도 힘들고 옆에 없으면 보고 싶고…'

그것만으로도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게 지극히 아름답다 느껴졌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둔 단이와 은호가 오래도록 함께하길 응원하며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16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난 내가 그 <한 권의 책> 같은 사람이고 싶다 생각했다. 강단이가 내게 그랬듯 내 글 속의 인물이 어떤 이의 지독한 현실을 바꿔주진 못해도 그의 하루 속 평안과 위안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내 인생을 <꽤 괜찮았던 한 권의 책>으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속 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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