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마음과 이름표, 그리고 반려견 몽이

2025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저작권 글 공모전

by 이동혁 건축가
Screenshot 2025-04-23 at 12.50.03.JPG

제목: 내 마음과 이름표, 그리고 반려견 몽이


얘야, 오늘 아빠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특별할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강아지, 몽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빠가 글을 쓰며 겪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 그리고 그 모든 걸 연결해 주는 ‘이름표’에 대한 이야기지.


몽이는 아빠가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 우리 가족이 입양했지. 작은 손바닥만 한 몸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며 낯선 글쓰기의 시간을 함께해 줬단다. 아빠가 글을 쓰다가 지치거나 막힐 때면, 몽이는 조용히 다가와 내 무릎에 턱을 얹곤 했지. 그 작고 따뜻한 체온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단다.


그런 몽이에게도 이름표가 있었지. 작은 금속판에 ‘몽이’라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어. 혹시라도 길을 잃었을 때, 몽이를 다시 우리 품으로 데려올 수 있는 유일한 표식이었지. 그 이름표 하나에 몽이의 존재와 우리가 쌓아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단다.


아빠가 글을 쓰며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적이 있었어. 어떤 날은 위로가 되었고, 어떤 날은 희망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글 쓰는 일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글이 낯선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걸 발견했어. 제목도, 문장도, 심지어 문단의 호흡까지 모두 같았지. 단 한 가지 다른 게 있었다면, 그 아래 적힌 이름이었어. 아빠의 이름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적혀 있었단다.


그 순간 아빠는 깨달았어. 글도, 몽이의 이름표처럼 누군가의 삶을 증명하는 표식이라는 걸. 누군가가 몽이의 이름표를 떼고 자기 이름을 붙였다면 아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겠지. 글도 마찬가지였단다. 단지 문장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마음과 시간을 가져간 거니까.


그래서 아빠는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단다. 뜻밖에도, 그는 글을 베낀 것이 잘못인지도 몰랐다고 했어. 그냥 너무 예쁜 글이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지. 그 말에 아빠는 화보다 안쓰러움이 앞섰단다. 좋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가져가도 되는 건 아니니까.


얘야, 저작권이라는 것은 복잡한 법 조항이 아니라, 바로 그 ‘이름표’ 같은 거야.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글이나 사진, 그림 같은 창작물에 붙은 이름표지. 그 이름표를 지키는 일은, 그 사람의 삶과 마음을 지켜주는 일이란다. 반려견의 이름표가 그 아이를 되찾아주는 열쇠인 것처럼, 저작권은 창작자의 길을 지켜주는 유일한 약속이기도 해.


그날 이후, 아빠는 내 글에도 정성껏 이름을 붙였단다. 단지 내 이름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허락 없이 어디로 흘러가지 않도록 지켜주기 위해서 말이야. 몽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름표를 달고 나가는 것처럼, 아빠도 오늘도 이름을 달고 글을 쓰지.


몽이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너도 많이 자랐지. 글이란 건 반려견을 돌보는 일과도 참 닮아 있어. 마음을 쏟고, 시간을 들여 함께하고, 아무리 익숙해져도 항상 조심스레 다뤄야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을 불러주고, 그 존재를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기억하렴. 마음은 빌려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눌 수는 있지만, 그 시작에는 언제나 존중이 있어야 한단다. 글이든, 사진이든, 노래든,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것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어. 그 이름을 지켜주는 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야.


몽이의 이름표를 바라보며, 아빠는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네가 언젠가 네 마음을 글로 꺼낼 날이 온다면, 그 글에는 네 이름이 꼭 함께하길 바란단다.

그 이름 하나로 너의 이야기가 지켜지고, 너의 마음이 세상과 아름답게 연결되기를 기원하마.


"아빠는 언제나 네 마음의 이름표가 되어줄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