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오후를 시각화 한다면 그건 나른한 고양이가 아닐까.
월화수목금, 우리는 필요이상의 소음에 노출되고 하고싶지 않은 말을 해야하며 아주 빈번하게 거짓 웃음을 지어야한다. 출퇴근 지옥철과 바쁜 현대인의 삶은 나를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만든다.
그야말로 에너지 방전. 앵꼬다 앵꼬.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일하지만 그로인해 나만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아이러니.
그래서일까. 새벽에 잠들면 다음날 피곤하다는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잠들지 않기 위해 버텨낸다.
주말이 기다리는 금요일 저녁이 되서야 긴장감이 풀린건지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가장 이른 시간에 잠이든다. 억울하게도. 늘어지게 자다가 일어나는 토요일 오후.
야미와 마주하는 그 시간부터가 진정한 쉼이 시작된다.
집사와 고양이의 기척만 존재하는 시간.
편안해진 눈과 귀, 고요한 공간을 매우는건 냥냥거리는 야미의 수다 뿐이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바람을 느끼려는건지 창 밖이 궁금한건지 볕이 가장 잘드는 캣타워 위에 자리를 잡는다. 새소리, 사람소리가 들리면 수염은 잔뜩 앞으로 쏠리고, 눈은 요리조리 분주해 지지만 대부분 가만히
볕에 털이 따끈해 질때까지 자리를 지킨디. 가끔 아래를 골똘히 내려다 보기도 하는데 당최 알 수 없다.
무얼 보는걸까.
나는 소파에 가만히 야미는 캣타워에 가만히 둘 다 아무것도 하지않지만 무언갈 하는 그 시간이 가장 큰 행복이다. 볕에 따끗하게 데워진 털을 만지기도 하고 코를 박고 비비기도 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좋다. 얼굴에 붙은 털이 잘 떨어지지 않지만, 눈에 알러지가 있어 이후 가려움은 내가 감당해할 몫이지만, 알면서도 포기가 안되는건 어쩔 수 없다. 이건 집사의 특권이니까 누려야지!
야미는 출퇴근을 마중하는 다정한 고양이지만 거리두기를 하는 친구라 집사의 시간을 방해하는 법이 없다.
방해꾼을 굳이 꼽자면 그건 집사랄까.
그래서 토요일 오후를 같이 보내느 우리는 각자 자고싶을 때 까지 자고 누워있고 싶을때 눕고
늘어지게 늑장을 피우고 게으른 시간을 보낸다. 야미랑 노곤한 시간을 보내다보면 평일 내내 닳아 없어졌던 에너지가 충전되는게 느껴진다. 눈에 귀여운 생명체가 자꾸만 보이는데 충전이 될 수 밖에.
야미를 만나지 못했다면 토요일 오후를 내가 이토록 좋아했을까.
고양이는 참 묘하다. 평범한 순간에 고양이가 들어가면 그림체가 달라질만큼.
집사라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더 넘치는걸지도 모르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귀여운건 힘이 세고 귀여움중에
으뜸인 고양이는 여러 세상을 구하고 있다는 것. 일단 나의 세상은 야미가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