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초 모 매체에 기고할 목적으로 쓴 글이었으나, 요 정도의 비판적인 논지조차 게재가 어렵겠다는 편집자 의견에 따라 매체 게재를 포기하고 제 브런치에 업로드합니다. 뭐 이런 류의 잡지들이 여러 기획사들과 이런저런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럴 거면 애초에 가이드를 정확히 줬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유주제라고 던져 놓고서 막상 글을 다 써서 송부하니 부분 수정도 아니고 논지를 아예 바꿔달라니요.
# 더불어 이제는 K-POP신이 거의 성역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주요 매체에서는 오직 성과에 대한 찬양만 이어질 뿐, 마땅히 비판해야 할 부분에 대한 언급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네요. 주요 대형 기획사에 신 전체가 머리채 잡혀 휘둘리는 형국이랄까. 2NE1의 코첼라 출연 언급 자체를 삭제해 달라는 말엔 그저 헛웃음만 납니다. 이런 시덥잖은 글 조차 반려가 된다면 제가 칼럼을 쓰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매체의 존재 이유는 그저 기획사 찌라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건가요? 뭐 대단한 글도 아닌데,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밤입니다.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렸던 <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 >에선 전세계 K-pop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이 있었다. 바로 2NE1이 그룹 해체 후 무려 6년만에 완전체로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 단독으로 배정된 무대는 아니었던 탓에 ‘내가 제일 잘 나가’ 한 곡만을 선사한 채 무대를 내려왔지만, 짧은 퍼포먼스가 가져온 임팩트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국내/외 매체들은 그들의 깜짝 등장을 대서특필했고, 팬들 역시 격렬한 리액션으로 팀의 귀환을 반겼다. 개인적으로는 반가움도 반가움이지만, 전 소속사에 대한 그룹 나름의 일갈을 보는 듯해 내 속이 다 후련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여러 번 언급된 바 있지만, 이들의 해체는 본인들의 뜻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소속사에 의한 일종의 통보에 가까웠고, 그로 인해 대중과 강제로 결별했다. 이 사건은 K-pop신이 아티스트가 아닌 소속사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안타까운 사례로 남았다. 그렇게 돌고 돌아 6년이 지난 2022년, 그들은 아직도 상표권을 양도받지 못한 채 YG의 눈을 피해 ‘일단 사고를 쳐놓고 수습하는’ 방식의 깜짝 무대를 펼쳤다. 비밀리에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예전보다 아이돌의 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는 팀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K-pop신의 격렬한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자연스레 소멸해 가거나, 이후의 커리어를 위해 팀을 떠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분명한 것은 팀을 유지하고픈 이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금 몸 담고 있는 곳을 떠나, 자기주도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많은 그룹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은 문제다. 본인들의 상품적 가치를 다른 곳으로 이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H.O.T.도 상표권 문제로 인해 재결합 공연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쓰지 못했고, 비스트는 결국 하이라이트라는 새로운 명함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티아라는 오랜 법적 분쟁 끝에 겨우내 자신들의 왕관을 되찾기도 했다. 거의 30년에 가깝게 이어져 온 아이돌 신이건만, 아티스트들은 점점 커져가는 영향력과 상관없이 소속사와의 관계에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30년전 수익분배와 관련한 헤게모니 싸움에서 완벽히 승리를 거둔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가수들의 권리는 퇴보 일로를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시스템에 대한 높은 의존도 역시 독립의 발목을 잡는다. 이미 K-pop신에서의 성공은 체계화된 시스템과 기획사의 네임밸류가 8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A&R이나 프로모션 등 활동에 있어 너무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보니 홀로서기가 쉽지 않은 면도 있다. 섣부른 이적은 유지되던 인기마저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리스크를 담보한다. 마치 대기업에서 20년을 근무한 부장이 회사를 나오면 별다른 경쟁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최근 선사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특히 최근 컴백한 갓세븐의 사례에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상표권을 양도해 준 JYP의 호의와 대형 레이블인 워너뮤직코리아의 지원 아래 다시금 그룹의 제2막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면 팀의 상표권을 정확히 다른 회사로 가져온 사례로는 신화 이후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2AM이나 티아라 같은 경우는 별도 소속사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새 앨범의 준수한 퀄리티엔 이들이 직접 음악작업을 진두지휘해 온 역량과 경험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익숙한 시스템을 벗어나자마자 작품의 완성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우를 여러 번 봐온지라,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특히 고무적이다.
멤버 일부가 다른 소속사로 적을 옮겼음에도 그룹 활동을 유지하게끔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소녀시대가 데뷔 15주년을 맞아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완전체로는 수영과 서현, 티파니가 SM을 떠난 후 처음이자 5년만의 활동인 셈이다. 비록 아직은 대다수의 멤버가 원 소속사와 계약을 유지하고 있기에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측면이 크나, 20주년을 맞아 전폭적인 지원하에 컴백한 S.E.S.의 사례를 돌이켜보면 H.O.T.나 신화 시절 보다는 유연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활동 말기 방치에 가까웠던 f(x)의 경우를 보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티스트의 역량이 절대적인 K-pop신임에도, 정작 그 전면에 나서는 플레이어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다. 격한 경쟁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궈낸 한명한명의 역량이나 존재감은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부를 제외하고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악 산업 또한 ‘인간 본위’의 영역이다. 인간이 너무 소비재처럼 여겨지는 지금에서 나아가, 좀 더 ‘아티스트’ 중심이 산업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연습생부터 글로벌 스타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말이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얻었음에도 어느 순간 연차가 찬 데다가 신입그룹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아무런 플랜을 받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는 그룹들도 적지 않다. 무대에 서고 싶어도 소속사의 계획이 없어 아무런 역할을 부여 받지 않는 이들의 인생은, 그리고 이들을 기다리는 팬덤의 타는 목마름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아직까지는 소속사의 파워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조금씩 아티스트가 정당한 방법 하에 주도권을 가지고 원 소속사의 바깥에서 새로운 챕터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상황과 기반이 갖추어지기를 희망한다. 나는 그저, 일부가 아닌, 모두가 함께 행복한 K-pop신을 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