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분슌 온라인 기고 건입니다.
안녕하세요. 황선업입니다.
이 글은 지난 7월에 일본 분슌 온라인에 실렸던
뉴진스에 관한 기사에 대한 번역 전 버전인 국문본입니다.
분슌 온라인의 경우, 경험상 원 글이 그대로 실리는 경우가 없고,
대부분 순서가 바뀌거나 내용이 축약되는 경우도 있고,
표현이나 뉘앙스가 살짝 변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원체 분슌이 자극적인 경향을 띄는 매체인 탓이 크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분슌 쪽의 의뢰를 받게 되면 굉장히 좀 예민해지더라고요.
아무래도 자극적인 글쓰기는 제 방향성이 아니기에,
최대한 담백하게 쓰고, 번역된 내용도 몇번 체크를 해
됐다 싶어 내보내긴 했습니다만,
그러다보니 역시 조회수가 약간 저조할 수 밖에 없더라는 ㅎㅎ
어쨌든 아래 링크에 실린 글의 원본을
뒤늦게나마 이 곳에 업로드해 봅니다.
뉴진스의 인기 요인에 대한 내용을
제 생각대로 좀 풀어봤고, 여기에 일본 현지의 입장 및
일본진출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 봤는데요.
뭐 어떻게 보면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실 만한 그런 내용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튼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년 뉴진스의 섬머소닉 등장은 일본 대중음악계에 있어 일종의 사건이었다. 출연을 발표한 직후 티켓은 빠르게 소진되어 갔고, 공연 당일에는 한낮에 마린 스타디움이 꽉 차는 보기 드문 광경을 만들어냈다. 그룹은 여느 헤드라이너 만큼이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주최 측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일본 정식 데뷔도 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로 컸다는 사실에 관계자들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 NHK 홍백가합전 >까지 진출을 완수, 2023년 한 해 동안 유례없는 속도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선명히 새겼다.
그리고 대망의 6월, 드디어 일본 싱글을 발표하고, 동시에 도쿄 돔에서의 팬 미팅을 통해 정식으로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SM에서 샤이니와 엑소, 에프엑스, 레드벨벳 등의 비주얼 디렉터로 독보적인 스타일을 선보여 왔던 민희진이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손을 잡고 선보이는 팀이라는 점에서 데뷔 때부터 큰 화제를 몰고 왔다고 해도, 해외에서까지 이렇게 빠르게 그 인기가 퍼져나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KPOP 그룹 중에서도 단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뉴진스. 이들은 과연 어떤 매력으로 인해 이렇게 단기간에 일본의 대중들을 사로잡게 된 것일까.
뉴진스에 대한 대중의 목소리 중 자주 들려오는 것이 “나는 원래 KPOP을 듣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뉴진스만은 예외다”라는 말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뉴진스 열풍에 있어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현재 정립된 KPOP은 화려하고 강렬하다. 치열한 시장이기에 강한 임팩트를 단시간 내에 줘야 하고, 그렇기에 사운드나 퍼포먼스가 조금의 빈틈도 없이 계속해서 자극을 준다. 이것이 큰 포만감을 가져다 주지만, 한편으로는 높은 피로도로 인해 계속 가까이 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약간은 공식화 되어 있는 탓에 일부 팀들을 제외하고는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이유로 KPOP이라는 것은 이미 호불호의 영역으로 정착해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이 정확히 양분된 상황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뉴진스의 음악에는 그런 ‘KPOP 팬’에 속하지 않는 이들을 기꺼이 자신들의 곁으로 몰려들게 하는 매력이 존재한다. 이들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미니멀하고 자연스럽다. ‘Attention’에서 느껴지는 알앤비의 무드와 ‘Hype Boy’의 일렉트로 팝, ‘OMG’의 저지 클럽과 ‘Ditto’나 ‘Super Shy’의 투스텝, 개러지 사운드 등 1980년대~90년대의 음악 트렌드를 적극 차용해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적이고도 감각적인 사운드로 다듬었다. 여기에 뚜렷한 선율을 가진 훅을 기반으로 고저 차가 크지 않은 다이나믹한 속삭임을 만들어낸다. 팝 뮤직에 명민하게 움직였던, 하지만 KPOP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던 일본 대중들이 솔깃하게 여길 만하다. 이 지점에서 그룹의 타깃은 ‘KPOP 애호가’에서 ‘일반 대중’으로 단숨에 확대된다. 그렇게 KPOP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대거 수요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폭발력은 다른 아이돌 그룹과 명백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익숙하면서도 듣기 편한 그들의 음악은 확실히 기존의 KPOP에서 상당부분 벗어나 있다.
더불어 이런 노래에 Y2K를 필두로 한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미감과 바이브가 숨어있다. 1990년대~2000년대 뮤직비디오에서 볼 법한 연출과 복고적인 스타일링을 전면에 내세우는가 하면, 모두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로우파이의 영상미는 퍼포먼스와 인물 샷을 고민 없이 나열하는 콘텐츠들과는 또 다른 감성을 자아낸다. 세기말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추억을 아련하게 곱씹어 볼 수 있고, 미 경험한 사람이라면 팍팍한 삶 속에 이런 환상적인 시대가 있었음을 대리 만족하며 몰입한다. 이 과정을 통해 동경과 유사 연애 기반의 판타지와도 같은 KPOP의 기본 뼈대가 산산이 부서진다. 동시에 그들을 우리의 일상으로, 추억으로, 한편으로는 있었을 법한 과거로서 존재하게끔 한다. 이는 당연히 모든 콘셉트를 총괄하는 민희진의 역량 덕분이다. 그가 보여준 독보적인 미감, 그리고 본래 가지고 있던 정형화된 KPOP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지 않았던 방향성의 그룹을 탄생시킨 셈이다.
그가 처음으로 그룹 기획의 전권을 잡은 뉴진스엔, 이제껏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반영되어 있다. SM 시절과 달리 직접 데모를 수집/선별했고, 자신이 곡을 정함과 동시에 믹싱/마스터링/보컬 디렉팅 등의 디테일까지 다듬었다. 다수 작곡가 협업 체제에서 벗어나 프로듀서 250의 감각에 신뢰를 보냈던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 뮤직비디오의 색채감, 카메라 워크 연출 역시 그의 영향력이 강하게 묻어난다. 여기에 기존의 공식이나 패러다임을 깨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데뷔 당시 티저 영상이나 프로모션 이미지 없이 곧바로 ‘Attention’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고, 뮤직비디오 제작 경험이 없던 창작 집단 돌고래유괴단에 제작 전권을 맡기기도 했다. 전적으로 기획자의 감각과 의도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분업화된 현재의 시스템 보다 SM의 이수만이나 DSP의 이호연처럼 제작자 한 명에 의해 진두지휘 되던 1세대 아이돌에 더 맞닿아 있다는 느낌도 든다.
결국 그들에 대한 열광은, 결국 뉴진스라는 그룹이 ‘탈 케이팝의 공식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케이팝’인 덕분에 가능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기존 KPOP 팬들이 다른 그룹에 관심을 보이는 바운더리 내에서의 소비가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음악과 비주얼의 차별화된 매력을 통해 일반 대중 전체에 어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덕분에 한국 역시 세대 통합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모습이며, 일본 또한 非 KPOP 팬들이 가세하며 뉴진스가 사회적 현상이 되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 들어 뉴진스는 한국과 일본의 투-트랙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각국의 문화를 명민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선보인 마이애미 베이스 기반의 신곡 ‘How sweet’는 사실 가요를 즐겨들었던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할 수밖에 없는 트랙이다. 1990년대 디제이 디오씨(DJ DOC)의 ‘머피의 법칙’을 필두로 구피의 ‘많이 많이’, 유승준의 ‘가위’ 등 해당 스타일을 차용한 노래들이 큰 인기를 얻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 데뷔 싱글에 실려 있는 ‘Supernatural’은 어떤가. 이 곡은 고전적인 뉴잭스윙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애초에 한 시대를 풍미한 장르다. 팝 마니아라면 바비 브라운과 쟈넷 잭슨을 거쳐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로, 한국의 리스너들이라면 현진영이나 듀스나 언타이틀로 그 기억이 이어질 법하다. 더불어 이 곡엔 일본 싱글임에도 한국어와 영어 비중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음악적인 지향점에 있어 별도의 현지화 없이 하던 대로 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뮤직비디오까지 감상하고 나니, 이건 일본 대중들에게 훨씬 큰 정서적 파급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러 일본 아티스트들과의 연결고리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사노 모토하루의 < VISITORS >, 쿠보타 토시노부의 < Such a Funky Thang! >이나 미시아의 < Mother Father Brother Sister > 등에서 목격한, 일본 블랙뮤직의 선구자들이 구사했던 뉴잭스윙 특유의 리드미컬함이다. 이는 친숙함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찬란했던 일본의 8~90년대 풍경을 되새기게 하는 매개체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우타다 히카루가 < First Love >를 통해 일본 음악신에 이식한 도회적이고도 아련한 정서가 더해진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이 앨범은 지금까지도 오리콘 역대 앨범 판매량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일본 음악의 황금기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작품.
여기에 비주얼적으로는 스피드의 스포티한 스타일링과 에너지와 활기 넘치는 퍼포먼스가 감지된다. 스피드는 지금에 와 캐릭터를 강조하며 판도를 바꾼 모닝구 무스메 등장 이전 ‘실력파 아이돌’의 마지막 세대라 평가될 정도로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기도 하다. 여기에 시티팝이나 네오 시부야계의 영향 또한 엿보이는 등 이 한 곡을 통해 ‘자신이 좋아했던 일본 음악’을 발견하는 경험을 유도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음악사에 새겨져 있는 영광의 순간들, 그 정서를 완벽히 이해해 뉴진스의 음악에 심어 놓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또 하나의 수록곡 ‘Right now’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뉴진스라는 브랜드의 확장성이다. 이전에 등장했던 파워퍼프걸과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타카시와의 협업을 통한 ‘슈퍼플랫 플라워’까지 등장. 한/미/일을 대표하는 트렌디함을 주축으로 한 선명한 색감이 뮤직비디오의 러닝타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는 음악을 넘어 그룹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확립,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의류는 스트리트 패션의 산 증인이자 지금까지도 트렌드 세터로 활약 중인 후지와라 히로시와 손을 잡는 등, 음악을 넘어 그야말로 전방위적 문화 아이콘이자 IP로서 나아가겠다는 야심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팬 외의 이들을 주목시키기 위해 보다 넓은 영역의 대중들을 포괄할 수 있는 거장들을 적극 초빙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활동 범위를 예상보다 훨씬 넓게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진스는 걸그룹 계보로 봐도 남다른 영역에 위치한다. ‘이성’ 혹은 ‘유사 연애 대상’ 측면이 강했던 1~2세대에서 벗어나 걸 크러시를 기반으로 한 자기중심적인 여성상과 그룹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중시한 3~4세대와는 또 다른 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러움과 솔직함,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공동체로서의 긍정적인 모습이 타 팀들이 보여주는 인위적인 강인함을 오히려 압도한다. KPOP 특유의 판타지에 지친 Z세대들은 이와 같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또 다른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특유의 아우라와 함께 파워풀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민지, 평소에는 러블리한 느낌이지만 상황에 맞춰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하니, 이국적인 비주얼과 함께 다양한 톤으로 음악에 힘을 더하는 다니엘, 기본기로 무장한 뛰어난 춤 선으로 무대 위 킬링파트를 도맡는 해린, 트렌디한 모델상을 가져 천상 아이돌이라 불리는 혜인까지. 멤버들의 개성은 각자 뚜렷하지만, 이들이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팀’으로서의 모습이다. 마음이 맞는 이들이 모여 무대를 즐기는 모습에서 ‘걸그룹’이라는 젠더의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KPOP’ 그 자체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더불어 그것들이 한국적인 장소와 문화, 배경 들을 통해 펼쳐지는 상황에서, 유사한 문화권에 있는 일본이 이를 보다 가까이 느끼고 즐기고 있다는 인상 역시 강하게 들기도 한다.
이들이 또 하나 증명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일본 진출에 있어 해당 국가의 멤버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KPOP 트레이닝은 단순히 춤과 노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많은 연습생이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은 만큼, 학업이나 인성에 대한 내용들도 점차 비중을 높여가는 중이다. 여기에 당연하게도 기획 단계부터 세계를 타깃으로 하기에, 어학은 필수로 따라붙는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 계산해 철저하게 준비시키는 이 시스템은, 결국 명확한 개성과 차별화된 지향점만 있다면 그 외의 것은 모두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뉴진스는 시스템 너머에 있는 존재들이다. 단순히 프로세스의 고도화만으로 이 그룹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희진이라는 기획자의 독보적인 센스. 일부 세대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뚜렷한 존재감과 정체성을 가진 멤버들.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결코 놓지 않는 노스탤지어 기반의 음악과 영상. 각 국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정서가 철저히 반영된 전략. 음악 뿐만 아니라 일종의 브랜드화를 통해 팀명처럼 ‘청바지(Jeans)’과 같은 보편적인 대중 문화 그 자체로 자리하겠다는 각오와 야심. 이러한 정체성에서 파생되는 보편적인 매력은 이미 남녀노소라는 구분 점을 아득히 넘어버린 상황이다.
지금 기세로 보면 2020년대는 분명 ‘뉴진스의 에라’로 기억될 확률이 높다. 해린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도쿄돔 팬 미팅은 분명 그 역사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가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이것이 추후 일본 음악신에, 또한 뉴진스 본인들과 대중들에게 있어 어떤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뉴진스라는 역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