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원짜리 전쟁

by 선우비

드디어 부산콘서트홀에 들어갔다.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느낀 건, 아이돌 콘서트 예매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었다.

클릭할 때마다 “이미 선점된 좌석입니다”라는 문구가 떠서 당황했지만, 간신히 맨 꼭대기에 솟아 있는 작은 포도알 두 개를 따낼 수 있었다.

매달 열리는 부산시향의 정기공연이고, 가격은 8천 원.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달려드는 거냐, 부산 시민들아!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콘서트홀, 국내 두 번째 빈야드 스타일 공연장을 경험해보고 싶어 했다는 뜻일 테지. 바로 나처럼.


빈야드홀을 처음 경험한 건, 베를린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홈인 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히치콕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들었다.

좋은 좌석은 얻지 못했지만, 사운드의 밀도와 울림이 워낙 좋아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 실험적인 음악들을 들으며, 내가 현대 음악을 이렇게까지 좋아했구나... 깨달음을 얻기까지 했다.

두 번째 경험은 서울 롯데콘서트홀이었다.

개관 소식을 듣자마자 예매창에 달려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개관 공연을 예매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을 선보이는 만큼 생상스의 <오르간>이 레퍼토리에 포함됐다. 오르간 소리는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홀의 음향은 정말 인상 깊었다.

그 이후로 괜찮은 공연이 있을 땐 롯데콘서트홀을 찾아갔고, 특히 해넘이 공연은 몇 해 연속 빠지지 않고 관람했다. 거의 대부분 아주 만족스러운 체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세 번째는 도쿄 산토리홀이었다.

롯데콘서트홀이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진 그곳이 궁금해서, 도쿄 여행 중 아무 공연이나 보자며 예매를 시도했다. 마침 도쿄 필하모닉의 정기공연이 있었고, 운 좋게 좋은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다.

클래식하면 일본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꽤 혼잡스러울 줄 알았는데,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도쿄 3대 교향악단 중 하나라던데, 의외였다. 하긴 그땐 부산시향도 R석이 반도 안 차던 시절이었다.


놀라운 건 또 있었다.

관객의 대부분은 혼자 온 할아버지들이었다. 관객 중 학생(특히 여학생) 비중이 꽤 많은 우리나라에 비해, 극심한 남초 현상이 꽤 낯설었다.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잘 차려입은 아저씨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천국같은…

이후에도 몇 번 도쿄에서 클래식 공연을 봤는데, 혼자 온 노년 남성 관객은 여전히 많았고, 부부동반도 드물어 보였다.

좋은 건 둘째치고 왜일까? 궁금해.


공연 자체는 아쉬움이 많았다.

금관이 자꾸 튀어나와서 집중이 어려웠고, 빈야드 특유의 울림이 과하게 작용하면서 오히려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게 공연장 탓인가 싶었지만, 훗날 산토리홀에서 관람한 다른 연주는 훌륭했기에, 결국 그날 레파토리나 연주력 문제였던 걸로.


그리고 어제, 마침내 네 번째 빈야드홀인 부산콘서트홀에 입장했다.

부산시향의 정기공연이었고, 프로그램은 베토벤과 브람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201 구역, 그러니까 꽤 높은 층에 자리를 잡았는데, 소리의 질감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층까지 올라오며 소리가 뭉치고 단단해져서, 더 조화롭게 들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저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면서, 브람스 특유의 우울한 정서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해 줬다.
시향의 브람스를 자주 들어본 나로서는 연주의 완성도 자체보다, 이 공간이 만들어낸 울림의 감각에 더 감동받았다.

앞으로 부산시향은 부산문화회관과 부산콘서트홀을 번갈아 사용할 것 같다.
같은 연주를 들어도 콘서트홀 쪽이 더 낫게 들릴 테니, 문화회관에서의 공연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물론, 이런 고민조차도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부산에도 이제 빈야드의 시대가 열렸고, 나는 앞으로도 이 홀의 울림에 중독되어 다시 예매창 앞에 앉게 될 거라는 사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멈췄던 선율이 다시 흐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