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안식처 1

추석특집 단편극장 8

by 선우비

* 세기말 PC통신과 인터넷 초창기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오래 묵혀둔 단편소설을 공개합니다. 당시의 공기와 낯선 설렘을 함께 느껴보세요.



사무치는 한기라는 것이 이런 걸까. 뼈를 저미는 추위에 나는 눈을 떴다.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워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여기가 어디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손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으려 했지만, 팔을 조금만 들어 올려도 손끝에서 끊어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새된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왔고, 그 소리는 벽에 부딪쳐 다시 내 귀를 때렸다.

엉치뼈가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딱딱한 바닥에 오래 앉아 있을 때 느껴지는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여기가 침대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의 좁은 공간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또 시작이군.’

어릴 때부터 반복해 온 버릇이었다. 아버지의 주먹이 나를 향할 때, 아이들의 놀림이 도망치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 나는 장롱 속이나 침대 밑, 다용도실 안 같은 데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 쥐새끼 같다고 했다.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의 좁고 막힌 공간이 주는 완벽한 어둠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오래된 옷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 건조하게 뭉친 먼지의 부드러운 감촉은 세상이 남긴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그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다. 술에 취하면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가거나, 지하철의 철제 캐비닛 안으로 들어가려 발버둥을 치곤 했다. 심지어 건물 담벼락 사이에 끼인 채 여섯 시간 넘게 방치된 적도 있었다. 김영하의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의 주인공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중학교 시절, 정신과 의사는 내 상태를 ‘폐소애호증’이라 불렀다.

“폐소공포증보단 낫잖아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쥐새끼로 불렀다.


지금 이 공간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릿속도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 지끈거렸다. 술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게이바 <레온>에서, 영수와 함께였다. 그의 차가운 시선을 안주 삼아 발렌타인을 미친 듯이 들이켰다. 영수는 묵묵히 술만 따라줄 뿐,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귀신이라도 본 듯 성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담을 통해 억지로 불러냈을 때,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손님, 이러시면 정말 곤란해요.”

손님? 게이바 종업원이 고객에게 쓰는 당연한 호칭이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나를 ‘진형 씨’라고 불렀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지독한 한기 탓에 몸의 감각이 거의 사라진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 이곳에 숨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고, 팔 역시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게 어쨌다고. 영수를 떠올리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고, 지금 상태가 그와 함께 한 술자리보다 더 힘들지도 않았다.

내가 고백했을 때 영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농담 아니냐며 웃어넘기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보름째 하루도 빠짐없이 <레온>을 드나들고 있었다. 순전히 영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양주만 마셔대는 손님이라며 반겼고, 최근 헤어진 애인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 고백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술값으로 천만 원이 넘는 카드빚을 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단 한 번도 부킹이란 것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날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기에, 난 술만 마셔댈 뿐 그에게 고백을 하지 못했다.

차라리 계속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영수는 나를 단순히 거절한 게 아니었다. 그는 온몸으로 나를 거부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두통이 서서히 가시는 것 같았다. 팔과 다리에도 피가 돌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공포가 엄습했다. 경험상 지금부터는 근육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를 살짝 움직이는 순간 장딴지가 전기봉으로 얻어맞은 듯 아파왔다.

‘제길… 도대체 몇 시간을 이러고 있었던 거야.’

필름이 언제 끊겼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 기억은 영수가 테이블을 떠나는 장면이었다.

“그만 일어날게요.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요. 아시죠?”

나는 그를 붙잡지 못했고, 대신 술병을 붙잡아 입 안으로 쏟아부었다. 거기까지가 마지막 기억이었다.

<레온>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각오를 끝내놓고 있었다. 더 이상 미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사나이답게 부딪치는 건 나와 거리가 먼 일이었지만, 계속 망설이다가는 카드빚으로 파산할 게 뻔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게이바 종업원을 유혹하려면 양주만 마시면 된다.”

빌어먹을 거짓말.

처음엔 그 말이 맞았다. 영수는 나를 죽다 살아 돌아온 서방님처럼 대했다. 그러나 양주의 약발이 떨어진 것인지, 일주일 전부터 그는 내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너무 자주 오시는 것 아니에요?”
“하루라도 자기를 안 보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칠 것 같아서.”

그 말에 영수는 웃었지만, 표정에는 분명 난감함이 스쳤다. 나는 그걸 오해했다. 날 걱정해 주는 마음이라고, 억지로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같은 표정을 지었고, 결국 그의 진심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멈출 수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일은 내 인생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싫어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어김없이 트집을 잡고 깎아내려야 속이 풀렸고, 아집과 다름없는 자존심 하나만이, 모두가 기피하던 ‘곰보 얼굴의 소년’을 지금까지 버티게 해 준 유일한 힘이었다.

처음 영수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술병과 안주를 들고 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무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잘생겨봤자 게이바 종업원이잖아.’

하지만 영수는 내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난 여드름 있는 남자가 좋더라. 얼굴이 너무 매끈하면 남자 같지 않아서.”

그가 곰보 자국과 여드름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따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기이하게 높은 목소리를 듣고도 그는 오히려 공감하듯 말했다.

“학교 다닐 때 애들이 놀리지 않았어요? 목소리가 여자 같다고? 저도 그랬거든요. 지금이야 좀 굵어졌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변성기가 안 와서 꽤나 놀림을 받았어요. 그래서 별명이 호모였죠. 쪼그만 것들이 그런 건 귀신같이 알아채더라니까.”

그 말은 가슴 펴고 살라는 위로처럼 들렸다. 씩씩한 외모에 군살 하나 없는 몸을 가진 그가 나와 같은 상처를 겪어왔다는 사실에 나는 방어심을 모두 풀었고, 그와 동시에 맹목적인 사랑까지 품게 되었다. 그것이 게이바 종업원의 상술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받아본 적 없는 관심이었으니까. 그 관심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고, 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비명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가 허리를 찌르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다행히 그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다리에 감각이 돌아온 것이다. 비록 두통과 추위, 그리고 몸 전체의 무기력함이 여전했지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다시 힘이 솟아나는 듯했다.

나는 발로 문을 힘껏 밀어보았다. 퉁 하는 소리가 좁은 공간을 울렸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두 발로 밀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빴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다리 근육이 단단한 문에 부딪치며 비명을 질러댔고, 발목에는 끊어질 듯한 통증이 퍼졌다. 인대가 손상된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몸을 던지며 고통을 참으려 애썼다. 짜증이 차오르고 화가 치밀었다. 목소리를 내어 분노를 터뜨리고 싶었지만, 목이 잠겨 공기만 새어 나왔다. 참을 수 없는 답답함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구르던 그때, 손끝에 낯선 감촉이 닿았다.

그동안 느껴왔던 냉랭하고 딱딱한 금속의 질감과는 달랐다. 여전히 차갑긴 했지만, 그보다는 부드럽고 탄력이 느껴지는 감촉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손을 움직여 그것을 더듬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것이 옷감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피부가 곤두서는 듯한 소름이 치밀어 올랐다. 옷감 속에는 말랑말랑한 근육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공포가 한순간 머리 전체를 지배했다.

이곳에는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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