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그 이상을 준비하라
한때 보안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격증을 따려고 열심이던 때가 있었다. ISMS 인증심사원 자격이나 PIMS 인증심사원 자격 또는 CISSP과 같은 정보보안 분야의 자격증 말이다. 국내에서 벗어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ISO 27001 심사원 자격도 너도 나도 획득하겠다고 열심이던 대상 중 하나였다. 그때는 그런 시기였고 모두가 자격증 따기에 열심이었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자격증 획득에 열심이었던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보안분야의 일을 하는 데 있어 자격증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제법 많았다는 것이 첫째요, 장차 다가올 미래의 언젠가 은퇴하고 나면 자격증을 이용한 밥벌이나 용돈벌이가 되지 않겠냐는 기대가 두 번째였다.
그리고 바야흐로 예전 자격증 획득에 열심이었던 그때 그 사람들이 일부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과거에 했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같이 하게 된 식사자리에서 어언 40여 년 가까이 IT분야와 보안분야에서 근무해 온 분의 한탄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나름 기대를 갖고 획득했던 ISMS 인증심사원 자격이 별 소용이 없더라는 말씀이다.
보안분야의 전문가 여부 및 심사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단순히 시험으로만 찍어내듯이 배출한 ISMS 인증심사원들의 수가 어언 천명을 훌쩍 넘어서다 보니 그로 인한 각종 폐해가 발생해 버린 것이다. 시험유형을 그저 암기식으로 외워서 합격한 전문성이 부족한 심사원들로 인한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인증을 받고자 하는 기업의 수에 비해 배출된 심사원들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신청을 해도 심사 배정이 도무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용돈벌이도 되지 않는다는 푸념.
설상가상 혹시나 싶어 따두었던 감리사 자격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IT사업은 줄어들었는데 감리사 역시 우후죽순으로 배출되다 보니 감리사 자격증도 애초의 기대에는 많이 못 미치고 있다는 한탄이다.
차라리 자격증에만 의존하기보다 자격증을 활용해 보안컨설팅 수행경험을 쌓고 업계 인맥을 만들어 두었으면 적어도 은퇴 후 보안컨설팅 프리랜서 활동을 통해 매년 평범한 월급쟁이 정도의 수입은 가능했을 텐데 하는 표현에서는 찐한 아쉬움까지 읽을 수 있었다.
5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격증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대학에 입학한 대학생들까지도 전문분야에 대한 공부보다는 일 학년 때부터 취업을 염두에 두고 더 많은 자격증을 따려고 혈안이라고 하는 지금의 세상 풍토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말이다.
자격증은 첫 사회진출 취업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임은 확실하다. 능력을 검증하기 어려운 기업 측에서 능력에 대한 검증대신 자격증을 참고할 것이 뻔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경력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난 이후에는 ‘자격증 이후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앞으로의 미래에서 진짜 전문가들은 자격증이 아닌 '콘텐츠'와 '영향력'을 주요 무기로 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특정분야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것만으로는 타인들에게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인터넷이라는 사이버공간 속에 펼쳐져 있는 나의 콘텐츠들과 나의 인맥들과 나의 활동들이 나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흔히 말하는 평판 그중에서도 사이버평판이 중요하게 작용하게 될 것이다.
보안전문가지만 다른 산업분야의 업무적 특성을 잘 이해하는 사람, 각종 악성코드의 특성과 동작방식을 잘 알고 그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보안설루션의 기술적 동작을 이해하고 그 장단점을 짚어줄 수 있는 사람, 현재 기업/기관이 구축한 보안체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최신 신기술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사람 등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자격증으로는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제 자격증은 더 이상 종착지가 아니다. AI로 대변되는 신기술들의 도입으로 인해 5차 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그 이상을 준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지식'과 '경험'과 '통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