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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영 Dec 14. 2023

또 떡볶이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 김겨울



누군가 나에게 죽기 전 마지막 한 끼 메뉴를 고르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말할 것이다.

이젠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한국인의 소울푸드. 그래서 식상할 수도 있는 바로 그,


떡. 볶. 이.



떡볶이에 관한 이미지는 10살도 되기 전의 기억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소중하고 즐거운 것들이다.

탄수화물 중독이라든가, 하체 비만이라든가 하는 내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꼭 떡볶이 때문이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 떡볶이는 그저 좋다. 사랑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은 늘 비어있었고, 간식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지금도 나는 내향적 성향이 강하고 40줄이 되도록 혼밥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그때도 동생에게 매일 같이 떡볶이 심부름을 시켰었다. 500원인지 1,000원인지 포장 단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에게 200원의 심부름값을 떼어줬던 건 확실히 기억이 난다. 까만 비닐봉지에 담겨올 뜨겁고 쫀득한 가느다란 쌀 떡볶이를 그렇게 기다렸었다.

떡볶이는 엄마가 가게에서 돌아오는 저녁 8시 30분까지 빈집을 지키는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간식이었다. 지금도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면 ‘그 어린것들만 집에 남겨두고 어떻게 그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다녔나’ 미안해하시곤 한다. 엄마의 애정을 갈구하듯 음식을 탐하는 건 그때 생긴 습관인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한 내 소울푸드 떡볶이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종종 사주셨던 고춧가루 양념 강한 새빨간 가래떡 떡볶이, 중학교 내 매점에서 팔던 판떡볶이, 여고시절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 20대 술에 절어서 쓰린 속에 퍼먹던 떡국떡 떡볶이(폭음하면 그렇게 속이 쓰리고 배가 고픈 듯한 착각이 드는데, 집에 어떻게 들어간 건지 정신도 없는 와중에 가스불 앞에서 떡볶이는 또 조리해 먹었다. 밀키트도 없던 시절이었다.....)등을 거쳐왔다.







그러다 이상한 사람을 만난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던 때였을까? 나를 만나러 오겠다는 그 남자가 배가 출출하니 가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를 사 오겠다는 거다.(오? 이 남자 봐라? 무조건 콜이지.) 얼마 만에 먹는 포장마차 판떡볶이인지! 어쩌면 그 남자만큼 떡볶이도 똑같은 설렘으로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여자’가 ‘처음 본 여자’인 것처럼, 정보가 전혀 없는 낯선 떡볶이는 어떤 맛일지 늘 설렌다.

그렇게 기다렸던 그와 떡볶이가 도착했다. 역시 어릴 적 남동생이 사다 주곤 했던 그 까만 비닐봉지에 담겨있어 향수까지 일으킨다.



“이게.... 다야??”



둘이 먹겠다고 사 온 떡볶이가 달랑 1인분이다.


심지어 어묵국물도, 떡튀순 세트도 아니었다. 그냥 떡볶이만.

아니 이걸 누구 코에 붙이자고 사온거지? 남자 새끼가 이렇게 통이 작아가지고 어디다 쓰지? 아, 너는 안 되겠다. 정정하겠어. 넌 탈락.







...... 했던 그 남자는 내 평생의 ‘떡볶이 메이트’가 되어 오늘도 함께 배달떡볶이를 먹는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를 만나 이제 여봉이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선순환이고 선한 영향력 아닌가?

부부에게 있어서 그(?) 궁합만큼 중요한 게 음식 궁합 아니겠냔 말이지.

배고픈 우리 부부가 뭘 먹을지 고민할 때 한쪽이 제시하면 나머지 한쪽에서 절대 거부한 적이 없는 메뉴, 떡볶이.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배달 맛집을 발견했고, 먹고야 말았다.

또 떡볶이.






** 낯선 떡볶이는 지나친 설렘과 흥분을 일으키므로 흰 티에 빨간 소스가 튀지 않도록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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