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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Jul 17. 2024

18. 초록색이 주는 위안

푸릇한 생명들을 좋아합니다


 매주 화, 목, 금은 퇴근 후에는 항상 운동을 하러 간다. 몇 년째 유지하고 일상 루틴 중 하나다. 생각이 많은 내가 유일하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라서 힘들다고 하면서도 꽤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 루틴을 깨고 싶을 때가 생긴다. 지난 금요일이 그랬다. 그 전날 운동을 했는데 컨디션이 별로였는지 평소보다 힘들었던 것에 운동처럼 격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 조용하게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운동 갈 준비를 다 해서 출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체육관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에도 종로 일대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직장이 근처라서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곤 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루트도 항상 비슷하게 정해져 있다. 제일 먼저 닿는 곳은 광화문 광장이다. 가끔은 그저 책 냄새, 서점 분위기가 느끼고 싶어서 영풍문고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여름이 되었다고 광장에는 분수가 틀어져있고, 어린아이들이 그 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놀고 있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어릴 적 나를 생각해 봤다.


 나도 저렇게 해맑은 웃음을 짓던 나이가 있었지.     


 평상에 앉아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글을 쓰고 나니 급격하게 눈이 피로해졌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눈이 편한 곳에 가고 싶어졌다. 더욱 정확하게 ‘초록색’이 보고 싶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치고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기다란 광장을 가로지어서 걸었다. 하늘이 참 예쁘다. 바빠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여유롭게 관광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누군가는 아직 일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들 속에 내가 있음을 문득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광화문 앞을 지나 북촌 방향으로 향한다.      


 시간이 늦지 않았다면 북촌을 얕게 돌고 싶은데 언제부터인가 5시 이후로는 주민이 아니면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아쉽지만 살고 있는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을 지나고 현대미술관을 지나서 정독도서관으로 올라간다. 내가 커피를 시작하기 전 3년 정도 다녔던 직장이다. 일을 다닐 때도 주말에 가끔 가기는 했지만 지금보다 편하게, 많이 다니지는 않았다. 평일에 매일 가는 곳을 주말에 가는 것도 싫고, 가면 얼굴이 익숙한 이용자들을 보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일을 그만두고 편하게 갈 수 있게 된 것이 꽤 좋다. 마음이 힘들 때 참 많이 찾았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내 가방에는 항상 펜과 노트가 있어서 생각과 마음이 복잡할 때면 도서관 정원 벤치에 앉아서 글씨를 끄적거리며 생각과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요즘은 정원이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잔디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잔디와 나뭇잎의 초록색과 건물의 회색빛, 하늘의 푸른빛이 만나는 그 어디인가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새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폰을 빼고 주위 소리에 집중하기도 하고, 내 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집중하기도 한다.    

  

내가 요즘 걱정하는 건 없나

나는 요즘 잘 지내고 있나     


스스로의 마음 소리에 집중하는 건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아니, 나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익숙하지 않아서 하지 못하는 것일 뿐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렇게 초록색들을 보다 보면 조금은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동안 시끄럽고, 바쁘게 지내던 나의 모든 일상이 꿈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커피 머신이며 제빙기 소리, 주문서가 올라오는 소리, 지나가는 시끄러운 차의 소리 등등 내 귀를 통해 들어오던 모든 시끄러운 것들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고요해지는 그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초록색들과 조용함이 가져다주는 잠깐의 힐링 시간이다.     


초록한 생명들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이 다 편안해진다.

푸릇한 생명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살아가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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