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ise State of Mind Tour@Phoenix, AZ
음악은 기억을 불러온다. 기억을 불러오지 못하는 혹은 기억에 남지 않는 음악은 영어공부한다고 틀어는 놨는데 시끄럽기만한 CNN뉴스와 다를바가 없다. 내가 그렇다는거다.
엊그제 들은 노래가사는 첫 소절조차 기억이 안 나지만,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잊히지 않은 가사를 불러오고, 다음엔 그 노래를 흥얼거린 장소, 함께 한 사람, 혹은 베개를 부여잡고 흐느끼며 불렀던 그 사건들을 차례대로 혹은 한꺼번에 불러온다.
그게 음악의 힘이다.
한 번에 알아듣기도 힘든 가사의 영어노래들을, 한 시간 이상, 서서 들어야 하는 콘서트가 힘들다고 전에도 한번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콘서트 장 안에는 그런 나와는 달리, 그들의 기억을 불러오는 노래들을 함께 부르며 열광하는 타인들이 잔뜩 있다. 부럽다. 에픽하이가 북미투어를 했을 때, 지나치리만치 방방 뛰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러웠던 거 나도 할 거다!
오늘의 밴드, 'Foster the People'은 그럼 어느 쪽일까? 한 시간 서있기가 힘든 낯선 콘서트 장일까? 아니면 에픽하이의 콘서트처럼 기억을 불러오는 곳일까?
'Foster the People'의 많은 히트곡 중 'Pumped up Kicks'라는 곡이 있다. 몸이 절로 앞뒤로 출렁거리게 하는 빠른 템포의 경쾌한 멜로디이지만 가사는 그렇지 않다. 미국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하는 교내 총기 사고를 모티브로 쓰인 가사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이 노래의 후렴구이다.
All the other kids with the pumped up kicks
You better run, better run outrun my gun
All the other kids with the pumped up kicks
You better run, better run faster than my bullet
2011년 나에게는 선물과 같았던 석 달의 미국여행에서 가는 곳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다.
그때 우리_남편, 나 그리고 초등 2학년 아들_는 오레곤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 해안을 지나 네바다의 리오를 찍고, 아이다호를 통과하여 오레건으로 돌아오는 2주 정도의 로드트립을 했었다.
약 2000달러를 주고, 중고차를 하나 구입했는데 로드트립 과정에서 에어컨이 고장 나 내내 창문을 열고 다닌 기억이 있다. 그때가 6월쯤이었으니, 그렇게 큰 시련은 아니었다.
밤새 운전하며 네바다에 있는 가로등 하나 없는 루비산 근처를 지나갈 때는 캐리비안의 해적 OST 중 'He's a pirate'을 틀었다. 저 코너를 돌면 문어아저씨, 저 코너를 돌면 인어아가씨가 나올 것 같은 오싹함을 극복할 힘을 주는 음악이었다. 한번 상상해보라.
그 칠흙같은 밤, 우리가 얼마나 차 안에서 쓸데없이 용맹스러웠을지. 이 음악을 배경에 깔고.
여하튼 그런 밤이 지나고, 낮에 운전할 때는 주로 지역 라디오를 켜두었다. 그러면 하루에 적어도 세 번쯤은 나오던 노래가 Foster the People의 Pump Up Kicks였다.
이 노래를 들으면,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해변에서 먹었던, 칠리버거가 생각난다. 맛이 없어서 사진으로 남기고 반 이상 버렸다.
이 노래를 들으면,
LG라고 쓰여 있는 TV가 있던 네바다 리오의 싸구려 모텔이 생각난다. 꼭 존 쿠삭 주연의 영화 '아이덴티티'에 나왔던 그 모텔처럼 생겼었다. 침대는 누우면 몸이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었고, 나무로 만든 연약한 현관문은 간신히 바깥과 안을 구분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고, 밤새 수시로 커다란 트럭이 오고 갔다. 아침에 도망치듯 빠져나올 땐, 무슨 전쟁에서 살아 나온 느낌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차 뒷좌석을 온갖 담요와 침낭으로 침대처럼 만들어,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로드트립이 지루할 아들 녀석의 복지를 위해 애썼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이 노래는 그날들의 마음을 불러온다. 겨울만 있는 인생인 줄 알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봄이 너무 낯설었던 내가, 달리는 차 안에서도 문득 문득 덮치는 불안과 설렘 앞에 선택장애가 되었던 마음같은 것 말이다.
오늘의 밴드, Foster the People과 그들의 노래는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만 공유한 추억이 담긴 노래들과 고등학교 교실에서 풍길듯한 도시락 냄새가 풀풀 나는 에픽하이의 노래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차차 에픽하이쯤으로 가는 있는 중이라고 해두자. 계속해서 세월을 입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