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그 애 01화

1. 프롤로그

by 차태주

멀리서 인사 소리가 들린다. 마당을 쓸고 계시는 할아버지께 하는 걸 거다. 그 소리는 마당을 가로질러 총총거리며 다가온다. 곧이어 유리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로 올라선다. 소리는 저쪽으로 멀어져 큰방으로 향한다. 곧 멀리서 시시덕대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와 인사 나누는가 보다. 잠시 뒤, 소리는 뒤돌아 이쪽으로 가까워진다. 큰방을 나와 한두 걸음 내딛는가 싶더니, 이내 쿵쿵거리며 점점 커지고 빨라진다. 마루를 부실 듯 거침없이 달리는 소리가 다가온다.

숨을 들이쉬었다. 쿵쾅 내딛는 발소리처럼 심장도 같이 쿵쿵거린다.

이윽고 내 이름을 외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렸다. 고함을 있는 힘껏 지른 듯 요란한 목소리가 문이 열리는 동시에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어서 나무로 된 여닫이문이 반대편 벽에 꽝 부딪혔다.

귀가 저릿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에 움찔 떨었다.

“으...”

신음이 흘러났다.

문이 부서질 듯한 소리가 날 거란 걸 매번 예상하면서도 몸이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미리 문을 열어 놓으면 안 되냐고?

지난번엔 그랬다가 열린 문으로 뛰어들어 와 내게 달려들려고 했다. 마루를 내딛고 오며 가속이 붙고, 열린 문으로 내가 보이니 더 흥분하여 달려온 것이다. 못 말리는 그 광증을 조금이라도 저지하려면 저런 미천한 나무 문이라도 있어야 한다.

“문 좀 천천히 열면 안 되나...”

그 애의 목소리에 비하면 하찮지만 나름 들리도록 얘기했다. 원래라면 당당히 할 법한 얘기도 그 애 앞에선 괜히 주눅 들어 하곤 했다.

“오늘 뭐 해? 오, 무슨 게임이야? 에이... 또 부루마불이야? 야아, 이거 이제 지겨워, 다른 거 없어? 어제 뭐 했냐아 비디오라도 빌려오지”

그 애가 실망한 표정으로 게임판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애는 매번 자기 할 말만 해대곤 했다. 내 부탁은 들은 건지 아니면 무시한 건지. 그 애 성격이면 아마 반반일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어제 현우집에서 놀다 오느라...”

“에이... 그럼 오늘 뭐 하지? 우리 밖에서 놀래? 나 요즘 애들이랑 고무줄 하는데, 너도 해봐, 잠깐만 기다려 봐, 집에서 고무줄 가져올게”

그 애가 벌떡 일어났다.

급히 그 애를 불렀다.

“아아! 나 고무줄 못해!”

“괜찮아, 내가 가르쳐 줄게”

힐끔 뒤돌아 말하곤 방을 뛰쳐 나간다.

“아니 아니! 나 고무줄 안 해! 안 해!”

필사적으로 소리 질렀다.

그 애가 막무가내로 행동하려 하면 고함이라도 질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애에게 붙들려 관심도 없는 고무줄을 온종일 허리에 끼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처절한 고함소리에 그 애가 돌아와 방 안으로 고갤 빼꼼 내밀었다.

“왜 안 해?”

그 애가 온 지 5분이나 지났을까. 벌써 기력이 쇠퇴하는 기분이다.

“남잔 원래 그런 거 안 해...”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 저 애라면 알면서도 모른 척한 걸 거다.

한숨이 나왔다.

“후... 그냥 하기 싫어...”

다시 들어와 앉는다.

그리곤 잠시 생각하더니,

“그럼 우리 오빠들한테 축구 하자고 할까? 요즘 오빠들 잘 안 보이던데, 창명이 오빤 집에 있으려나? 가보자!”

그 애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아끌었다.

“아니 아니! 형들 이제 중학생이라 잘 안 놀아줘!”

잡힌 손목을 힘껏 잡아당기며 말렸다.

“응? 저번엔 놀아줬잖아?”

여전히 손목을 잡은 채 그 애가 뒤돌았다.

“그땐, 중학생 된 지 얼마 안 돼서 원래처럼 놀아준 거고, 이젠 안 놀아줄 거라”

“중학생인데 왜 안 놀아줘?”

이번엔 진짜 몰라서 묻는 걸까. 음, 저 애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중학생은 원래 초등학생이랑 안 놀아...”

그 애가 고갤 갸우뚱하며 다시 앉았다.

지친다. 오늘을 평온히 보낼 수나 있으려나. 제발, 제발 조금만 더 생각하고 여유롭게 움직이면 안 될까라고 그 애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래봤자 듣기나 할까.

다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 애가 이내 고갤 들었다. 이번엔 또 무슨 소릴 할지, 괜히 긴장된다.

“그럼, 우리 뒷동산 가볼까? 이번엔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나마 괜찮은 의견이었다.

바닥에 펼쳐놓은 부루마블 게임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냥 방 안에 앉아 느긋하게 보드게임이나 하는 게 마음 편할 테지만, 그 애가 나가자고 하니 어쩔 수 없다. 단, 이번에도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한다면 절대 들어주지만 않으면 문제없을 것이다.

“아... 그럴까”

마지못해 웅얼거렸다.

그러니 얼굴에 화색을 띤 그 애가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자!”

“아, 나 옷 갈아입어야...”

말할 새도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 벌써 힘이 빠져 저항할 엄두도 못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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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