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불쌍한 언니의 단점

by 차태주

TV에서만 보던 서울 여자. 단아하지만 품격 있는 차림새와 세련된 화장, 여유롭고 교양 있는 말솜씨, 그리고 웃을 때 더욱 빛나는 그 자애로운 눈빛. 좋은 직장에 다니는 성공한 서울 여성. 예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 그 여자는 변함없이 근사하고 기품 있었다. 그를 이모라고 부를 수 있는 거야말로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 어쩌면 그나마 가치 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엄마에게서 태어난 네가, 다듬어진 꽃처럼 머릿결부터 손가락 끝까지도 우아스럽기 그지없는 네가, 더구나 머리까지 좋은 천재라니. 유복한 환경에서 충만한 사랑 받으며 좋은 교육 받았으니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나도 너처럼 태어났으면 너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예뻤을 거야.





정말 자기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주 언니는 과외는커녕 학원 한번 다닌 적 없으면서도 학년에서 1, 2등을 다툴 만큼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돈 버는 것만을 세상 제일의 미덕으로 여기는 이모로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학업에 관한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을 거란 걸 언니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날 우리 엄마를 맞이하기 위해 굳이 차려입은 단정한 교복은 언니의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그런 언니에게 엄마의 제안은 꿈 같은 일이었을 테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결코 순탄치 않았던 시절,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일찍이 사회로 뛰어들어 그 불공정한 경쟁에서도 버텨내 대기업의 과장 자리에까지 오른 엄마는, 그간 질리도록 겪었던 온갖 인간군상의 수만큼이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이 제법 있었다. 그러니 이주 언니의 그 뒤틀린 성격도 엄마가 아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언니에게 실낱같은 여지라도 남겨주고 싶었던 걸까.

수업료는 전부 이모가 가져갔다. 이쁘고 똑똑한 딸을 가졌으면서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이모가 그동안 키워준 값이라며 언니가 받은 돈을 전부 뺏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모가 그럴 줄을 이미 예상했던 엄마는, 일반적인 과외 수업료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금액을 수업료로 지불하는 대신 언니에게 제안했다. 언니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면 학교 등록금을 지원해 주겠다는. 단, 그만큼 내 학업에도 성과가 있어야겠지.

언니는 필사적이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친모 밑에서 그야말로 세상 혼자인 언니는 유일하게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무기를 필사적으로 갈았다. 그런 면에서 언니와 나는 꽤 닮은 면이 있었다. 시골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언니와 그런 언니로부터 필사적으로 습득하려는 나는, 그 닮은 면 덕분에 학업에 있어서는 꽤 궁합이 잘 맞았다.

하지만, 공부를 잘했던 이모의 장점을 닮은 것만큼 이주 언니는 이모의 치명적인 단점 또한 물려받았다.

“야, 씨발년들아! 조용히 좀 해, 수업하잖아!”

벌컥 방문을 연 이주 언니가 1층으로 버럭 소리치니 시시덕거리던 소리가 잠시 멈췄다.

‘야, 김이주 화났다 ㅋㅋ’

‘벨로 안 시끄러운데 지랄이고’

‘지 공부 잘 한다꼬 유난 떠는 거다 아이가 ㅋㅋ’

문을 닫고 다시 의자에 앉은 언니가 내게 싱긋 웃어 보였다.

“미안, 시끄러웠지? 저 썅년들 또 떠들면 내가 조용히 시킬 테니까, 넌 신경 쓰지 마, 헤헤”

그리곤 문제집을 한 번 고쳐 펴고는 다시 수업을 이어갔다.

이모가 출근하고 나면 가끔 언니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저녁이 되기 전에 일찍 출근하시는 이모는 처음 언니를 보러 간 날 이후 거의 뵌 적이 없지만, 이주 언니의 친구라는 언니들과 오빠들은 종종 보곤 했다. 그들에게선 코를 찌르는 무스 냄새와 진한 화장품 냄새가 났고, 그 사이를 비집고 꼬질꼬질한 담배 냄새가 찔끔씩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언니는 담배 냄새를 덮으려 코가 얼얼할 정도로 향수를 잔뜩 뿌린 것 같았다.

나는 딱히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1층에서 떠들더라도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도 아니었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시끄러울 것 같으면 굳이 나서서 욕지거리까지 해대는 언니가 더 성가실 정도였다. 담배 냄새가 나면 이모가 알아챌 것이기에 그들은 집안에서는 담배를 피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거실 소파에 앉거나 누운 채로 시답잖게 시시덕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그렇게 실없이 노닥거리는 게 뭐가 좋아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는 수업이 끝나고 그 집을 나갈 때만 힐끔 볼 뿐이라 그들과 대면할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게 인사라도 할라치면 이주 언니는 어째선지 지나칠 정도로 그들과 나 사이를 막아서곤 했는데, 어떨 때는 마치 미친년이 발광하듯 펄펄 뛰기도 하는 것이다.

“아! 씨발! 애한테 말 걸지 말라고!”

이주 언니가 현관으로 향하던 내 옆을 막아서며 매서운 기세로 쏘았다.

“아 ㅋㅋㅋ, 저년 저거 또 발광한다”

“미친년, 니 딸래미라도 되나? ㅋㅋ”

다른 언니 오빠들이 이주 언니를 놀리며 한마디씩 거드는 사이, 소파 팔걸이에 걸 터 엎드린 채 내게 말을 걸었던 언니가 억울한 듯 대꾸했다.

“아 진짜 봤다고오! 야아 남자친구랑 같이 손 잡고 가더라니까!”

그러니 이주 언니는 어째 조금 섬뜩해 보이는 표정으로 잠깐 나를 돌아보더니, 다시 그 언니를 보며 아주 어이가 없다는 듯,

“지랄하지 마 씨발년아! 얘는 그런 애 아이라! 어디서 잘못 봐가지고 아아한테 이상한 소리 하고 있노”

“야야, 쟤 또 사투리 나왔다 ㅋㅋㅋ”

“니가 서울말 쓴다고 서울 사람 되는 줄 아나 미친년아! ㅋㅋ”

횟수로 10년을 살아오며 접했던 욕보다, 아마 언니와 공부하기 시작한 그해에 언니와 그 친구들을 통해 들은 욕이 제일 많았을 것이다. 그게 이모로부터 물려받은 이주 언니의 단점 중 하나였다. 아무리 겉모습이 이쁘다 한들, 아무리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한다 한들 그 천박한 행태는 어린애가 보기에도 그저 한심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언니는 왜 그런 친구들과 사귀었던 걸까. 아니, 그건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언니가 바로 그런 인간이기에 비슷한 친구들과 사귀었던 것이다. 언니는 참, 그 싫어하는 자기 엄마와 너무나도 닮은 구석이 많았다.

“안녕하세요 이모, 오늘도 수업 잘했어요, 이모를 닮아서 그런지 어쩜 이리 똑똑한지 몰라요, 헤헤헤”

꽤 길어진 해가 아직 저 멀리 산언저리에 걸 터 있을 때, 대문 밖까지 나를 배웅한 언니가 운전석에서 내린 엄마에게 꾸벅 인사했다.

엄마가 언니 집까지 나를 태워주면 언니는 내가 도착할 시간보다 항상 먼저 나와 나를 마중했고, 수업이 끝날 때도 항상 대문 밖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런데 언니는 이상하리만치 인사성이 밝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당연히 인사하는 거겠지만 보통은 2시간 뒤에 다시 만날 사람에게까지 굳이 안녕히가세요라고 작별 인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나를 데리러 온 엄마에게 마치 그날 처음 만난 것처럼 매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게 엄마에게만 그러는 건지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한 건 이주 언니의 그런 모습은 아무래도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이었다.

“친구들 집에 와 있나 보네? 우리 애 공부하는 데 시끄럽진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예정보다 조금 일찍 와서 기다리던 엄마가 집안에서 언니와 언니의 친구들이 싸우는 소리를 들은 거겠지.

언니는 얼른, 전혀 그렇지 않다며 양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이모, 쟤들은 그냥...........”

무척 당황해하는 언니를 보니 또 성가신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안 시끄러웠어 엄마, 언니 친구들 되게 착해”

언니를 거들었지만, 딱히 편을 든 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엄마에게 허둥대며 부정하는 언니가 그냥 짠해 보이기도 했고, 저번에 엄마에게 조금 꾸지람 들은 언니가 잔뜩 풀 죽어있던 모습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음 수업 때 또 내 눈치를 보며, 혹시 엄마가 자기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엄마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은지 등을 물어보다가, 끝내는 엄마에게 얘기 좀 잘해 달라는 쓸데없는 부탁을 하며 공부를 방해할지도 몰랐다.

엄마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곧 이주 언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늦게까진 놀지 말고 이주야, 이모 전화번호 알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그러니 잠시 당황하던 언니가 이내 활짝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모, 감사합니다”

차가 골목을 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언니는 대문 앞에 서서 우리를 지켜봤다. 나는 가끔, 멀어지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서 있는 언니를 뒤돌아보곤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엄마에게 인사할 때의 밝은 표정과는 너무나 다른, 어쩌면 섬뜩하게마저 느껴지는 언니의 무표정을 보게 되곤 했던 것이다.

“어떤 거 같아?”

그날도 언니의 그 무표정한 얼굴을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문득 엄마의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술병 있었어, 오늘도 술 마실 건가 봐”

그러니 엄마는 한숨을 푸욱 쉬고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는 내게 언니의 친구들이 오면 알려달라고 했다. 언니가 이모의 인격을 물려받았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언니가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고 어떤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하라는 엄마의 말은 언니를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언니가 뭘 하고 다니는지 다 알고 있다는 압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선생님 바꾸고 싶음, 얘기해”

룸미러를 통해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어떤 게 잘 못 된 일이고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알 만큼 충분히 조숙했던 나를 엄마는 신뢰했다. 그렇기에 언니에게 계속 수업받겠다는 내 선택을 존중했던 것이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쌍하다 이주 언니는. 앞으로 내가 살면서 볼 것인 인간군 중 언니는 가장 불쌍한 축에 속한다. 다만 그 불쌍하다는 게 언니가 태어나면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한 줌의 사랑조차 주지 않는 엄마라든가, 아이를 가지게 된 연약한 여인을 무책임하게 버려두고 떠난 아빠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자기가 얼마나 근사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인간은 얼마나 허무한가. 그게 바로 언니가 이모로부터 물려받은 최악의 단점이었다. 예쁘고 똑똑한 언니는 분명 현명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