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결핵에 걸려 죽다 살아났다. 그래서 그의 이름도 다시 태어났다는 뜻의 프랑스식 단어인 Rene가 되었다. 걷는 것도 힘든 허약한 몸 때문에 잠만 잤다. 규칙이 엄격했던 학교 기숙사에서도 늦잠 자는 것을 허용했을 정도라고. 밖에 나가기보다는 누워서 휴식을 취하며 계속 생각하는 것이 데카르트의 삶의 큰 부분이었다. '아침에 침대 속에서 했던 명상이 나의 수학과 철학의 참된 원천이었다.'라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이런 데카르트의 늦잠이 데카르트의 죽음을 가속화했다는 설도 있다. 54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한 데카르트의 죽음을 두고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그중 잠때문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새벽 5시에 시작하는 스웨덴 여왕과의 기하학 수업으로 인해 평생을 정오까지 늦잠을 자던 데카르트의 생활 패턴이 무너지게 된다. 이에 면역력이 약해져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생각과 의심을 거듭하던 데카르트의 명언이다. 그는 누워서 자신의 철학을 펼쳤고, 누워서 수학을 생각했고, 누워서 모든 존재를 의심했다. 그러나 아버지 눈에는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했겠다. 견문을 넓히라며 데카르트를 파리로 유학을 보내버린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파리에서 춤과 도박을 잔뜩 즐긴다. 그렇게 누워있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것 같던 데카르트가 자원입대를 한다. 나중에 데카르트는 다양한 경험을 위해서였다고 입대 이유를 밝힌다. 해외여행을 가기 힘들었던 시절 자국인 프랑스뿐 만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의 여러 나라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입대를 했다. 하지만 몸이 허약한 탓에 막사에 주로 누워있는 게 업무였을 거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그 일'도 데카르트가 누워있을 때 발생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막사에 누워있던 데카르트. 윙윙대는 파리가 거슬린다. 파리가 천장에 앉은 바로 그때, 데카르트는 수평선인 x축과 수직선인 y축으로 이루어진 직교 좌표계를 발견한다. "왼쪽에서 몇 칸, 오른쪽에서 몇 칸 떨어진 곳에 파리가 있어!"라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아내고만 것이다. 데카르트가 좌표를 찾은 이후 음수를 시각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 추상적이던 대수 개념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함수의 시대가 열렸다. 누군가 수학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 물어보면 데카르트 쪽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