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바리오 Aug 23. 2019

어머니의 김밥은 여전히 맛있는지

[일상] 운동회 날 김밥

  운동회 전날이 되면 나는 엄마가 적어준 쪽지를 받아들고 집 앞 슈퍼로 심부름을 하러 갔다. 그 쪽지에는 다음 날 도시락으로 싸갈 김밥 재료가 죽 적혀 있었는데, 김밥용 김, 김밥용 햄, 김밥용 단무지, 게맛살, 당근, 시금치 따위가 그것들이었다. 나는 김밥 재료를 사고 남은 돈으로 먹고 싶은 과자와 음료수도 조금 샀다.

  엄마는 운동회 날 아침에 김밥을 바로 말 수 있도록 그 전 날 미리 김밥 재료들을 손질해 두었다. 게맛살과 단무지와 햄은 길게 썰어서 넓은 쟁반에 가지런히 놓고, 그 옆에 채 썬 당근과 대친 시금치도 늘어놓았다. 그것은 일단 천이나 비닐에 덮여서 냉장고에 들어갔다. 쌀 미리 불려 두고, 도시락과 김발도 미리 씻어 널어 두었다. 그동안 나도 따라 엄마가 말끔히 세탁해준 학교 체육복과 아대와 콩주머니와 준비물을 한쪽에 차곡차곡 개 두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말았다. 우선 미리 불려둔 쌀로 밥을 안쳤다. 밥이 되어가는 사이 지난밤 밑손질을 해둔 다른 재료들도 마저 준비했다. 프라이팬에 당근과 햄을 볶고, 달걀지단도 몇 장 부쳐 길쭉하게 썰었다. 다 된 밥은 맛소금과 참기름으로 살짝 간을 했다. 도마 위에 김발을 놓고, 참기름이 담긴 종지도 한쪽에 두면, 이제 김밥을 말기만 하면 됐다. 김발에 김밥용 김을 한 장 올리고 그 위에 간을 해둔 밥을 얇게 폈다. 밥을 너무 많이 넣으면 나중에 김밥 옆구리가 잘 터지고 간도 싱거워지므로 밥 양을 잘 조절해야 했다. 그다음 밥이 올라간 김 한쪽 끝에 속재료를 가지런히 놓았다. 게맛살, 단무지, 달걀지단, 당근, 시금치, 햄. 때에 따라서는 채 썰어 간장에 조린 우엉이나 얇은 어묵을 넣기도 했다. 발을 잡고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쓱 말아 참기름을 살짝 발라주면 면 김밥 한 줄이 완성되었다. 이처럼 김밥을 마는 데는 손이 많이 갔지만 엄마는 언제나 척척이었다.



  엄마가 김밥을 서너 줄 말았을 때쯤 나는 잠에서 깼다. 눈 뜨자마자 코로 가득 맡아지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 다른 때와는 다르게 그 날 아침에 이불에서 나오는 일이 참 쉬웠다. 우리집 삼형제는 모두 먹성이 좋았고, 다섯 식구 그날 내내 김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김밥을 40줄 정도 말았다. 그것은 아침으로 먹고, 운동회에서 점심 도시락으로 먹고, 운동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간식으로 먹을 만큼이었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씻지도 않고 엄마가 썰어서 접시에 담아둔 김밥을 손으로 주워 먹었다. 엄마는 일단 운동회 점심으로 싸갈 김밥을 도시락에 담아두고 우리가 아침으로 먹을 김밥을 썰어 접시에 쌓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쌓으려고 했지만 좀처럼 쌓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엄마가 김밥을 말아 써는 족족 먹어 치웠다. 아직 도마 위에서 써는 와중인 김밥을 집어먹다 손 다친다며 혼나기도 하고, 한쪽에 쌓인 썰지도 않은 김밥을 통째로 들고 텔레비전 앞에 가 먹기도 했다. 그렇게 한 참 먹다가 학교 갈 시간이 되면 급하게 씻고, 전날 엄마가 챙겨주신 체육복을 입고, 아대를 하고, 콩주머니와 다른 준비물을 챙겨 학교로 갔다. 그날 만은 책가방을 메지 않아서 그런지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뿐했다.


  학교에 가면 파란 가을 하늘에는 색색의 만국기가 휘날렸고, 운동장 바닥에는 그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똑같은 체육복에 청색과 백색의 아대를 한 아이들은 그 위에서 들뜬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운동회는 학교에서 열리는 가장 큰 연중행사였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앞으로 나란히' '좌우로 나란히'를 해서 줄을 맞 아이들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개회선언을 하고, 힘찬 구령에 맞춰 국민체조로 준비운동을 하면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상대 팀의 기선제압을 위해 본격적인 경기가 진행되기도 전부터 시작한 응원은 운동회 내내 계속되었다. 아이들은 흰색 장갑을 낀 응원단장이 이끄는 대로 응원을 따라 했고, 기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청색 백색 깃발을 크게 펄럭였다. 운동장 중앙에서는 가을 뙤약볕 아래 줄다리기와 단체 줄넘기가 펼쳐졌고, 가에 트랙에서는 100m 달리기가 진행되었다. 흰색으로 그어진 트랙 시작에는 아이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차례인 아이들이 신호총 소리에 맞춰 출발선을 차고 나갔고, 끝에는 선생님이 결승선에 들어온 순서대로 아이들의 손목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학년별로 준비한 꼭두각시 춤, 에어로빅, 부채춤, 곤봉 춤은 부모님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다. 운동장에는 그 노랫소리와 선생님들의 확성기 소리와 “탕! 탕!” 신호총 소리와 ”삑! 삑!” 호루라기 소리와 선수들의 기합 소리와 아이들의 응원 소리와 부모님들의 환호성이 뒤섞여 그야말로 가을 운동회 분위기를 제대로 냈다.

  보통 ‘박 터트리기’ 경기가 끝나면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라인에는 우리집 삼형제 뿐만 아니라 또래 친구들이 많이 살았다. 우린 기억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놀았다. 우리집에서, 친구네 집에서, 주차장에서, 현관에서, 놀이터에서 술래잡기, 숨바꼭질, 딱지치기, 팽이치기, 멀리뛰기, 땅따먹기, 축구, 야구, 미니카, 컴퓨터, 게임기를 하며 항상 함께 놀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이웃끼리 서로 반찬을 나눠 먹었고, 아예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새해에는 함께 해돋이를 보러 가기도 하고, 여름에는 함께 수영장에 가기도 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서로를 제일 먼저 찾았다. 우리는 식구처럼 빤했고 가족처럼 끈끈했다.

  우리 삼형제를 포함한 이웃의 10명이 넘는 아이들은 모두 함께 학교에 다녔다. 입학식과 졸업식은 물론이고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에도 항상 함께했다. 운동회 점심시간에도 따로 어디서 만날지 정하지 않아도 먼저 부모님을 본 아이가 다른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부모님들이 있는 자리로 갔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 가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부모님들은 그 아래에 어느 집이나 있을 법한 똑같은 반짝이는 은색 돗자리를 깔아 자리를 잡고 계셨다. 돗자리 서너 개를 붙여 넓게 잡아 놓은 자리에는 엄마가 어제부터 준비해 말아 온 김밥과 함께 아주머니들이 말아오신 도시락이 모아져 있었다. 동생과 나와 친구들과 부모님들은 둘러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집마다 기본으로 싸 온 김밥에는 들어간 것도 다 달랐고 간도 다 달랐다. 우엉을 넣거나 어묵을 넣거나 참치를 넣거나 깻잎을 넣거나, 얇은 달걀지단을 넣거나 두꺼운 달걀지단을 넣거나, 깨를 넣거나 안 넣거나, 전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 맛이 좋 우리들의 입에 딱 맞는다는 것만은 모두 같았다. 누구는 달리기에서 1등을 하고 누구는 꼴찌 했다는 말이 오갔고 부모님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언제나 새 학기에 충실히 공책을 산 나는 언제나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런 것을 느낄 새가 없었다.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먹느라 바빴다. 부모님들은 그 와중에도 연신 자식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음료수를 챙겨줬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 있었고 다시 운동회가 재개되었다.

  오후 경기는 주로 오전에 열린 종목의 결승이 진행되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보통 점심 먹고 집에 먼저 가셨다. ‘막판 뒤집기’ 이어달리기 경기가 끝나면, 환호 속에 운동회는 끝났다. 퍼레진 하늘에는 등교 때처럼 여전히 만국기가 펄럭거렸지만, 운동장 바닥에서 일렁거리던 그림자의 색은 옅어져 있었다. 우리는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얼굴이 벌게져서는 저마다 그날 탄 공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내 동생을 챙기기도 하고, 형이 나를 챙기기도 하고, 친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걸어갔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탕탕탕”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가면 어김없이 이 층인 우리집 현관문이 열려 있었고,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아까 운동장 돗자리 위에 펼쳐져 있던 도시락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우리는 모두 그대로 집에 들어가 씻지도 않고 그 도시락을 마저 먹었다. 접시에 정글짐처럼 쌓여 있는 김밥과 도시락의 남은 김밥과 과일과 음료수를 싹 먹어 치우면 비로소 우리들의 운동회가 마무리되어갔다.


  가끔 시간에 쫓겨 한 끼 대충 때우려고 김밥을 먹을 때면 문뜩 그때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운동장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둘러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던 것이, 그때 먹던 각양각색의 김밥들이 생각난다. 곧이어 내내 함께 놀았던 추억도 생각난다. 그날의 날씨와 맛과 소리와 풍경과 향기와 모든 것이 몹시 그리워진다.

  요즘은 속재료도, 크기도, 가격도 다양한 김밥들이 있지만, 모두 그때 먹었던 엄마의 김밥과 엄마들의 김밥만큼 내 입맛에 딱 맞지는 않아 아쉽다. 이제 나에게 김밥은 운동회의 설렘 대신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치열함이 되었다. 김밥이 변한 것처럼 우리 가족과 친구들의 가족 모두가 그 아파트에서 이사 나왔다. 항상 붙어 다니던 친구들끼리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이 끊어졌다. 건너 건너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도 있지만, 아예 소식을 모르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운동회 때만큼 바쁘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나처럼 한 끼 때우기 위해 김밥을 먹을 때면 운동회 날의 김밥이 그립고 서로의 소식이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너는 잘 있는지, 너희 부모님은 잘 계신지, 어머니 김밥은 여전히 맛있는지.





작가의 이전글 석 장의 비틀스 컨필레이션 앨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