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소설집
-부담은 명예래
본인이 평소 즐겨 보는 스포츠 프로그램 속 표현을 인용한 거였다. 몇 해 전 한국 피겨 선수가 빙판에 오르자 한 해설위원이 존경과 응원의 뜻을 담아 한 말. 언젠가 성민이 동영상 링크를 보내준 덕에 그 선수가 누군지 아는 이연이 받아쳤다.
-그건 슈퍼스타 얘기고.
누군가를 작정하고 관찰하지 않는다 해도. 어떤 인물을 그냥 아는 것과 상상하는 것. 실제로 겪는 일은 전혀 달랐다.
그렇지만 그건 나이 들며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적당히 낮춘, 까다로운 듯 무심한 관심이었다. 다만 이연은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상대에게 직점 가하는 힘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통제력이라 할까, 오랜 시간 '판단'과 '선택'이 몸에 밴 이들이 뿜어내는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이었다. 얼핏 사람 좋아 보이는 박도 마찬가지였다. 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그러나 여전히 '쇼'가 된 계급 상승을, 그 쇼가 '모욕과 영광을 동시에 주는 방식'을 밀도 높고 느긋한 어휘로 토론했다. '요즘 관심만큼 비싼 것도 없다'면서 '자기 서사가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식의 말도 이어나갔다.
-홈 파티 / 김애란-
단편소설집이다. 첫 단편 하나 읽는데 필타한 문장이 저만큼이다. 애란 작가는 1980년생으로 올해 마흔여섯이 됐다. 김 작가 또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밑줄을 긋거나 책 끝을 접은 적이 있던가, 생각했다. 없진 않지만 애란 작가 책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김애란의 글을 읽기 시작한 건 에세이 '잊기 좋은 이름'부터다. 그리고 단편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갇혔다. 책의 첫 수록작 '입동'을 두 번 읽고, 두 번째 작품 '노찬성과 에반'을 네 번 읽었다.
소설 읽기는 자기 자신 읽기다. 소설이란 자석에 끌리는 자기 속의 철가루들이 자기장처럼 장(場)을 이룬다. 묵은 슬픔 같은 감정, 멀게 느껴지던 아버지 같은 인물, 돌이키기 싫은 시기 같은 때, 수치스러운 기억이 묻어있는 장면이 우수수 일어나 엉기고 붙어서 하나의 작은 장을 만든다. 아무 소설이나 그렇진 않다. 잘 쓴 소설이라야 그리 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인간을 아는 사람이 쓴 소설이다. 늘 그랬다.
예스 24였나, 채널 예스였나, 김애란 작가 소개글에서 '젊은 거장'이란 호칭을 본 적이 있다. 내게 거장은 '스승'의 뉘앙스로 읽힌다. 스승은 가르치지 않는다. 보여주는 존재다. 뚫고 나온 세월, 지난한 과정 동안 마주한 자신의 바닥을 넉넉히 품는 사람을 스승, 거장이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읽은 김애란은 이런 사람이다. 부담과 명예가 비용과 대가임을, 거리에 따라 인간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를 아는 사람. 나이 듦이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깎아내는 과정임을, 편견이 사라지는 건 성장이 아니라 '수양'의 결과임을 아는 사람. 그리고 타인의 관심이 언제든 모욕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
오래전, 나는 나의 좁고 지저분한 바닥을 보았다. 그보다 더 오래전, 나는 나를 높고 넓고 맑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 낙폭이 너무 커서 적잖이 당황한 세월도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를 깊이 읽는 것이 타인을 읽는 길이란 걸. 애란 작가는 어떤 세월을 살아냈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