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네리즘의 시적 함정]

1. 우리 주식 음식 같은 시

by 이승섭 대중문화평론가


우리네가 주로 먹는 주식 음식은 밥, 김치, 된장국이다.

밥, 김치, 된장국을 먹어도 분명 주식인 것은 사실이기에 또 다시 밥, 김치를 찾게된다. 정작 맛깔스럽다거나 아니면 식성에 맞아서 먹는다고 해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싫은 것을, 반복적으로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외식을 한다 해도 일상적일 수는 없으며 간혹 즐기는 정도이지 다시 밥, 김치, 혹은 된장국으로 돌아가는 회전의 일상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가. 선대 조상이 그렇게 습관화했기 때문에, 따라 한다는 말도 그럴싸하고, 다른 방도가 없기에 관습의 길을 갈 뿐이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한가한 쉬임]


굳이 외국 여행 중에도 꼭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풍경을 목도(目睹)할 수 있다. 단 며칠의 여행도 그런 감정을 갖는 이유는 우리 것에, 대한 맛이 이미 체질적으로 굳어진 현상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뜻을 우리 시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도 생각이 든다. 밥, 김치, 된장국 같은 끈질긴 맛이 떨어질 수 없는 절대의 인자를 내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만네리즘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언어를 써본 것이다.

만네리즘이란 일상에서는 항상 틀에 박힌 방식이나 태도를 취해 신선함과 독창성을 잃은 '타성(惰性)'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원래는 미술에서 유래한 용어로, 거장들의 형식을 모방하며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다 타성에 젖어 진부해지는 경향을 뜻하는 말이지만 만네리즘 함정에 빠지는 말로 비틀어 보았다.


필자는 김소월의 1920년도 <진달래꽃>을 오늘에 명작으로 추켜세우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1920년대의 여성상은 삼종지도(三從之道)의 관습에는 당연함이 오늘에 와서 이별의 주체가 그렇게 나약한 모양을 현대의 자유 발랄한 여성에게 지표로 강요시키기에는 무리라 보기 때문이다.

문학에 보편성의 문제는 시간을 극복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보편성의 기준 잣대에 어긋난 결과라는 뜻으로 보면 시를 창작하는 시인들의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실 명작의 조건은 오늘에서 내일로 혹은 미래로의 시간으로 등성이를 넘어가는 일은 보편성의 범주 속에서 설정될 것이다. 우리의 맛은 결국 보편성의 범주 속에서 입맛으로 느끼는 일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시간의 등성이를 넘어서 좋아하는 맛깔의 시-


그런 바람의 시를 만나면 어디서나 맛깔스러워 좋다. 얼치기 표정의 시가 아니라 순수한 쌀밥에 김치와 된장국을 곁들인 시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에 비유의 간격이 멀수록 신선한 맛을 전달하는 것은 시가 갖는 특권이다.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산문과는 달리 시는 있음 그대로가 시치미 속에서 상징이나 은유의 의상을 입혀 시인이 의도를 전달하는 묘미는 확실히 시가 갖는 특징이다. 더구나 장황한 진술이 아닌 응축의 표정에서 길고 긴 의미가 있을 때, 시는 산문이 갖는 농설(弄舌)을 잠재우는 매력이 있다.

세상사는 모두 일이관지(一以貫之)로 설명된다.


바둑의 돌에 대한 운행에 천만의 길이 있고 운동선수의 손짓 발짓에도 다양한 의도가 명백한 것은 삶의 길에서도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2등은 없다. 이겨야 한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승리의 요건이 곧 스포츠라는 이름에 승부를 위한 전략과 고도의 전술을 내장한 싸움의 세계-

16세기 이전부터 스콜틀랜드의 얼음판에서 상대의 돌을 밀어내는, 이른바 스포츠의 이름이 최근에 주목받은 스포츠, 경기이며 전략이 필요한 경기이다.

돌이 돌을 밀어내고 때로는 피하기도 하면서

돌아온 탕자처럼 미끄러지면서도, 어떡하든

한 발짝이라도 더 가야 할 집이 있다.

알몸으로 얼음 바닥 차디찬 승부의 세계에서

돌 하나가 가야 할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컬링> 강우식 중

도달해야 할 ‘집’은 목적지이고, 어떤 방법이든 빨리 집에 이르는 비유는 곧 삶의 일상이 겹쳐진다. 탕아처럼 미끄러지면서도 ‘어떡하든’에 수단과 방법을 스포츠의 룰에 맞추어 온갖 기교를 동원하여 목적지에 빨리 당도할 때, 비로소 성공의 이름이 따라올 것이기에 컬링이라는 운동을 통해 삶의 교훈을 오버랩한 시인의 시적 의도는 세태를 비판하는 의도가 명료하다.

오리발과 변명에 악다구니로 상대의 잘못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분풀이를 일삼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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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산초에서 아웃사이더로 집필 중 [leeseungseop.com ]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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