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응시하는 눈에서 기록하는 손으로
비평가는 본래 ‘읽는 자’이자 ‘감시하는 자’이다. 타인이 직조해 낸 텍스트의 숲을 거닐며 그 안에 숨겨진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고, 아름다움의 기원을 추적하며, 때로는 작가조차 의도하지 않았던 무의식의 지층을 파헤친다. 그러나 수많은 걸작과 태작(駄作) 사이
를 유영하며 내가 깨달은 단 하나의 냉혹한 진실은, '쓰이지 않은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영상의 시대, 숏폼의 시대에 왜 굳이 고통스러운 침묵을 뚫고 글을 써야 하느냐고.
그리고 왜 쓰는지 ?
그러나 인간의 뇌는 한계치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 기억력 , 행동, 모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며 모든 기능이 저물어 간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생로병사이다. 그래서 필자는 하루라도 젊음이 있을 때 서사를 그리라는 것이다. 하여
평론가의 시선에서 이 질문은 곧 "왜 당신은 당신의 삶을 해석하기를 포기하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동치다.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흩어지는 존재의 파편들을 언어라는 그물로 건져 올려 '의미'라는 생명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1. 망각에 저항하는 유일한 알리바이
인간의 기억은 지극히 편향적이고 휘발적이다. 어제의 감동은 오늘의 무딤 속으로 사라지고, 고통은 망각이라는 자기 방어 기제 뒤로 숨어버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 속에 '말뚝'을 박는 행위다.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기록되지 않은 생(生)은 서사가 결여된 데이터의 나열에 불과하다. 우리가 문장을 적어 내려갈 때, 비로소 모호했던 감정은 '슬픔'이나 '환희'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갖게 된다. 텍스트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조우하는 유일한 플랫폼이다. 1년 전 내가 쓴 일기를 읽는 행위는 타인이 쓴 소설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비평적 체험을 선사한다. 그곳에는 지금은 잃어버린 시선, 지금은 가질 수 없는 순수함, 그리고 지금의 내가 비판해야 마땅할 과거의 오만이 고스란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라는 존재가 이 세계를 통과했다는 가장 확실한 알리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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