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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작,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작가(김인숙) - 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5기


변화의 시작,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 김인숙 작가 -


 나는 콘텐츠와 강의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나눠준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남은 바로 청년들이다. 내가 학교 밖에서 부지런히 했던 활동들이 나의 시야를 넓혀주고 기회를 만들어 주었듯이 내가 그들에게 아주 작은 계기라도 만들어줄 수 있다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과 함께하는 일은 나에게 조건과 상황을 따지지 않게 만든다.


 이번에는 좀 재미있는 방식의 제안을 받았다. 조치원의 도시재생 아이디어를 내는 서포터즈 활동을 하는 청년들과 대화를 나눠 달라는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청년’만 보고 덜컥 수락을 했다.  드디어 온라인으로 그들을 만나는 날이 되었다. 모니터 너머의 청년들의 눈빛은 언제 봐도 반짝거린다. 과거의 나도 그랬겠지. 그래서 더 성심성의껏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마지막은 내가 질문할 차례였다. 나는 그들에게 ‘왜 하필 이 활동’을 하려고 선택했냐고 물었다. 많은 서포터즈 활동 중에 왜 하필 ‘도시재생’과 관련된 활동이며 왜 하필 ‘조치원’이었는지 말이다. 수많은 선택지 중 어떤 일을 결정한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가 학교 입학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 정말 많이 좋아졌거든요. 부모님이 오실 때마다 많이 발전했다고 놀라세요.”


“근처 대학을 다니거든요. 조치원은 저에게 그저 ‘환승역’일 뿐이었어요. 역 주변을 봤을 땐 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살펴보니 아니더라고요. 사명감을 가지고 도시재생에 노력해 보고픈 욕심이 생겼습니다.”   

  

 역시 이야기는 향수를 부른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 결국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 외삼촌댁에 놀러 갈 때마다 환승했던 ‘왕십리역’은 그렇게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어느덧 서울에 거주한 지 15년이 되었지만 신입생 때 고작 몇 년 거주했던 왕십리가 나에겐 제2의 고향이다. 1학년 땐 학교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영화관도 없어서 강변 CGV를 가야 했고, 상대적으로 여학생 수가 적은 학교라 화장품 살 곳도 마땅치 않아 건대입구까지 쇼핑을 하러 원정을 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화관은 물론 이마트까지 생겨 거의 천지개벽한 수준으로 발전을 했다.


 졸업한 지 꽤 되었음에도 대학 동기, 선후배와의 모임은 언제나 학교 주변 술집이다. 선배 결혼식이 끝나고 다 같이 택시를 타고 우르르 왕십리로 몰려가기도 했다. 이젠 돈도 다들 잘 벌면서, 굳이 학창 시절 저렴해서 찾아갔던 그 술집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그 시절 가장 즐겨먹던 안주와 비싸서 고민했던 비싼 안주를 양껏 시킨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 애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곳엔 내가 담겨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 함께한 사람, 나누었던 대화, 자주 갔던 식당까지. 그곳이 예전 같지 않다면 너무나도 서글플 것이다. 


“어릴 적 조치원에서 살았거든요. 굉장히 촌이었는데 어느새 많이 발전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조치원에서 자란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고향이 떠올랐다. 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순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시내가 가까워서 참 좋았다. 짧은 점심시간에도 시내에 나가 군것질을 했고, 야자 시간을 앞두고 잠깐 시내로 나가 코인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시장 한편에 줄지어 서있던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1000원짜리 분식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가끔 순천에 내려가 보면 이제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당시엔 허허벌판이었던 논과 밭이 오히려 개발되어 신도심이 되었고, 젊은 친구들은 그곳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끔 가는 나는 화려한 신도심이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아주 가끔, 고향에 내려가서 살게 된다면 난 무슨 일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자그마한 동네 책방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마케팅 회사를 차려서 게스트하우스들 마케팅을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을 하게 되건, 사무실은 내가 익숙했던 그 동네에 차릴 것 같다. 아주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순천에서 활동하시는 기획자분들의 소식을 접한다. 순천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서포터즈로 모인 친구들도 비슷한 마음을 가진 듯했다. 내가 자라난 그곳,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조치원이 더욱더 살기 좋았으면 하는 마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찾아왔을 때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 거기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기여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모인 것이다.     


 비대면 모임 이후, 서포터즈 친구들이 만든 기획안을 이메일로 받았다. 이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려면 어떤 것을 보완해야 할지 알려주는 게 내 역할이었다. 역시나 패기와 열정이 가득 찬 아이디어가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얼마나 고심한 끝에 작성했을지가 눈에 그려졌다.


 조치원은 이미 큰 것을 얻었다. 이 청년들이 조치원이라는 공간에 애착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조치원의 어떤 면을 더 활성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곳을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위해 조치원의 면면을 살펴보았을 터다. 그러다 조용히 걷기 좋은 공원, 알록달록한 벽화들로 가득한 마을, 전통시장의 색다른 매력까지 발견한 그들이 그곳을 가만히 둘 리가 없다.


 그들이 즐겨하는 유튜브와 SNS를 활용해 전통시장을 더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요즘 화두로 떠오른 친환경 요소를 활용하기 위해 제로 웨이스트 샵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현실화될 순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청년들이 이런 고민을 시작한 것부터가 도시재생의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이들의 열정과 애정이 그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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