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야기
순례길 첫 날.
피레네산맥을 넘고 넘어 보르다 산장에 도착한 건 약 세 시경인데, 숙소 주인 로랑이 나랑 막 비슷하게 도착했다.
일찍 온 사람들은 각자 할 것들을 하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레몬 시럽이 들어간 시원~한 웰컴 드링크를 나눠주는 주인장 로렌 -
로랑은 숙소를 모든 사람의 편리를 위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편이었고 덕분에 숙소는 무척이나 깨끗했다.
등산화와 백팩은 아래층에 놓고 필요한 것만 박스에 넣어 자기 침대로 가져갈 수 있다.
베드버그 방지와 청결함 유지를 위해서란다.
저녁식사는 7시 반-
샤워하고 내 자리 침대 정리하고 하니 배가 무척 고파온다.
시계를 보니 겨우 5시다.
벤치에 앉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잘 갔다.
같이 산장으로 올라온 프랑스 부부도 보르다 숙소에 같이 묵는다.
그 외에 미국에서 온 부부, 전날 같은 숙소에 묵은 루디, 한국 부부, 스페인 남자애 등이 있었다.
그런데…시간을 떼우려 해도 배가 고파 미칠 것 같다.
꼬르륵을 넘어 허기져서 힘이 든다..
내 배낭에 먹을 것은 없다. 배낭에는 항상 간식거리를 챙겨야 하는구나. 레슨을 제대로 배웠다.
이야기하던 프랑스 아주머니께 염치불구 물었다.
“아주머니, 혹시 간식거리 있으세요? 저 배가 고파 미치겠어요. ㅠ”
아주머니가 방에 들어가서는 작은 비스킷 한 봉지를 가지고 나오셨다. “이거 먹어. 나는 계속 먹어줘야 해서 가방에 먹을 걸 들고 다녀”
정말 너무너무 감사했다, 생명의 은인처럼-
야금야금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면서 먹어치웠다.
참고로 샤워는 코인을 주는데 그 배경은 산이라 물 얻는게 쉽지 않아서란다.
코인을 넣는 순간부터 4분간 물이 나온다. 처음에는 로렌 설명을 듣고 다들 “뭐시라??!!!” 믿을 수 없어했지만 알아서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는 “4분으로 샤워가 가능하단 것을 알게 됐어.” “사실 4분도 시간이 길더라고. 나는 시간이 많이 남았어.” 같은 말을 해댔다.
나도 2분정도면 머리 감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세수나 양치는 세면대에서 하면 되고 시간 제한이 없다.
피레네 산은 자원의 소중함도 일깨워준다.
햇살이 뜨겁다가 점점 해가 지니 서늘해진다.
필리핀 아메리칸 루디가 와서 맥주 한 잔 할련지 묻는다. 좋지~~! 덕분에 첫 로컬 맥주를 맛보게 됐다. 피레네에서!!
산미구엘을 가져왔길래 멕시코 맥주를 가져왓네 했는데 이름만 같은 스페인 맥주였다.
맥주는 스페인어로 세르베자~! Cerveza
하나씩 배워나간다.
서로 몇 천 킬로미터씩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간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갈 때 호스트 로랑이 두 명만 와서 도와달라고 한다.
나랑 덴마크 친구랑 가서 테이블 세팅하는 것을 도왔다.
약 15명 정도 있었다.
세팅을 끝내고 모두들 부엌에 모였다.
오늘 식사는 야채 수프 - 감자 호박 그라탕 - 로스트 돼지고기 - 바스크 케이크이다.
보르다에는 이곳만의 저녁식사 문화가 있는데 돌아가며 자기소개, 산티아고 길을 걷게된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 깊이는 본인 원하는 데까지 하면 된다.
불어와 영어 두 개 언어가 사용 되는데 불어로 다른 사람들의 소개를 통역해 줄 수 있어서 기뻤다.
모두의 이야기가 다르고 특별했다. 어떤 이유든 우리는 함께 이곳에서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캐나다 알버타에서 온 D 아주머니 이야기 -
“I have a great job, wonderful kids, but now what? What’s next?“
고요속 마음이 뭉클해져 혼났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로렌이 이전 쉐프였던만큼 음식은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산이라 저녁에는 춥다.
어둠 속 별을 보지는 못했다. 잠깐 나가서 고개를 들었는데 상상했던 반짝반짝거림은 없었다.
한국에서 여기 오기까지 겪은 불면증이 사라졌다.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곧바로 꿈나라로 향한다.
육체가 이렇게 고되면 쉽게 잠을 잘 수 있구나.
저녁식사 때 와인과 맥주도 한몫 했겠다.
집에서 몇 천미터 떨어진 피레네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