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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양 Jul 13. 2023

잘 죽기 클럽

아티스트웨이 모닝 페이지

오늘로 모닝페이지 작성을 시작한 지 13일째다.

인스타 피드에서 종종 보았던 책이 있는데, 제목이 '아티스트 웨이', 부제가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이다.

이 책을 이용한 피드를 올린 인친들은 대부분 nft 미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분 들 이어서 책을 접한 건 꽤 오래전이었음에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아마도 미술 활동에 영감을 주는 그런 책이라고 지레짐작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있는 분께서 이 책을 추천하셨고 마침 한국에서 들어오는 지인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종이책을 구입해 전달받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인기가 좋고, 추천을 하는 걸까 궁금하고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오래지 않아 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도무지 모닝페이지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무얼 써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고, 12주 동안 내가 매일매일 아침에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그냥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얼마 후 내가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북클럽에서 새로운 기수가 시작되면서 멤버를 추가 모집했는데, 바로 이 책을 3개월 동안 읽는 모임이었다. 잠깐이지만 혼자 해보려다가 커다란 벽에 부딪힌 경험이 있기에 이것은 무조건 챌린지처럼 동지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해 모임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망의 첫날.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글을 쓴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 일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지만, 일단 해보기로 하고 책상에 앉았다. 다행히 요즘 아침운동을 하고 있어서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세 페이지나 어떻게 쓰지.. 무엇에 대해 쓰지.. 어떤 형식으로 쓰지...

고민들이 무색하게 쓸거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전개인데?


'도대체 눈 뜨자마자 어떻게 세 페이지나 쓰냐'는 아직 해보지 않았을 때 일어난 마음이다. 직접 시도를 해보고 '정말 쓸 게 없다'라든지 '역시 어렵네'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경험에 따른 반응일 것이다. 걱정과 두려움이 무색하게 세 페이지를 순식간에 적고 나서 웃음이 나왔다. 어이없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모닝페이지가 6일 차에 접어들었을 때 즈음에 떠오른 생각이 있다.


'나는 꼭 잘 죽고 싶다...'


잘 살고 싶다도 아니고, 잘 죽고 싶다니.. 이게 무슨 비관적인 발언인가 싶겠지만 전혀 아니다. 비참하지 않고, 불쌍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고 아름답게 죽고 싶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동안에 준비를 잘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 정신을 가지고 내 몸뚱이를 내가 건사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잘 죽기 위해서는 사는 동안에 엄청 잘 살아야 한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해봤지만, 잘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성당에서 보는 많은 노인들을 보며 저렇게 구부러지지는 말아야지 생각은 종종 했다. 좋은 자세를 유지해서 할머니가 되어도 허리 꼿꼿하게 지팡이 짚고 걸을 거다. (지팡이를 무조건 안 쓰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필요하면 필요한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게 내 생각.) 자세가 꼿꼿하고 날씬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젊었을 때 발레를 하셨다는 말씀에 더 확신이 들었다. 나도 젊은 동안 좋은 자세로 살아야지.


그럼 왜 갑자기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을까.

사실 갑자기는 아닐 거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얼마큼씩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가족이 생기고나서부터 짧은 국내선 비행기를 탈 때에도 종종 극단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전혀 없던 현상이다. 심지어 직업이 승무원이었는데 비행기 타는 게 무서울 리가 없었다. 아이들이 생기자 혹시 애들을 야단치고 사과도 못하고 비행기에 탔거나, 남편과 싸움을 풀지 않고 탄 날엔 그렇게 후회가 밀려들 수가 없었다. 물론 무사히 착륙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주변에 아픈 사람들 이야기가 슬슬 들려온다. 친한 언니의 남편은 갑작스레 암 진단을 받았다. 엄마와 동갑인 친구분은 치매가 왔다. 가족처럼 지내던 혜경언니의 남편도 작년에 세상을 떠났고, 정말 어이없게도 바로 몇 주 전에 파티를 열었던 시누 남편이 갑자기 뇌종양 진단을 받더니 일 년 동안 투병하고 코시국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 2년 전이다.


죽음은 공기처럼 우리 곁에 있지만 그렇기에 우린 그 존재를 종종 잊는다. 마치 외국인들이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을 아직 휴전 중인 위험한 곳으로 생각하지만 한국인들은 전혀 불안도 걱정도 없이 사는 것과 같다. 늘 곁에 있으면 관심이 줄어든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의 존재가 고개를 드는 날이 오면 그때는 안타깝지만 너무 늦는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희생하여 내일을, 내년을 준비한다.


내가 죽음을 직시하게 된 데에는 최근에 읽은 'Crying in H mart'책의 영향도 있다. 둘째 아이가 생일 선물로 사준 책이다. 물론 내가 골랐다. 이민자로 미국에서 살던 한국인 여자가 암에 걸리고 투병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여자의 딸이 그 과정을 사실적이고 감정적으로 그려내어 마치 그 여정을 다 함께 겪은 듯이 숨이 가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딸이 바라던 엄마의 마지막 한 마디가, 홀로 남겨질 외동딸에게 전하는 지혜의 말이나 당부나, 사랑고백이 아니라 투병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며 흘러나온 '아파,, 아파,,'라는 것.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직접 경험이 아님에도 나에게 어떤 강력한 잔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간접 경험이었다. 나는 절대 마지막 말을 '아파'로 남기고 싶지 않다.




성당에서 차량 이동봉사를 하는데, 몇 주에 한 번꼴로 내 전화번호가 주보에 올라간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번호를 보고 전화를 하신다. 지난번에는 우리 성당에서 가장 고령이신 할아버지를 두 번 도와드렸다. 시내로 쇼핑가 실 때 한번,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실 때 한번. 결혼 70주년을 맞으신 할아버지는 귀도 잘 안 들리지만 똑바로 걷는 것조차 어려운 것 같았다. 지팡이는 짚지 않으셨지만 아마도 본인은 똑바로 걷고 있을 텐데 몸은 자꾸 옆으로 가서 나를 상점들 쪽으로 밀려나게 하셨었다. 노화는 참 잔인하다.


이번에는 병원에 가신다는 부부를 도와드렸다. 이름과 얼굴이 매치가 되지 않아 누구인지도 모르고 처음 듣는 주소로 픽업을 갔을 때, 성당에서 자주 뵙던 할머니가 나와계셨다. 그리고는 곧이어 남편분이 나오셨는데...

실은 너무 놀라서 표정관리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신다는 할아버지는, 미국에서 아주 오래전에 건너왔음에도 여전히 강한 미국식 억양으로 내가 성당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 친근하게 말도 자주 걸어주시던 폴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들 중에 청년축에 속한다고 볼 정도로 키도 아주 훤칠하시고 정정하시고 에너지가 넘치던 분이었다. 바로 1년 전에 자전거로 햄튼코트까지 왕복 13마일을 다녀오신 분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분은...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영혼을 빨아들이는 사자들이 생명의 절반쯤 후욱하고 들이마시고 떠난 듯한 모습이었다. 이마는 깨져서 아직도 선홍빛의 상처가 열려 있고, 불편한 거동으로 아담한 내 차에 커다란 몸을 슬로모션으로 구겨 넣으시면서 머리도 한번 찧으셨다. 도대체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할아버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순간이구나. 노인이 산송장이 되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구나.


시간을 막을 도리도 없고 노화를 멈출 방법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다가는 내가 그리는 아름다운 마지막을 맞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잘 준비를 해 볼 셈이다. 잘 죽는다는 것은 그 마지막 시점이 노인이 아닐 경우도 포함한다. 인명은 재천이라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언제든 불쑥 찾아오더라도 나는 몸도 마음도 모두 준비가 되어 있고 싶다.


후회가 밀려오지 않도록 충분하게 사랑할 것이고 자책하지 않도록 성심을 다해 관계를 돌 볼 것이다. 줄 수 있는 것은 내줄 것이고,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눌 것이다. 많이 감사하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시도해 보고 온 맘을 다해서 정성스럽게 살 것이다. 상대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마냥 잘해주지만도 않을 것이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할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도 하고 반성하며 성장도 할 것이다. 삶을 온몸 가득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 것이다. 최소한 그런 노력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게 바로 나의 잘 죽기 위한 계획이다.


잘 죽기 클럽, 함께 하시겠습니까?


사랑합니다. 폴. 자스민. 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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