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소파를 번갈아 가며 누워하는 여행

병가중에 찾아오는 부자놀이의 즐거움

by Surlaplace

큰 수술 후 일을 쉰 지 5주 차. 출근할 땐 하루에 세 잔씩 주유하듯 블랙으로 마셔대던 커피가 백수로 놀고먹는 요새는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굳이 생산성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자 즐기던 커피도 써지고 이젠 우유 거품 가득한 플랫화이트가 아니면 도통 넘어가지 않는 호사스런 혀를 가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카페인에 예민해졌는지 오후에 커피라도 한 잔 하는 날이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노동이 사라진 하루에 잉여시간만 잔뜩 남은 내 정신은 외부 인풋에 더욱 기민해지고 맑아진다. 밤에 침대에 눕고도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새벽에 깨는 일 없이 깊은 잠에 든다. 배를 가르는 수술 후 나를 치유하는데 포커스를 맞춘 내 육신의 발버둥이다. 새벽에 혹여라도 통증으로 깨는 날에는 침대에서 조심스레 일어나 진통제 두 종류로 정신에 겹겹히 거미줄을 치고, 마치 배를 꿰매놓은 봉제인형처럼 느껴지는 나의 하체를 고스란히 느끼며 다리 한 쪽씩 침대에 다시 올리고 깊은 잠에 빠진다.


몸의 기동성에도 제약이 생긴 이 회복 기간의 나에게는 잠시 집 밖에 나가는 5분에서 10분의 재활스러운 산책이 유일한 하루의 성취 목표이자 기쁨이다. 쉴 새 없이 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외노자) 로써 바둥대며 일하며 살다가 하루의 목표란 것이 바깥에 발 한 자욱 디뎌보기, 10분 바깥 산책하기와 같은 단순하고 쉬운 것으로 바뀐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이런 '야망찬' 산책이란 것을 끝내고 나면 그 뒤로의 하루는 실컷 게을러도 되는 온전한 나만의 것이다. 하지만 고자극에 길들여진 뇌는 하루 종일 여전히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에 휴식하는 일과도 사실은 일이 된다. 온갖 영화와 드라마, 독서등을 쳇바퀴 돌면서 나의 정신은 집 밖에 멀리 나가지 못하는 내 육신 대신에 내 역마살을 제대로 충족시켜 준다. 비문학, 문학, 스릴러, 롬콤, 코미디 등 장르와 매체를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다른 이’의 삶, 서사, 혹은 더욱 뭉뚱그려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나는 육신이야 몇 주 째 늘어져 누워있지만 온갖 곳을 여행하는 자유인이다.


외노자는 사실 연말에 어디 여행을 가거나 집에 가지 않으면 할 일이 없다. 고로 이 ‘방구석 여행’은 사실은 연말마다 행하는 나의 의식이다. 이번 큰 수술이 아니었다면 원래는 한 1-2주 정도나 했었을 이 방구석 여행을 덕분에 6주 차.. 하고 있다. 6주나 되면 지겨울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지겹지 않다. 내가 몇백억 자산가가 되어서 굳이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면 이런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하자 그토록 바라던 부자의 삶이 이렇게 누리기 쉬운 것이었나 싶다. 이렇게 갑자기 아프기 전까지는 다음 이직은 어디로 할지, 어떤 자격증을 따고 무슨 공부를 해서 마치 나 자신을 게임 캐릭터 성장시키듯이 생산성만 고민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에 지쳐있었는지 쉬는 병가 기간에는 아무것도 생산하고 싶지 않다.


대신에 보다 열심히, 최대한 무용한 것들을 사부작거리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뜸 뜨개질을 한다던가 (내가 짜는 구멍 숭숭 뚫린 목도리는 기계가 능숙하게 직조해 주는 아름다운 결과물에 비할 바가 못되며, 내가 만든 작품이라는 뿌듯함을 느낄 제작자인 나 말고는 아무에게도 효용가치가 없다), 적힌 번호대로 색칠 놀이만 하면 되는 paint by number 키트를 사서 끄적여본다. 책을 읽는 것도 당장 지루한 나의 뇌를 간질이는 즐거움을 주지만 병가 기간 내 뒤적여본 몇 권 정도로는 도통 나의 성장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없을 것이 분명하며 장기적으로 지속해야 겨우 양동이에 한 방울 두 방울 모으는 빗방울 정도의 효용인 것이다. 당장의 생산이나 경제활동에 기여하지 않는 무용한 것들만 골라하는 이 즐거움은 비할 데가 없이 사치스러운 신선놀음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조상님들도 제일 부유한 우리 양반님네들은 난이나 치고 글공부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니 세상에 좋은 건 제일 먼저 알고 즐긴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길디 긴 6주의 병가로 나는 시간이 넘쳐나게 되었고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과 함께 졸지에 온갖 종류의 예술을 즐기며 쉴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자꾸 무용한 것이라 일컬으니 마치 몇 년 전 꽤 유명했던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떠오른다. 무용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남이 만든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생산활동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만 누리는, 인간 활동 중 가장 호사로운 것 중 하나이니 그 대사를 뱉은 한성 최고 부자 도련님께는 참 어울리는 라인이었다. 인공지능으로 내가 지금 당장 가진 직업도 위태로워지는 세태에, 다양하게 무용한 것들을 즐기면서 예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Ex Machina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정확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보고 난 뒤 친구와 함께 예술의 영역과 로봇에 대해 열띤 토론을 떠올렸던 것은 기억난다. 잭슨 폴록이 캔버스에 페인트를 뿌려 완성한 작품은, 로봇이 같은 행위를 해서 완성한 작품에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나? 사람이 개입한 예술 작품을 (아직까지는) 더 높이 쳐주는 이유는 사실은 인간의 손으로 그리는 선과 함께 생겨나는 수많은 가능성, 평행우주, 예측불가능성, 불완전함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인공지능이 나머지 생산활동을 다 책임져 준다면 그 후에 남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런 결점투성이에, 랜덤함이 반은 의도적으로 반은 운명적으로 섞인, 그런 유니크한 예술활동 아닌가? 결국은 이걸 만들고 즐기는게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 중의 최고 정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