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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tain Life
By Sustain Life . Jul 12. 2017

여름, 샹그리아

나의 여름







 7월 _ 시작과 동시에 지속된 장마, 이후 소강상태에서 발효된 폭염 주의보와 열대야 그리고 고온 다습한 공기 중을 떠돌며 천연색을 머금고 생장을 거듭해가는 이 세계의 사물들. 지붕과 담장 너머로 왠지 비현실적인 짙은 주황빛 꽃을 가득 머금은 능소화 덩굴이 만개했다가, 장맛비에 휩쓸려 일찌감치 낙화해 버린 감이 깃들고. 세차게 들이치는 굵은 빗줄기 탓에 얼마간 방치된 나의 옥상 정원은 오히려 더욱 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른 것만 같다. 폐허로 화한 그 사이에서, 과포화 직전 상태에 육박한 대기 속을 유유히 부유하는 통통한 허브 몇 줄기를 내 것이 아닌 냥 간신이 뜯어 비로소 여름을 즐겨 본다. 이것이 여름일까? 



<마술적 사실주의>가 떠오르는 레몬 접시 위의 레몬과 오렌지. 



 손끝에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상큼한 여름의 향기가 공기 중에 퍼져 나간다. 이것이 허브의 매력 아니, 마력일까? 



 김승옥의 1967년 작, <내가 훔친 여름>은 그 제목만큼이나 소설 속 문장 또한 빛을 발한다. 여름을 훔친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다. 단지 피서지에서 만난 젊은 여인과의 정사를 '여름을 훔치다'라는 은유로 빗댄 것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유에 감탄을 머금으며 훔치고픈 여름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곤 했는데 아마 내가 훔친 여름이란, 이런 모습에 가까울 것 같다. 과즙이 흘러넘치는 상큼한 시트러스의 단면과 풍부한 허브향이 마구 뒤섞인 분위기. 너무 상큼하기만 한 건가? 



그렇게 훔친 여름을, 싸구려 와인 속에 담가 여름을 맛 볼 작정이다. 



어디선가 맛 본 크림치즈와 오렌지의 환상적인 조합은 자연스럽게 이런 모양을 한 카나페로 이끌고.



 짠내 나는 프로슈토와 역시, 짭짜름한 그린 올리브 절임은 부패 속도가 저장과 소비의 속도를 거뜬히 이겨내는 한 여름 지혜로운 먹거리.


Summer Canapes, 2017_July






여름, 샹그리아





 이것이 여름일까? 그래 이것이 여름이다. 비치파라솔, 눈부신 백사장, 검푸르고 부드러운 파도, 빨간 수영복, 풍만한 아가씨의 웃는 얼굴, 하얗고 가지런한 이빨, 짧기 때문에 유쾌한 자유(김승옥, 내가 훔친 여름)


 그것들은 나의 여름 또한 아니다. 나의 여름은, 일 년 중 반을 흘러 보낸 자괴감, 아웃풋을 가늠할 수 없는 미적지근한 일거리, 땀 내음에 찌든 내 모습, 권태로운 낮잠과 차가운 커피의 유혹, 어디선가 들이친 장맛비에 증식한 퀘퀘한 곰팡내와의 싸움, 그리고 나면 내 앞에 펼쳐진 이 여름의 세계. 써머타임처럼 복되고 나른한 시간들. 장마가 스치고 간 뒤 도처에 속삭이는 여름의 청량한 울림. 언제고 반복되는 평온한 나의 일상, 이따금씩 펼쳐진 샹그리아와 카나페의 시간. 이것이 나의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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