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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tain Life
by Sustain Life Jul 06. 2018

그해 여름

하지夏至의 세계





 


 의례히 시골행이다. 영감이 딸리거나 무언가 충만해지고자, 혹은 전무 승진을 앞둔 <무진기행>의 나처럼 현실 도피를 위해. 달리는 고속열차 창 측에 앉아 흐르는 세계를 관망하는 건 언제나 좋다. 특히 만물이 세계의 끝을 향해 뻗어 나가려는 듯한 싱그러움으로 가득 찬 이맘때 즈음엔 더더욱. 가방엔 어려운 철학서와 주제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은 시집이 한 권씩 들었지만 플랫폼에 발을 내딛기까지 꺼내들진 않았다. 이것도 오랜 습관 중 하나. 




 무더운 남쪽으로 귀향하는 건 늘 벅차다. 언제나 남쪽을 꿈꾸는 건 오래된 이상향인가? 하지夏至의 끝자락에서 여름을 만난다. 



 여름 속엔 또 다른 작은 여름들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다. 무르익은 신록에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산천의 오뉴월을 지나, 온난전선과 한랭전선이 팽팽한 기싸움 끝에 펼쳐 놓은 장마전선의 고온다습한 한여름 속으로 빠져들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영원히 뻗어나갈 것만 같던 싱그러운 녹음이 한 풀 꺾인 채 지평선 너머로 소멸해가는 늦여름까지. 



 하지의 태양은 너무도 눈이 부시고 들판의 야생화는 쇄 한 아름다움을 풍기며, 지천의 초록 잎사귀는 싱그러움 보다는 짙은 채도의 원숙한 자태를 드러낸다. 



나는 여름의 세계를 더욱 세밀한 단위로 쪼개어 지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무성하게 만개한 은 사귀들이 바람결에 서로 부닥치며 만들어내고 있는 청량한 울림과 이따금씩 희미하게 스쳐가는 자동차의 속도감. 만물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날카롭게 반짝이는 눈부신 그 조각난 채 겨나간 햇빛만큼이나 부산스러운  참새떼의 재잘거림. 나른한 한 여름 안에서절정에 치달은 오후의 시간. 내리쬐는 햇살이 모든 사물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던 한 때북방의 서늘한 기운을 당당하게 물리친 태평양의 공기층은 기세 등등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등에 업고 이 한여름을 절정으로 몰아넣는 중이다. 




 드넓은 들판에 우거진 수풀과 나뭇가지, 돌, 찰방이는 강물, 부서지는 햇빛, 내가 담아 갈 것은 그뿐이었으나 습한 대기와 먼지 섞인 바람 사이로 벌거벗은 습지엔 세태의 흔적이 너부러진 황무지가 민낯을 드러내 보이고. 하릴없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차를 타고 나간 시가지에서 군소 도시의 폐쇄성, 키치, 권태를 스쳐버리고 만다. 내 영원한 고향의 여름, 나의 실낙원, 로스트 패러다이스.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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