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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Seasons
by Sustain Life Aug 01. 2018

여름의 맛

살구 병조림





 짧은 장마가 스쳐간 뒤, 어김없이 비춰오는 뜨거운 태양빛과 태평양의 습도를 머금은 대기층은 이 계절을 한여름 속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계절 속에서는 기상이나 취침시간 조차 혼란스럽다. 일찌감치 떠오르는 태양과 밤이 깊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기온 속에서 한여름밤의 짧은 꿈을 꿀 정도로만 잠에 빠져드는 일상. 이렇게 매일 축제가 연상되는 여름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는 깨어있는 순간조차 아쉬우며 흘러가버리는 시간은 못내 아깝기만 하다. 비록 그 축제의 클라이맥스가 폭염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할지라도.



 여름의 문턱에서 시절을 랑데부하는 매개는 언제나 살구였다. 매실과 복숭아의 중간쯤 되는 듯한 어여쁜 과실은 누구네 집 뒷마당, 밭고랑에 흔하디 흔하게 매달려 여름을 수놓고 있었다. 장마가 도래하기 직전 서둘러 따내야만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상큼한 살구를 맛볼 수 있던 것이다. 미처 손이 닿지 못한 지점의 살구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로, 혹은 흙밭에 나뒹군 채 알싸하게 발효되어가는 쉰내를 퍼뜨리며 날벌레들의 생의 요체가 되어주던.



 살구는 여느 과일과는 달리 보관이 쉽지만은 않다. 행여 신선한 살구를 냉장고에 잘 둔다 해도 나무에서 갓 따낸 뒤 반을 쪼개 맛보는 향긋한 상큼함은 사라지고 없다. 언젠가 냉장고에 며칠간 넣어둔 살구를 꺼내 맛을 보고선 허탈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맛의 편차가 상당히 벌어진 뒤였기 때문. 그 뒤론 살구를 냉장고에 넣지 않는다. 신선한 살구를 실컷 맛본 뒤, 몽땅 잼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병조림으로 저장하거나.



병조림을 위한 살구는 과질이 단단한 것 위주로 고르는 것이 팁.



취향껏 2:1 또는 1:1 비율의 시럽을 졸인 뒤 반을 가른 살구와 함께 한 풀 끓을 정도로만 살짝 끓인다.



 그리고 이 뜨거운 여름의 공감각으로 기억될 병 속으로 차곡차곡 담겨, 이 여름이 끝날 때까지, 아니 가을이 시작될 즈음, 겨울이 문을 두드릴 때까지도, 바닥을 드러내 보인 병 조림 속 살구가 단 한 두 조각이라도 남아 있기를.   



 손쉽게 쪼개어낸 살구의 반쪽. 그 움푹 파인 씨방 속에는 아련한 추억과 꿈들이 알알이 들어 차 있는 것만 같다. 손에 잡힐 듯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리는 흘러간 시간들. 덧없는 회상 거리. 언제나 그랬듯 꼭 같이 다시 돌아올 줄로만 알았던 여름의 나날들.



병 속에 담아 오래도록 붙들고 싶은 것은 살구였던 걸까, 알 수 없는 그리움이었던 것일까.



 어느덧 새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노을이 내리고. 늦은 오후의 매직 아워에 물들어 이 세계와 한 발치 떨어진 듯한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아마도 그건 살구의 빛깔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거나. 살구의 맛이 아득했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을 이 여름을 기억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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