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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Seasons
by Sustain Life Oct 03. 2018

가을의 식탁

당근 샐러드와 마르게리타 피자





 밤새 꿈나라를 헤맨 무의식을 두드리는 건 언제나 아침의 빛. 여름날 부지불식간 침실을 침투하던 태양빛이 무자비하게 아침잠을 깨웠다면, 추분점의 경계에 걸친 황도의 빛은 은은한 사선의 각도로 하루의 시작을 일깨운다. 기상 시간은 아무래도 늦춰진 감이 있다.


 발밑에 감도는 차가운 공기층은 인기척에 잠을 깬 고양이와의 따사로운 랑데부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듯하다. 여름의 기운은 솜털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 솜털, 솜털이라면 그야말로 솜을 틔운 목화나무가 있다. 여름의 따사로운 태양빛을 머금고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맺은.



 이 목화 나무에서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솜뭉치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구경하는 것이 가을을 맞이한 옥상정원의 이슈.



 목화나무는 괄목할 변화를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는데, 밑동부터 하나, 둘 씩 결실을 맺어간다. 흰나비의 날갯짓을 떠올리는 꽃은 이틀 사이 분홍빛으로 물들다 금세 떨어지고, 통통한 씨방을 맺은 뒤 거짓말처럼 솜을 틔운다. 가을의 한가운데 피어난 아름답고 포근한 목화솜 뭉치는 왠지 따사로운 겨울을 암시하듯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어느 가을날.



 가을의 정원은 쇠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벌어지는 일교차, 건조한 대기, 부쩍 줄어든 날벌레. 어떤 것은 서둘러 꽃을 피워 결실을 맺으려 하고, 어떤 것은 뿌리로 양분을 저장한다. 어떤 것은 아름다운 열매를 내어주고 서서히 소멸해 가며.



 서서히 소멸해가는 가을의 정원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거나 전혀 그렇지 않거나. 하나둘씩 갈변해가는 잎사귀를 정리하는 일, 시들해가는 허브를 뽑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가지런히 절단해 버리거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정원의 식물이 성장점을 키워 더 이상 뻗어나가진 않아도 순환하는 생의 절정을 관망할 수 있는 시기가 이맘때 즈음인 까닭에.




서리가 내려앉기 전에 온전한 허브 한 조각이라도 따낼 수 있기를, 괜스레 분주한 마음이 깃든다. 차일피일 수확을 미루던 당근도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자 한꺼번에 식탁 위로 옮긴다. 옥상 정원과 부엌의 거리는 고작 열 걸음도 채 되지 않건만, 도심 속 작은 공간에서 결실을 맺은 나만의 작물을 마주하는 건 언제나 벅찬 일.




토마토소스, 모차렐라 치즈, 바질 잎으로만 구워 낸 마르게리타 피자와,



 갓 수확한 당근의 흙먼지만 털어내고, 올리브유에 살짝 구운 당근 샐러드. 약간의 소금과 화이트 발사믹으로만 토핑을 하고 치즈를 뿌리면 단출한 가을의 식탁이 꾸려진다.



옥상정원의 바질과 옥상정원의 당근, 마르게리타 피자와 당근 샐러드.



얼음을 띄운 커피가 어색한 가을의 식탁. 패딩을 꺼내 입기에 아직은 어색하듯.



 계절과 절기를 따라 변화하는 식탁. 일상의 식탁 또한 아무렴 찬란한 여름의 빛과 같은 다채로움을 서서히 접어드는 시기. 아마도 계절의 절정에서, 명백한 환절기를 넘어선 가을의 한가운데서, 일상성을 되찾으려는 일상 속에서, 가을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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