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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Jan 28. 2019

겨울을 떠나보내는 마음

시금치 식빵






  

 올해 겨울은 "그리 춥지 않은 겨울"로 기억되려나요. 아무렴, 포근한 겨울이었다 한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늘 한결같습니다. 마지막 절기 '대한'을 끝으로 24절기의 순환도 막바지에 이릅니다. 시절은 '입춘'을 향해가고 있죠. 어쩌다 마주한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봉긋 솟아오른 꽃봉오리를 마주하면 괜스레 설레기도 하고요. 꽃봉오리를 빼곡히 감싼 보송보송한 솜털로 추측컨대 그 나무는 아무래도 봄의 전령 목련이었을 겁니다. 광활한 하늘의 공백을 순백의 무채색으로, 봄을 수 놓을.




 겨울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밥상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찬은 섬초, 포항초 따위로 불리는 시금치입니다. 제철을 맞아 달큼하게 맛이 오른 시금치는 끓는 물에 데치듯 건져 찬물에 헹구는 것이 식감을 결정짓는 포인트죠. 흔히 즐겨 먹는 시금치 무침 말이에요. 고소한 참기름과 집집마다 양조 비법과 맛이 다른 국간장의 조합은 열려 있는 맛의 세계를 자극할 테고요.



 참, 얼마 전에는 우연히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었는데 들인 노력에 비해 근사한 맛이 우러나 조만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답니다. 쇼트 파스타에 살짝 곁들이면 훌륭한 안티파스토로써 손색없을 정도!



 자, 각설하고 이번엔 페스토 보다 약간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시금치 식빵입니다. 겨울의 끝자락, 한 해 묵은 먼지와 때를 벗겨내며 주방 정리 하는 틈에 즉흥적으로 구상한 요리죠. 겉으로는 조왕신에 대한 예를 표방하지만 다음 한 해도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는 막연하고도 무책임한 기복일 것입니다. 


stilllife_GRADE AA BUTTER


Silllife_Flour and Sea Salt




 부쩍 따사로와진 오후 햇살에 푸른 초록의 시금치를 마주하니, 봄이 성큼 다가왔나 설레발이다가도 엄연히 서린 겨울의 끝자락을 잘 보내야 할 염려에 마음을 다잡습니다.



 빵을 만들 때 마주하는 희열 하나는 매끈하게 완성된 반죽의 촉감, 그리고 아름다운 화학 작용에 의해 잘 부풀어 오른 반죽의 형상에서 오는 시각적 쾌감.


Stilllife_Spinach Dough



 물론, 빵이 오븐에서 뜨끈하게 구워져 식탁에 오르는 순간 그야말로 소소한 기쁨을 맛본다고나 할까요. 세균맨에게 점령당한 구름 세계를 되돌려 놓기 위해 잼 아저씨가 열과 성을 다해 호빵맨을 구워내듯 말이에요.


Stilllife_Spinach Bread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언덕이 하나 남았습니다. 완성된 빵의 맛과 질감이죠. 반죽과 발효 과정에서 맛과 텍스쳐가 결정되는 제빵의 세계는 어떻게 보면 잔인하리 만큼 무심합니다. 완성된 결과물에 대해 이렇다 할 옵션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시행착오를 거친 계량 노트가 소중할 터인데 저는 어쩐 일인지 아직도 그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고쳐먹지 못하는 버릇이기도 한데, 아니 어쩌면 감각을 맹신하는 자존감 일지도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 구운 빵은 맛도 질감도 훌륭합니다. 시금치 색도 예쁘게 뱄고요.

 



요 며칠 간단한 아침 식사 거리가 생겨 든든한걸요! 모두들, 가는 겨울 잘 떠나 보내시길.


Stilllife_Sliced Spinach B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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