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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Jun 01. 2021

지금 여기, 한옥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신세계 빌리브에서

“좋은 삶을 위해 지속하는 생활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했고


나는 어느덧 10년 남짓 된 한옥에서의 생활을 공유해보려한다.




<살면서 고치는 집_10년째 살고 있는 한옥의 변화상>



서촌의 작은 한옥과 조우했던 10년 전의 상황은 지금처럼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젊고 어리석었으며, 오랫동안 제 주인을 찾지 못한 한옥은 볼품없이 위축되어 있었다. 삶의 단계에서 갈림길에 서 있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좇아 이 오래된 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처음엔 가벽을 철거하고, 이듬해 부엌을 손봤다. 5년째 되든 해, 합판과 벽지 뒤에 반세기가 넘도록 숨죽이고 있던 서까래를 드러내었다.



집의 속살을 드러낼수록 한옥은 입체적으로 빛났다. 문지방을 경계로 구획된 한 칸의 공간마다 보이지 않는 경계가 드리웠다. 안채에는 성주가, 부엌엔 조왕이, 사랑채에는 살가운 잡신들이 일상의 안위를 위해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계절의 변화를 또렷하게 감각하기 시작했고, 절기의 구분으로 세계의 리듬을 파악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질감과 농도가 당연시 여겨졌다. 한옥이 품고 있는 처마의 미학을 체화한 것이다. 한옥의 공간은 빛을 따라 소생한다. 아침 햇살이 드는 안채를 시작으로 태양의 행로를 따라 처마 밑을 파고드는 사선의 빛은 온종일 한옥을 품는다. 어둠이 내리면 고요한 밤의 정서로 물든 한옥은 완벽한 안식처가 된다. 조도가 낮은 조명 한 두개에 의지해 굳이 어둠을 밝히지 않는 이유다.




그 사이 나에게 집은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은 물론, 휴식과 재충전의 기능을 넘어 일상의 놀이터가 되었다. 우리의 작업 공간이자 영감이 찾아오는 사색의 장이며 지속가능한 삶의 원동력이다. 옥상 정원의 허브와 과일로 요리를 하고 장마철이면 지붕으로 올라가 배수로에 쌓인 낙엽을 치우며, 겨울을 나며 간극이 생긴 흙벽을 석회로 메꾼다. 일상의 영역이 충족되면 이 작은 집은 사교의 장이 되기도 한다. 제철 음식이 놓인 잔치를 열어 결핍된 외부 자극을 메꾸는 것이다. 집을 방문한 손님들은 한옥의 좌식생활을 어색해하면서도 바닥과 닿은 온돌의 온기에 새삼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서까래와 기둥으로 풍기는 소나무 향기와 벽체의 흙냄새가 아늑함을 주었는지, 쉽사리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올해 초, 묵은 장판을 걷어내고 통원목의 우물마루를 깔았다_2021년 한옥의 자화상>


한 세기 가까이 굳건히 터를 지키며 중첩된 일상의 역사를 품은 이 오래된 집에서 요즘의 나는 조연처럼 스쳐 가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지낸다. 이따금 고택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공감각이 불쑥 튀어나오는 한편, 먼 훗날 살고 싶은 숲과 호숫가에 둘러싸인 상아색 집도 꿈꾼다. 지금 여기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한옥에서는 무엇이든 채울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이 비워낼 수도 있다. 나의 자화상은 이 한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삶의 여러 단면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고, 과거의 조각들이 이곳에 녹아 미래의 교두보 역할을 자처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잘살고 있다.




일상




도심 한복판 스무 평 남짓한 한옥에서 어느덧 열 번째 여름을 맞이하는 중이다. 하지가 다가올수록 침실 머리맡을 비추는 아침의 태양은 점점 이르게 다가온다. 한옥에서의 하루는 사다리로 연결된 옥상에 올라 작은 정원을 살피며 시작된다. 여름의 문턱에서 싱그럽게 뻗어 나가는 허브 잎사귀를 어루만진다. 밤사이 달과 별의 행로에 조금씩 고개를 비튼 꽃대가 초여름 미풍에 나부낀다. 블루베리는 어느새 꽃이 지고, 초록 방울을 맺었다. 노란 꽃 사이 귀엽게 솟아오른 토마토 열매도 제법 영글었다.



어느새 태양이 이만치 물러와 나의 작은 부엌을 비춘다. 신선한 제철 야채를 곁들인 아침으로 마주한 계절을 음미한다. 그라인더 사이로 곱게 흘러내리는 은은한 커피 향은 선잠을 깨운다. 식사가 끝나면 집안의 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한다. 기둥과 마룻바닥의 빛바랜 나뭇결을 따라 기름을 덧바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잘살고 있음을 자각하기 위해 매일같이 치르는 일종의 의식인 셈이다. 한결 정돈된 안채로 빛이 들기 시작한다. 하루의 태양이 온종일 머무는 곳이다. 아침의 투명한 빛은 기역자 한옥을 부채꼴로 순회하다 해 질 녘 붉은 오렌지빛으로 꼬리가 길어진 잔광을 토해낸다.




마침내 서산에 걸린 노을빛이 산책을 재촉한다. 활짝 열린 길목 사이로 중첩된 역사가 스친다. 궁궐 돌담을 따라, 광장 한가운데 시커먼 가지를 뻗은 고목을 따라, 기념비만 덩그러니 놓인 공허한 유적 터를 따라. 여름의 문턱에서 온갖 세태의 향기가 피부로 와 닿는다. 고궁의 담벼락 너머 바람에 나부끼는 농후한 초록빛 잎사귀가 새삼스럽다.


최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거 방식의 다양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폐가를 복원하고, 협동조합을 설립해 공동체 주택을 짓는다. 가족이 아닌 완벽한 타인과 생활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한옥에 대한 관심이 심상치 않다. 새로운 문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갖고있는 유산을 회복하려는 작은 움직임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일상의 전통과 맞물려 있다. 한옥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간이다. 갖춰진 곳이 아닌, 변화의 가능성이 도사린 열린 세계다. 우리의 삶 또한 가변적이며 늘 열려 있듯 말이다.






한옥 생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주거, 삶의 방식이 궁금하다면

빌리브 홈페이지 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본 포스팅은 신세계건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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