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디지털교과서 시대의 대안적 교육 패러다임

365 Proejct (125/365)

by Jamin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기술적 변화를 경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연간 1조 원 이상, 6년간 약 7조 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계획이라는 사실은 교육의 본질과 방향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전자책 기반의 시스템 전환이 특정 영역에서 가져올 효율성이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나, 이 막대한 투자가 과연 우리가 직면한 교육의 근본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향인지 진지하게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 교육의 패러다임적 한계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산업혁명 시대의 필요성, 즉 '노동자 양성'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의 관계 맺는 방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서로를 '이익 교량하며 만나는 관계', 즉 어떤 효용 가치가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따지는 관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적 생태계와 개인의 심리적 행복은 '무산성(無算性)의 관계', 즉 계산 없이, 조건 없이, 그저 함께 있음과 상호작용 자체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관계가 풍부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러한 관계 형성의 기술을 가장 효과적이고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놀이'다.


놀이: 무산성(無算性) 관계의 원형

놀이, 특히 함께하는 놀이는 본질적으로 '무산성'을 지닌다. 진정한 놀이의 목적은 놀이 외부에 있는 어떤 이익(돈, 지위, 점수 등)이 아니라, 놀이 과정 자체의 즐거움과 참여자 간의 상호작용에 있다. 더욱이 놀이는 '인종, 성별, 나이 등의 사회적 구분을 초월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친구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에서 오직 팀의 승리를 위해 하나가 되는 모습은 놀이가 가진 사회적 경계를 허무는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이처럼 놀이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순수하게 만나고 연결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상호작용 방식이다.


미래교육의 핵심 과제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K팝 아이돌, 프로게이머, 과학자 등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할 학생들에게 공교육이 제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은 특정 직업 기술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 맺고, 협력하며,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역량이다. 이러한 역량의 기초는 '함께 잘 노는 법'을 통해 형성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직업 세계가 빠르게 재편되는 현실에서, 특정 기술이나 지식은 빠르게 구식이 될 수 있다. 반면, 인간 관계의 역학과 감정적 상호작용의 기술은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변함없이 가치를 유지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바로 이러한 '관계의 질'에 있다.


AI 교과서 예산의 대안적 활용 방안

AI 디지털교과서에 투입될 예정인 수조 원의 예산을 재고하고, 그 상당 부분을 '함께 잘 노는 법'을 배우는 교육 시스템 구축에 투자한다면 다음과 같은 혁신적 교육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1. 종합적 놀이 인프라 구축

모든 학교와 지역사회에 안전하고 창의적인 공공 놀이터 대폭 확충

학교 내 자유 놀이 공간 및 시간 제도적 보장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를 놀이와 커뮤니티 활동의 거점으로 전환

놀이의 교육적 가치를 이해하고 촉진할 수 있는 숙련된 놀이 활동가(Playworker) 양성 및 배치


2. 예술, 체육, 체험 활동 중심의 교육과정 재편

입시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신체적 활동, 감정 표현, 협력적 프로젝트를 강조하는 예술, 음악, 체육 교육 강화

캠핑, 연극, 장기 프로젝트 등 몰입형 체험 활동을 교육과정의 핵심 요소로 통합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와 내재적 동기를 촉진하는 평가 시스템 개발


3.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는 다층적 프로그램

세대 간 교류: 아동과 노인이 함께하는 놀이 기반 프로그램

문화 간 이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이 서로의 전통과 가치를 놀이를 통해 이해하는 프로그램

지역사회 연결: 학교와 지역사회 기관이 연계한 공동체 기반 프로젝트


4. 교사 역량 개발의 새로운 방향

교사들에게 기술 활용법 중심의 연수가 아닌, 학생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촉진하는 능력 개발에 초점

놀이를 통한 사회성, 감성, 창의성 발달을 지원하는 교수법 훈련

갈등 중재, 감정 코칭, 그룹 역학 이해 등 관계 중심 교육 역량 강화


결론: 인간적 미래를 위한 교육적 투자


물론 기술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특정 기술 플랫폼 도입에 집중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어떤 인간을 육성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AI 교과서가 제시하는 '효율성'과 '개인화된 학습' 이전에, 우리 아이들이 다양성을 존중하며 '함께 잘 노는 법'을 체화하고, 계산적 관계를 넘어서는 '무산성의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경험은 불확실한 미래 사회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가장 강력한 내적 자원이 될 것이다.


7조 원에 가까운 예산은 단순한 기술적 인프라 구축이 아닌, 인간다운 미래를 위한 근본적 교육 혁신의 씨앗을 뿌리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진정한 교육 혁신은 최신 기술의 도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현대사회에서 놀이의 사회적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