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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날리뷰2025-00? - <피스메이커 시즌 1>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피스메이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인물이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이 철 지난 신념을 떠들어대던 그는 DC 팬들에게 비호감 중의 비호감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제임스 건은 그 인물을 데려와 DC 역사상 가장 인간적인 성장 드라마로 재해석한다. 피스메이커는 더 이상 웃음거리나 소모품 악당이 아니다. 그는 잘못된 신념과 가정 폭력에 갇힌 어른 아이이며, 이 드라마는 그의 정체성이 파괴되고, 재구성되고, 회복되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은 외계 생명체 버터플라이와 싸우는 B급 히어로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깊은 층위에서 강요된 평화와 불완전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제임스 건은 폭력의 유산을 끊고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제임스 건은 늘 찢어진 영혼들을 가족으로 묶어내는 감독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루저들처럼, 피스메이커도 반듯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팬티 차림으로 춤을 추고, 감정 조절이 서툴고, 사회적 신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이 작품의 핵심이다.
제임스 건 특유의 '쪼'가 여기서 작동한다. 쓸데없이 TMI를 늘어놓는 대화, 안 어울릴 정도로 하이텐션의 음악, 어딘가 부족한 친구들끼리만 통하는 유치한 농담. 이 모든 요소가 한데 뭉쳐 "너도 괜찮아. 우리도 다 구린 사람들이다"라는 정서를 만들어낸다. 관객은 캐릭터의 찌질함을 조롱하는 대신, 오히려 그 안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상처받고 서툴러도, 그래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제임스 건은 이렇게 구원이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다는 그의 오래된 신념을 다시 증명한다. 영웅은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기어온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을 때 탄생한다. 피스메이커는 그 증명의 완벽한 사례다.
피스메이커를 얽매는 두 개의 그림자는 서로 다른 종류의 폭력이다. 하나는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며, 다른 하나는 추상적이고 이념적이다. 크리스토퍼 스미스는 이 두 폭력을 모두 부숴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첫 번째는 아버지다.
화이트 드래곤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크리스토퍼에게 폭력, 인종 혐오, 왜곡된 남성성, 그리고 '평화를 위한 폭력'이라는 이상한 윤리를 주입한 장본인이다. 즉, 그는 크리스의 정체성을 망가뜨린 창조주다. 크리스가 스스로를 증오하면서도 그 증오의 방식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내면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파괴해야 크리스는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그래서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은 단순한 처단이 아니라 "나는 이제 네가 만든 사람이 아니다"라는 선언이다. 그것은 물리적 폭력의 종식일 뿐 아니라, 정신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다. 아버지가 만든 틀을 깨뜨림으로써, 크리스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두 번째는 버터플라이다. 버터플라이는 인류를 멸망에서 구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자유 의지를 통제하려 한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스스로를 위해 결코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너희를 대신해 선택하겠다." 이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정치적이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념은 언제나 '너희를 위한 것'이라는 언어로 다가온다. 선의를 가장한 전체주의, 구원을 명목으로 한 지배. 버터플라이는 그 메커니즘을 외계 생명체라는 SF적 장치로 구현한 것이다.
크리스는 결국 그 제안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거절은 곧 아버지의 폭력적 신념과 버터플라이의 전체주의적 '올바름'을 동시에 부정하는 행위다. 제임스 건은 이 순간을 통해 묻는다. "평화가 자유를 파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평화가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강요될 수 없으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억압함으로써 달성될 수도 없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짜 평화의 시작이다.
피스메이커의 진짜 변화는 총이 아니라 관계에서 일어난다. 아데바요의 배신, 하코트의 냉소, 비질란테의 맹목성이 꼬이고 얽히며 팀은 끊임없이 삐걱거린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부족함을 기꺼이 맞춰가며, 결국 함께 살아남는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이것이다. 예전의 피스메이커는 '평화'를 위해 주먹을 쥐었다. 지금의 피스메이커는 '친구'를 위해 주먹을 펼친다. 주먹을 편다는 건 무방비가 된다는 뜻이다. 상처받을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 변화는 폭력의 재능을 가진 살인 병기가 감정적 근육을 갖춘 인간으로 거듭난 순간이다.
제임스 건은 이 관계의 서사를 통해 한 가지 진실을 보여준다. 사람은 혼자서는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 옆에서 같이 망가지고, 같이 웃고, 같이 버텨줄 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해진다. 피스메이커는 친구들 덕분에 변했다. 그리고 친구들 역시 피스메이커 덕분에 조금씩 나아졌다. 이것이 제임스 건이 말하는 구원의 방식이다. 완벽한 누군가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를 구원한다.
피스메이커 시즌 1은 찌질함의 미학으로 완성된 성장 드라마다. 폭력과 혐오의 가정에서 벗어난 남자가, 불완전한 친구들과 함께 조금씩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은 의외로 진득한 감동을 남긴다. 제임스 건의 연출은 결국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하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으니까."
이 작품은 DC 세계관의 확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상처받은 아웃사이더들의 찬가다. 빛나는 초능력보다 인간의 상처와 회복에 초점을 둔 드라마는 흔치 않다. 제임스 건은 히어로물의 클리셰를 완전히 비틀어,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가디언즈》에서 봤던 팀 케미, 깨진 사람들의 재건, 음악과 유머의 병치가 여기서 극대화되어 있다. 저속함과 철학이 동시에 존재하는 독특한 결이 매력적이며, 제임스 건이 DCU의 미래를 어떻게 재구성할지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신호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것은 폭력의 유산을 끊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좋은 성장 서사다. 모든 장르 팬들에게 보편적으로 울리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