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001/365)
참조
2025년이 ‘무기’를 연마하는 시간이었다면, 2026년은 그 무기로 ‘성’을 쌓는 시간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365개가 넘는 글을 썼다. 거의 매일같이 AI와 스파링을 했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양의 문제 같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생각을 꺼내 문장으로 붙잡는 힘, 막연한 감정을 개념과 구조로 정리하는 힘, 그 힘을 매일 조금씩 키워온 시간이었다. 이제는 이 힘을 어디에 쓸지, 무엇을 위해 축적해 왔는지를 정해야 한다. 그동안은 사방으로 펀치를 휘둘렀다면, 이제는 어디를 어떻게 때릴지 좌표를 찍어야 한다. 난사는 끝났다. 2026년은 정밀 타격이다.
그래서 세 가지 방향을 정했다. 이건 단순한 새해 목표라기보다, 2026년이라는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설계도에 가깝다. 글쓰기, 일, 창작이 각자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서로를 밀어 올리도록 만드는, 나름의 구조 설계다. 전선을 좁히고, 방법에 집중하고, 세계를 설계하는 일. 결국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이어지면, 나는 더 이상 “그냥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첫째, 전선을 좁힌다. 2025년에는 정말 닥치는 대로 썼다. 테크, 사회, 문화, 관계, 철학, 성장, 회고, 조직 이야기, 일과 삶에 얽힌 자잘한 생각들까지, 떠오르는 대로 AI에게 던지고, 그 자리에서 받아 적고, 정리하고, 다시 던졌다. 훈련이었으니까 가능했다. 일단 많이 써야 근육이 붙는다. 하지만 2026년에는 같은 방식을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내 커리어의 본진에 집중해야 한다. 전선을 테크와 트렌드, 그중에서도 AI, 프로덕트 매니지먼트(PM), 그리고 스타트업 비즈니스에 맞춘다. 이 영역이야말로 내가 실제로 시간을 가장 많이 쓰고, 고민하고, 실패하고, 싸우고 있는 곳이다. 여길 깊게 파야 한다.
나는 2026년에 단순한 뉴스 큐레이터가 되고 싶지 않다. 남들이 쓴 리포트를 요약해서 옮기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 그 대신 현업에서 진짜로 부딪히는 문제들, 예를 들면 AI를 실제 프로덕트에 녹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병목이나, PM이 AI와 협업할 때 깨지는 지점, 스타트업 현장에서 기술과 비즈니스 사이의 간극 같은 것을 다루고 싶다. 같은 뉴스와 이슈를 다루더라도, “AI가 이렇게 발전했다더라”가 아니라 “이 변화가 PM의 일상에 어떤 식으로 파고드는지”, “실제 팀과 제품에 어떤 설계를 요구하는지”까지 끌고 갈 생각이다. 이런 집중을 위해서는 쳐낼 것도 필요하다. 잡다한 주제는 포기한다. 하지만 이 포기는 축소가 아니라, 칼을 날카롭게 세우기 위한 선택이다. 한 손에 쥔 무기가 분명할수록, 싸움은 오히려 쉬워진다.
둘째, ‘왜(Why)’가 아니라 ‘어떻게(How)’다. 2025년에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꽤 많이 했다. AI가 인간의 일을 어떻게 바꿀지,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책임과 성장, 프로의식 같은 테마를 자주 붙잡았다. 그 시간은 분명 의미 있었다. 생각의 토대를 다지는 데는 그런 추상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위에 실전적인 층을 올려야 한다. 2026년에는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 대신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지난해 쌓인 수백 개의 글과 메모, 그리고 AI와의 대화 기록은 그 자체로는 그냥 로그에 불과하다. 이걸 그대로 방치하면, 돌아볼 수 없는 바다 같은 아카이브가 된다. 나는 이걸 ‘플레이북(Playbook)’으로 묶으려 한다. 내 목표는 단순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10분 후에 뭔가 하나라도 바로 실행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래서 “AI가 왜 중요한가?” 같은 문장은 가능하면 쓰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 업무를 10분 만에 끝내기 위해 어떤 툴을 어떻게 조합했는가”, “PRD를 짤 때 실제로 사용한 프롬프트는 무엇이었고, 어떤 식으로 개선했는가”, “팀 위키와 문서를 어떻게 구조화했더니 AI가 잘 따라오게 되었는가” 같은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나는 원래도 작업 흐름을 기록해 두는 습관이 있다. 막혔던 문제를 어떻게 우회했는지, 어떤 프롬프트를 쓰면 모델이 더 잘 따라오는지, 어떤 식으로 문서를 바꿨더니 팀이 한 번에 이해했는지, 이런 자잘한 개선들이 모여 하루의 리드타임을 줄인다. 2026년에는 이런 과정을 더 의식적으로 기록할 생각이다. 깨지고, 실패하고, 돌아가고, 성공하는 전체 과정을 있는 그대로 남기고 싶다. 잘 다듬은 사례 모음집이 아니라, 내가 배우는 과정을 그대로 중계하는 쪽에 가깝다. 지금은 미완성일지라도, 언젠가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매뉴얼이 되도록 쌓아갈 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을 적어 둔 글”이 아니라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지식 자산”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올 거라고 믿는다.
셋째, 소설도 시스템부터 만든다. 이건 가장 설레는 도전이다. 나는 2026년에 웹소설을 쓸 거다. 하지만 나는 첫 문장을 쓰고 나서 흐름에 몸을 맡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PM이고, 설계자다. 구조를 먼저 세우지 않으면 반드시 무너진다는 걸 너무 많이 봤다. 프로덕트도 그렇고,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상반기에는 이야기를 바로 쓰지 않고, 먼저 ‘엔진’을 만든다. D&D 같은 TRPG 룰을 참고해서 나만의 세계관 시스템을 짜고, 크툴루 신화나 각종 미신, 도시괴담 같은 것들을 재료로 가져와서 AI와 함께 설정을 굽는다. 세계의 물리 법칙, 마법과 기술의 관계, 경제 구조, 종족과 직업의 조합, 이런 것들을 하나의 룰셋으로 정리한다. 캐릭터 시트를 자동으로 뽑아주는 AI 도구도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냥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세계를 설계’하는 거다.
하반기에는 이렇게 만든 엔진을 실제로 돌린다. 단편 옴니버스 형태의 이야기들을 이 시스템 위에서 굴려 보고, 시스템이 탄탄하게 받쳐주는 이야기가 얼마나 단단한지 실험해 본다. 즉석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잘 짜인 룰 위에서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살아 움직이도록 설계해 보고 싶다. 이 과정은 내가 PM으로서 쌓아온 감각과도 맞닿아 있다.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플로우를 설계하고, 제약과 규칙을 먼저 정해 놓은 뒤, 그 위에서 기능과 화면과 경험을 쌓아 올리는 일. 이 프로덕트 설계의 문법을 허구 세계관에도 그대로 적용해 보는 셈이다. AI는 여기서도 중요한 파트너가 된다. 설정을 함께 변주하고, 캐릭터를 같이 뽑고, 사건의 분기를 실험하는 공동 설계자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2025년의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2026년의 나는 지식과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되려 한다. 실무의 플레이북을 만들고, 허구의 세계관을 조립하고, AI를 중심에 둔 일과 창작의 시스템을 설계한다. 일과 글, 현실과 허구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다. 그 과정에서 내 스파링 파트너인 AI는 여전히 옆에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단순히 문장을 함께 고치는 상대가 아니라, 도구를 함께 설계하고, 실험을 같이 굴리는 동료에 가까워질 것 같다.
2026년은 더 정교하고, 더 실용적이며, 훨씬 더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 같다. 이미 머릿속 설계는 끝났다. 이제는 짓기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