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을 넘어 진전을 파는 법

2026 All-Day-Project (036/365)

by Jamin

다수의 B2B 기업은 고객이 자사의 기능 명세서(Feature List)나 기술적 사양(Specification)을 구매한다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고객이 구매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제품 그 자체가 아닌, 현재의 미흡한 상태에서 보다 이상적인 상태로 이행하는 진전(Progress)입니다.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 교수는 "소비자는 0.25인치의 드릴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0.25인치의 구멍을 원한다"는 명제를 통해 수단과 목적의 괴리를 지적했습니다. B2B 영역에서 이 통찰은 더욱 확장되어야 합니다. 기업 고객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결과물이 아닌, 해당 결과물을 통해 조직 내 효율성을 제고하고, 궁극적으로 '직업적 유능함을 인정받는 정체성(Identity)의 확립'에 있습니다.




1. B2B 구매의 본질: 조직적 진전과 개인적 감정의 교차점

1.1. '합리' 뒤에 숨겨진 '감정': 고위험·고감정의 B2B 구매


"B2B 구매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에 기반한다"는 통념은 부분적인 타당성만을 갖습니다. 표면적으로는 ROI(투자 대비 수익)와 효율성이 주된 평가 지표로 작용하나, 그 이면에는 B2C보다 더욱 심화된 '고위험·고감정(High Stakes, High Emotion)'의 역학이 존재합니다.


"B2B 구매자는 개인적 또는 감정적 가치를 볼 때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가능성이 거의 50% 더 높습니다 [1]


고가의 솔루션 도입 실패는 담당자에게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직업적 경력의 위기(Job Risk)를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따라서 B2B 고객이 특정 솔루션을 '고용(Hire)'할 때는 조직적 목표와 개인적 동기가 동시에 작용합니다.


1.2. 두 가지 차원의 '진전'


개인적 진전 (Personal Progress)

인정: 프로젝트 성공을 통한 승진, 업계 내 혁신적 리더로서의 평판 획득

안정: 규제 준수, 감사(Audit) 통과를 통한 리스크 제거

자부심: 업계 최고의 기술을 사용한다는 자부심, 업무 부하 경감


조직적 진전 (Organizational Progress)

효율성: 비용 절감, 수작업 프로세스 자동화

성장: 시장 점유율 확대, 새로운 고객층 확보

위험 회피: 시스템 다운타임 최소화, 데이터 유출 방지


결국, B2B 솔루션은 조직의 목표 달성이라는 '일(Job)'을 수행하는 동시에, 그 일을 담당하는 개인의 불안해소하고 자아를 확장하는 '일(Job)'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솔루션의 도입이 기업의 성장을 견인함과 동시에, 의사결정 주체를 조직 내에서 탁월한 성과자로 위치시키는 기제로 작용함을 입증하는 것이 B2B 영업의 본질적 과제입니다.



2. 과업(Task)을 넘어 정체성(Identity)으로: 고객의 '진짜 일'을 정의하는 3단계 계층


고객 요구사항 분석 시 흔히 범하는 오류는 표면적인 '단위 업무(Task)'에만 천착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송장 입력의 신속성"이라는 요구에 대하여 단순히 "처리 속도 향상"이라는 기능적 해법만을 제시하는 것은 1차원적인 접근에 불과합니다.


JTBD 방법론은 고객의 동기를 다음의 3단계 위계로 세분화합니다:


B2B 사례 (재무담당자)

1. Motor Control Goals (Task): 제품을 사용하여 수행하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행동

매일 100건의 송장을 시스템에 입력한다.


2. Do Goals (Goal) : Task를 통해 달성하려는 단기적인 업무 목표

"월말까지 모든 벤더에게 대금을 정확하게 지급한다."


3. Be Goals (Job) : Goal 달성을 통해 궁극적으로 느끼고 싶은 이상적인 감정 상태 또는 정체성

"나는 '신뢰할 수 있고 유능한 재무 책임자'로서, 벤더들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고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지킨다."


대부분의 B2B 기업은 1단계(Task)와 2단계(Goal)에 집중하여 "송장 처리 속도를 30% 개선하는 기능"을 만듭니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3단계, 즉 'Be Goals'에서 발현됩니다.


고객은 송장 처리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해 공급사와의 신뢰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재무적 리스크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신뢰의 관리자'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따라서 제품의 메시지는 기능적 효율성을 넘어, "사용자를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로 격상시킨다"는 정체성 중심의 가치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3. 솔루션 전환을 유발하는 4가지 힘(Forces)의 역학


고객이 기존의 솔루션을 폐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채택하는 과정은 물리학의 역학 관계와 유사하며, 다음의 네 가지 힘이 상호작용합니다.



밀기 (Push) =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족

기존 시스템의 노후화, 잦은 오류, 규제 미준수 위험, 경쟁사 대비 비효율성

Pain Point 극대화: 현재 시스템을 유지할 때 발생하는 잠재적 위험과 비용(Risk & Cost of Inaction)"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제시


당기기 (Pull) = 새로운 솔루션에 대한 기대

솔루션 도입 시 기대되는 ROI, 시장 선도적 지위 확보, 경쟁 우위

Vision 제시: 성공 사례(Case Study)와 명확한 ROI 계산을 통해 고객이 도달할 '이상적인 미래(Goal State)'를 구체적으로 제시


관성 (Inertia) = 기존 습관과 관계의 편안함

기존 벤더와의 장기적 관계, 시스템 마이그레이션의 복잡성, 학습 비용, 조직 내부의 저항

마찰 최소화: "쉬운 도입(Easy Onboarding)",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지원",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 강조


불안 (Anxiety) = 새로운 솔루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도입 후 성과 미달 위험, 시스템 오류 시 책임,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불확실성

신뢰 구축: "무료 PoC(개념 증명)", "환불 보장", "24/7 전담 지원팀" 등 위험 분산 장치 제공


다수의 기업이 촉진 요인(Push & Pull) 강화에 자원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나, 전략적 우위는 억제 요인(마찰력)의 최소화를 통해 확보됩니다. 개념 증명(PoC)의 무상 제공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데이터 마이그레이션의 기술적 지원을 통해 기존 관성을 해소하는 전략이 요구됩니다.


이는 고객을 인위적으로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입 장벽의 경사를 낮추어 자연스러운 전환을 유도하는 구조적 설계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기능이 아닌 '진전'에 집중하라


B2B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 마케팅하는 사람, 그리고 영업하는 사람 모두 다음의 질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솔루션을 통해 조직과 개인의 삶에서
어떤 진전(Progress)을 이루고 싶어 하는가?"
그들이 해결하고 싶은 진짜 고통(Pain)과 도달하고 싶은
이상적인 정체성('Be Goals')은 무엇인가?"


제품 관리의 성과는 고객의 단순 '작업'을 감소시키는 차원이 아닌, 고객의 '직업적 삶'을 진전시키는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B2B 비즈니스의 경쟁 우위는 기술적 사양의 우열이 아닌, 고객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적 미래 상태(Goal State)' 를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드릴이 아니라 구멍을 팔고, 화장품이 아니라 희망을 팔았듯이, B2B 솔루션은 '기능'이 아닌 '진전'을 팔아야 합니다. 이 진전은 조직의 성과 향상이라는 거대한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는 개인의 성공과 자부심이라는 미세한 감정의 결을 모두 포함합니다.




참고 문헌 (References)


[1] Built In. How to Apply the Jobs-to-Be-Done Theory to B2B

[2] Emmanuel Obadia. Revolutionizing B2B: How JTBD and Generative AI Unlock Customer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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