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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Mar 06. 2023

공고생이 대기업, 공공기관에 취업한 비결

청춘드림 멘토링_창직가적 취업전략 '대공포'

대기업, 공공기관 취업 문도 포기하지 않으면 열린다. 바로 '대공포'의 요지다. 요즘 유행하는 '중꺽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개인 취업 체험판 정도 될까.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기적 같은 16강 진출은 '중꺽마'의 진수를 보여줬다. 졸전을 거듭하던 축구대표팀이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같은 조 최강팀 포르투갈을 꺾은 것이다. 그것도 후반이 끝나갈 무렵 추가 시간에 역전 결승골이 터졌다. 같은 시간 벌어진 우루과이-가나 결과도 드라마틱했다. 승점과 골득실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결국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게 돼서다.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행운의 여신까지 한 편이 된다. "안 봐도 뻔하지 뭐"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 반면 대표팀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가슴 벅찼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날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확률은 10%도 채 안 됐다. 하지만 선수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쉴 새 없이 상대 골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중간에 포기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경주하는 것. 여기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실제 손흥민 선수는 거의 70미터를 달려 마지막 역전 골을 만들어냈다. 얼굴 부상으로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우리 골대에서 상대 골대까지 질주하던 모습은 '중꺽마'의 상징이 됐다. 창직가적 취업전략 '대공포'도 이것과 그 결이 같다.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다. 당시 삼성은 한창 신경영을 선포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이때 한 유명한 말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다. 이후 2년이 지난 1995년에는 품질불량의 휴대폰 15만 대를 부수고 불태웠다. 이 애니콜 화형식 후 삼성은 국내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고, 오늘날 세계 초일류 기업을 일궜다. 이때 일한 곳이 바로 이 화형식을 진행한 구미사업장이었다. 근무 부서는 유선사업부였다. 당시 애니콜은 그 옆 무선사업부에서 만들었다. 이 무선사업부는 몇 년 뒤 구미 2공장으로 이전했고 오늘날 세계 판매량 1위 갤럭시 스마트폰을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폴더블폰 등을 내놓으며 세계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애플의 뒤만 쫓는가 싶더니, 이 분야에서는 애플, 중국 등 다른 기업들이 삼성을 쫓는 신세가 됐다. 이렇게 한 분야를 꾸준히 파다 보면 어느 순간, 선도자적 역량이 생기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남들 안 하는 것을 선택한 덕분에 힘 들이지 않고 선도자가 된 경우다. 내 취업 사례는 보다 여기에 가깝다. 나 같은 경우 새로 생긴 2+1 제도 1기로 삼성전자 고졸 공채에 합격해 취업했다. '2+1'이란, 당시 실업계 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하고, 1년은 현장실습으로 대체하는 제도였다. 고동학교 3학년 때 이미 좋은 회사에 조기 취업한 것이다. 남들처럼 대학 가서 대기업 입사 시험을 치렀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렇게 똑똑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경쟁 자체를 싫어해서다. 아마 대기업 취업이란 엄두 자체를 못 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고생이었던 만큼 실컷 놀다 벼락치기로 조금만 공부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덕분에 반에서 몇 명 뽑은 삼성전자 면접도 볼 수 있었다. "빨리 취업해 돈을 벌고 싶다"는 자신의 필요에 충실했던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된 셈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이 빛을 봤다. 취업전략 '대공포' 중 '대공'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늘을 향해 대포를 쏘듯, 자신만의 '높은 목표'를 정하고 미리 쏠 경로를 명확히 조준하는 것이다. 그러면 뒤의 '포'처럼, 포기 않고 끝까지 갈 힘이 생긴다.


'남들 흉내 내지 않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첫 번째 대기업 취업에 '운빨'이 따랐다면, 두 번째 공공기관은 노력이 좀 더 많이 들었다. 공통적인 건 두 번째 직장도 창립 멤버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포지션은 러시아 담당자였다. 공고 출신 기술직이 어떻게 러시아 통역 겸 전문가 채용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 삼성에서 일하며 전공을 바꾼 결과였다. 일해보니 대기업과 기술분야는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관심을 가진 게 문과계열 외국어 전공이었다. 이때 선택한 언어가 러시아어다. 러시아어를 시작한 것도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영어를 전공해 볼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아무리 어학이 좋아도 당시 직장인 신분이었다. 대학에 간다고 일을 병행하면서 얼마나 더 영어를 배울 수 있었을까. 영어 잘하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고 셌다. 그래서 희귀하고 성장 잠재력이 큰 외국어를 찾았다. 당시 한창 뜨고 있었던 중국어에 먼저 관심을 가졌지만, 이후 대학 진학을 고려하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직장 주변 대학에 야간 중국어 학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비슷한 러시아어를 선택했다. 중국어보다 더 희귀했고, 망하긴 했지만 한때는 미국과 버금가는 세계 최강대국이 러시아였다. 땅도 세계에서 제일 넓고, 좋아하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를 배출한 문화강국이었다. 기초과학기술이 뛰어나 당시 전공이었던 IT전자 분야와 연계할 것도 많겠다 싶었다. 경쟁을 피하려 새로 선택한 맞춤형 전공이 훗날 자신만의 경쟁력이 되었다. 야간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경력전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주변 만류를 뿌리치고 회사를 그만둔 뒤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모스크바의 한 언어대학원에서 영어-러시아어 통번역을 전공했다. 중간에 몇 번 그만둘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무사히 졸업했고, 군대도 통역병으로 마쳤다. 전역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 마침 새로 생긴 국제교류 기관에 재취업했다. 프리랜서로 통역을 하다 만난 의뢰인이 이 기관의 초대 러시아 센터장이었다. 그의 권유로 채용시험을 봤고, 결국 두 번째 공공기관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통역에 능하면서 노는 러시아 전문 인력은 지역에서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도 어려움은 있었다. "외국어만 마스터하면 다 잘 될 것이다." 순진하게 생각했다. 좋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유학을 다녀왔지만, 통번역 외에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업가의 꿈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것이 벌써 20년 전 일이다. 공공기관 재취업도 그래서 한 것이다. 새로 생긴 기관에서 일하면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고 계약직을 거쳐 정직원이 되었다. 직원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인 기획관리팀장 자리까지 올랐다. 작은 조직상, 이 부서는 사업 외 총무, 인사, 재무, 홍보 등 기관의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 회사를 나와 독립했다. 바로 창직가적 취업전략의 마지막 단계, '자기 스스로 직업'이 되기 위해서다. 오롯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돈과 보람을 버는 1인기업가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았다. 전문성에 일경험까지 쌓았으나, 여전히 '중꺽마'가 필요했다. 평생 자기가 원하는 온전한 직업 생활을 이룰 때까지 이것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경제가 어렵다고, 취업과 사업이 안 된다고 공포에 떨 것 없다. 저 멀리 비구름이 몰려올 때, 대공포를 한 방 쏴 날려버리자. 그리고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계속 가자. 구름 뒤편에 감춰진 한줄기 햇살만 볼 수 있다면, 하늘은 또다시 개고 곧 화장한 봄날을 맞이할 것이다.


지금 고졸을 하라거나, 특별채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 상황이나 고용 방식도 과거와 전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찾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기업공공기관 취업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대기업은 새로운 성장 분야를 찾고 신규 사업개발을 필요로 한다. 설립 제한이나 감독 강화에도 필요한 공공기관은 계속 생긴다. 처음 하는 업무가 늘어난다. 공공기관 취업은 채용 제도가 바뀌어 까다로워졌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바뀐 제도의 핵심은 직무능력 중심 채용이기 때문이다. 인사부서에서 블라인드 채용, 직무표준화, 규정변경 작업 등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제도가 잘 정착되면 입사 지원자들이 직무 관련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준비해 왔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선구자적 경험으로 해당 직무 적임자라는 평가만 받으면 끝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한테 꼭 맞고 평생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아 미리 준비하면 된다. 이런 사람은 채용 결과가 덤으로 따라온다. 준비 과정 자체를 즐기며 꾸준히 차별적인 능력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포기 않고 계속하는 시간 자체가 대체 불가한 경쟁력이 된다. 여기서 이미 스스로 자신의 새로운 직업 경로를 열어갈 힘을 얻게 된다. 채용 여부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산다. 이런 수준이 되면 대기업, 공공기업 취업도 다른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미 스스로 만족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만의 새로운 길을 열어갈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대공포'를 쏘며 스스로 길을 만드는 사람에게 기회가 눈짓하고 운명도 손을 벌린다.


<창직가적 취업전략 '대공포': 경쟁없이 대기업, 공기업 취업하는 10가지 비결>  

1.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한다.

2.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욕구와 필요에 솔직해진다.

3. 잠재력이 큰 성장가능 분야를 찾아 한 발 앞서 그 분야 전문성을 쌓고 자신을 포지셔닝한다.

4.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 중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최대한 기여한다.

5. 전례 없는 길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고 만든다.

6. 대기업, 공공기관 등 직장의 인재상과 가치관, 요구 직무능력이 자신과 가장 맞는 곳을 찾는다.

7. 새로운 배움과 성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8. 꿈과 비전을 품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매 순간을 산다.

9. 자신의 길은 따로 있고 실패도 그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이해한다.

10.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믿고 계속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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