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친구 파랑을 보내며
2016년, 낯선 시골 마을에 정착했을 때, 나는 혼자 긴긴밤을 보내야 했다.
어둠이 내려앉고, 창밖으로 달빛만이 고요하게 드리울 때면 쓸쓸함이 찾아왔다.
그렇게 나의 벗이 되어준 존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파랑.
우연히 마주하고, 자연스럽게 함께하기로 했다.
네가 내 곁을 맴돌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의 인연은 운명처럼 이어졌다. 너는 내가 외롭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고, 슬프다고 내색하지 않아도 곁을 지켜주었다. 술 한잔을 기울이는 밤이면 어느새 내 옆에 앉아 말없이 나의 넋두리를 들어주던 너. 평소에는 귀찮게 한다며 도망 다니다가도, 술이 들어가면 한결같이 내 옆에 자리하던 너였다. 나는 그 순간들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은 어느덧 8년을 흘러버렸다. 너는 어느 순간부터 내 방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점점 낯선 눈빛을 내게 보내기 시작했다. 익숙했던 네가 나를 낯설어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고,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이름을 불러도 반갑게 뛰어오지 않던 날이 잦아지면서, 나는 어렴풋이 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다.
두 달 전, 갑자기 비틀거리며 쓰러졌을 때, 나는 네가 정말로 떠나버리는 줄 알았다.
서둘러 병원으로 데려가고, 정성껏 간호한 덕분일까. 너는 다시 털고 일어나 총총걸음으로 뛰어다녔다. 나는 안도하며,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것이 너의 마지막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도 너는 점점 멀어졌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대했고, 가끔은 나를 향한 관심조차 잊은 듯했다. 그래, 너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밥을 늦게 주면 서운해하는 모습조차 이제는 익숙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와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너는 더 이상 내 곁에 머물 수 없었고, 나는 널 떠나보내야 했다. 그동안 수많은 사진을 남겼지만, 오늘만큼은 도저히 카메라를 들 수 없었다. 네가 뛰어놀던 그곳, 가장 높은 언덕 위에 너를 묻었다. 거기 서라면 달빛이 잘 내리쬐고, 네가 나를 내려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염하는 순간, 매장하는 순간, 나는 마지막까지 너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하지만 사진 속으로는 남기지 않았다. 내 마음에만 온전히 새기고 싶었다.
이제 누가 내 술잔을 함께할까. 이제 누가 내 넋두리를 들어줄까. 긴긴밤이 찾아오면 또다시 허전한 마음이 들겠지. 오늘도 나는 한잔을 기울이며 달을 바라볼 것이다. 파랑아, 내가 너를 부르면, 네 이름을 부르면, 다시 내 곁에 와줄래? 바람이 스치고 달이 밝은 밤이면, 네가 내 곁에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