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카 3rd - 로모 인스턴트 와이드 카메라 블랙 에디션
나는 로모그래피라는 이름을 꽤 오랫동안,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마음에 품어왔다.
기억은 아마 나의 삼십 대 초입, 필름 카메라가 단순한 레트로 유행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로 받아들여지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의 로모그래피는 젊음의 상징과도 같았다.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우연과 실패를, 정교함보다는 과장된 색과 왜곡을 기꺼이 사랑하던 브랜드. 사진을 ‘잘’ 찍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사진을 찍으며 우리가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를 먼저 속삭이던 존재.
그래서인지 로모그래피의 카메라를 떠올리면 늘 결과물보다 그 과정이 먼저 그려진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의 농담 같은 긴장, 찍힌 사진보다 그 사진을 둘러싼 공기와 시간들.
그토록 자유분방하던 브랜드가 어느 순간 다시 ‘카메라’라는 물건의 본질에 충실해지는 지점은 꽤 흥미로웠다. 장난감 같은 외형 속에 의외로 정직한 기능을 숨기고, 사용자에게 선택과 책임이라는 무게를 되돌려주는 방식. 그 흐름 속에서 내가 다시 꺼내 든 것이 바로 ‘로모그래피 인스턴트 와이드’였다.
이 카메라의 첫인상은 솔직하다 못해 투박하다. 크고, 거대하며, 부담스럽다.
중형 폴라로이드 시스템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라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휴대하기엔 분명 과한 존재감이다. 가방 안에서 카메라는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요구하고, 어깨는 그 묵직함을 기억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거대한 카메라를 들어 올릴 때 사람들은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멈춰 선다. 그들의 눈빛에는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서는 이미 멸종해 버린 종류의 설렘이 서려 있다.
“저걸로 찍으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뷰파인더 너머로 건네오는 질문 속에는 결과물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기대가 섞여 있다.
사실 폴라로이드는 오랫동안 전문 사진가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촬영 현장에서 조명과 무드를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도구이자, 촬영 후 모델에게 건네는 단 한 장의 귀한 선물. 나 역시 한때 핫셀블라드에 인스턴트 백을 장착해 촬영하며 그 느릿한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곤 했다.
셔터가 눌리고, 필름이 뱉어지고, 손으로 감싸 쥔 채 화학반응을 기다리던 정적의 시간.
이윽고 종이를 벗겨낼 때 들리던 미세한 숨소리.
그 일련의 과정은 결과 확인을 넘어선 하나의 ‘의식(Ritual)’에 가까웠다.
모델들이 그 즉석사진을 사랑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복제될 수 없는 유일함,
그리고 우리가 그 자리에 함께 존재했다는 물성(物性)의 증거였으니까.
물론 지금의 폴라로이드는 고유명사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후지필름의 인스턴트 필름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즉석사진은
여전히 그 전문적인 긴장감과 연결되어 있다.
파티장의 소품으로 소비되기엔, 그 안에 담긴 ‘현장성’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와이드는 바로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누구나 셔터를 누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는 않다. 감도는 800으로 고정되어 있고, 조리개와 셔터는 F8에서 F11 사이의 안전지대에 머문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초점은 어긋나고, 멀어지면 빛은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생각보다 까다롭고, 예민하다. 그래서 나 또한 한동안 이 카메라를 어려워했다.
빗나간 예상 뒤에는 비싼 필름 한 장이 허무하게 남겨졌고, 그 무게감 때문에 셔터를 함부로 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함부로 찍을 수 없음’이 이 카메라를 다시 들게 한다. 플라스틱 렌즈임에도 놀랍도록 선명한 이미지, 그리고 와이드 포맷이 주는 시원한 호흡. 완벽하지 않기에 생기는 여백, 조금 어긋났기에 더 오래 기억되는 장면들. 무엇보다 이 카메라가 뱉어내는 이미지는 디지털 스캔으로 대체될 수 없다.
파일로 남는다 해도 원본은 여전히 내 손 위의 단 한 장뿐이다. 그것은 복제될 수 없는 시간의 표본이다.
이 거대한 플라스틱 덩어리는 어디든 가볍게 데려갈 수 있는 친구는 아니다.
하지만 손에 쥐었을 때의 물리적 무게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준비다.
이 카메라를 들고나가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조용한 선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빠르게 휘발되는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겠다는 선언, 이 순간을 조금 더 느리고 진하게 통과하겠다는 선택.
물론 환경적인 시선에서 인스턴트 필름은 미래의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다른 기술로 대체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토록 확실하게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결과를 쉽게 지울 수 없게 만드는 매체는 드물다.
작가들이 여전히 이 불편한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로모그래피 인스턴트 와이드는 사진을 잘 찍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찍는 행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다. 결과보다는 순간을, 데이터보다는 경험을 남기는 방식.
이것이 내가 오래도록 로모그래피라는 브랜드를 좋아해 온 이유일 것이다.
사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것.
이 카메라는 그 소중한 시간을 꽤나 솔직한 크기와 무게로 우리 앞에 툭, 하고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