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샘바리 Mar 09. 2019

아직까지 __________을 못합니다.

<결국 못하고 끝난 일>, 요시타케 신스케

멋 부리는 것, 볼링 치는 것, 유연체조, 깨끗하게 먹기, 컴퓨터 관리, 헌혈, 축제 즐기기, 자발적인 행동, 천천히 먹기, 다 같이 텔레비전 보기, 관심 없는 척, 얼굴과 이름 기억, 휴지 없는 생활, 책상다리, 구멍 난 양말 버리기, 치과 치료받기, 높은 "미" 음 내는 것, 신발가게 믿기, 사놓은 책 읽기, 마스터와 친하게 지내기, 요리, 멀리 나가는 일, 긍정적인 생각, 해결하려는 노력

- <결국 못하고 끝난 일>, 요시타케 신스케가 못하는 24가지.

<결국 못 하고 끝난 일>, 요시타케 신스케




<결국 못하고 끝난 일>은 항상 모든 걸 잘해야만 한다고 주입받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다. 저자 요시타케 신스케는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튀는 행동들 24가지를 묵묵히 풀어놓는다. 요즘은 자기가 잘하는 일을 거창하게 부풀리는 게 일상인 1등 지상주의 자기 PR 시대다. 갑갑한 이런 분위기에서 솔직한 털어놓기는 지친 사람에게 제법 큰 위로와 응원이 된다. 내가 아직까지 못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티끌 같은 장점도 태산처럼 부풀리는 게 익숙한 나에게 이런 정리를 제법 흥미롭고,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항상 '잘하는 일+하고 싶은 일+해야만 하는 일'의 공통분모를 찾는 데 몰두하느라 소외되었던 '못하는 일'에 잠시 눈길을 준다.


- 아직까지 물장구가 아닌 진짜 수영을 못합니다.

발이 땅에 닿고, 따뜻한 자쿠지가 있으면 완벽한 수영장@방콕


축구, 테니스, 농구, 달리기 온갖 운동을 좋아하지만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건 수영이다.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고, 딱히 배워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에 천식과 아토피를 동시에 품은 나약한 몸뚱이를 자랑했다. 그래서 더더욱 수영은 양날의 검이었다. '천식으로 부족한 폐활량 키우는 데 수영만 한 운동은 없다. 수영장 락스 물은 예민한 아토피에 쥐약이다.' 두 가지 양립 불가능한 난제가 싸우다가, 물장난을 치다가 물을 먹었던 불쾌한 기억이 힘을 보태며 자연스레 수영장과 멀어졌다. 가끔 바다와 맞닿은 휴양지를 가거나, 호텔 수영장 시설이 좋으면 아쉬울 때도 있다. 멋지게 레인의 물살을 가르거나, 서핑을 즐기며 파도를 넘나드는 모습은 멋지지 않은가? 현실은 1인용 튜브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며, 금세 벤치로 나와 시원한 주스를 홀짝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아직까지 글씨 예쁘게 쓰기를 못합니다. 


글씨를 쓴 나도 못 알아볼 때가 많다. 못난 건 조그맣게...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날그날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매번 손수 일기도 쓴다. 학창 시절에는 귀여운 스티커까지 붙이며 별 거 없는 약속을 스케쥴러에 거창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심을 보태 주관적으로도 나는 확실히 악필이다. 연애편지를 부지런히 보낼 때도, 진심이 담긴 내용이 겨우 벌어놓은 점수를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글씨가 다 깎아먹곤 했다. 일단 글씨가 시원시원하지 않고 작은 게 특징(?)이다. 흔히 말하는 어른 글씨와 정반대의 필체다. 특히 'ㄹ'을 쓸 때 더위에 녹아내린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리는 게 문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특별활동 시간에 무려(!) 펜글씨 부였는데! 나는 대체 목요일 6교시 1시간 동안 무엇을 연습했던 것일까 의문이다. 소심한 성격상 시키는 일을 대충 하거나, 과감히 숙제를 빼먹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천만다행으로 인터넷의 발달로 내 마음대로 예쁜 글씨체로 글을 마음껏 적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아직까지 100% 깨끗한 설거지를 못합니다.

요즘 눈독 들이는 아이템들. 능력치가 딸리면 아이 템빨이라도 좀 받아보고 싶어서..


못하는 일에 사실 '요리'가 먼저 나와야 맞다. 하지만 나의 임무가 요리보다는 설거지가 훨씬 많으므로 설거지에 집중한다.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게 집안일이지만, 조금만 허투루 해도 티가 나는 게 집안일이다. 그중 내가 가장 서툰 부분은 의외로 '설거지'였다. 바닥 청소,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다양한 집안일 중에서도 단연 어려웠다. 태생적으로 꼼꼼하거나, 완벽한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경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며 실수를 연발했다. '깨끗한 접시→더러운 접시' 순서로 해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저 손에 집히는 것 먼저 했다. 기름기나 음식물 찌꺼기가 고스란히 다른 접시로 옮겨갔고, 수고는 두배로 늘었다. 무조건 힘으로 빡빡 닦으면 되는 줄 알았다. 코팅이 벗겨질 수 있다는 기본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여전히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지만, 속도는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예쁜 수세미, 스타일리시한 검정 고무장갑을 검색하며 소소한 재미도 찾고 있다. 그리고 설거지거리가 있다는 건 에어프라이어가 부활시킨 맛있는 집밥을 오순도순 먹었다는 증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아직까지 갓난아기 안아주기를 못합니다.

말랑말랑한 아기 발 (출처 : esudroff on Pixabay)

아직 아기는 없지만, 아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마 제대로 된 육아를 겪어보지 않고 깔짝깔짝 놀아주는 게 전부라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한 아기라면 공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농구를 하든, 축구를 하든, 그냥 마냥 던지고 놀아도 비슷한 또래처럼 진심을 다해 함께 뛰어논다. 방긋방긋 낯가리지 않고 웃는 아기도 좋고, 콧물까지 흘려가며 엉엉 서럽게 우는 아기도 좋다. 조카나 선배들의 갓난아기들을 보면 빤히 쳐다보고 손가락, 발가락을 만져보곤 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말랑말랑하다!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해서 바닥의 먼지 하나 붙지 않은 순백의 아기 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갓난아기의 촉감이다. 하지만 한 번씩 안아보라고 건네주는 아기를 안는 순간 로봇처럼 굳어버리고 만다. 한 팔에 쏙 들어오지만 너무 꽉 안았다가는 바스러질 것만 같고, 너무 약하게 말아쥐기엔 혹여나 떨어트릴 것만 같아 무섭다. 그래서 말캉말캉 천사 같은 아기발을 살짝 간지럽히는 게 좋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양육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