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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그렇게 좋았던 나에게

Part1. 낳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by 송수연

호주 어느 이름 모를 숲 속, 캠핑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감탄했다.


"아니, 이렇게 완벽한 하루일 수가!"


케언즈에서 시드니로 내려가는 길, 어디쯤인가 산속의 캠핑장이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그 아름다웠던 풍경!


풀냄새는 황홀했고, 산공기는 기분 좋게 시원했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의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나의 동반자 남편은 와인병의 마개를 오픈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점은 아직 여행이 2주나 남아있었다는 것이었다.


글라스에 가득 따른 와인을 홀짝이는데, 새삼 황송해진다.

이 남자는 어느새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자기 밥벌이를 하는 덕에 나에게 돈도 주고 밥도 준다.

우리 엄마보다 나에게 더 친절하게 구는 최고의 동반자!


기꺼이 무릎을 꿇고 아내의 신발끈을 고쳐 매 주고,

아내의 시커먼 양말을 박박 빨아서 배낭에 매달고 다녀주는 사람.


그가 있으니 이렇게 퍼 마시다 흥청 망청 취해도 괜찮다.

캠핑카로 돌아가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자면 또다시 내일의 태양이 뜰걸 뭐.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캐리어를 거실 한구석에 내팽개치고

침대로 점프해도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인생!

그저 노곤한 육신을 뉘이고 적당히 배고프면 일어나서 뭐든 시켜 먹고

적당히 누워서 빈둥거리며 여독을 푼다.


그것이 다 큰 어른 두 사람의 여행이었다.


평일에는 오로지 힘내서 일하면 그만.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내일 해야 하는 일을 준비하며

온전히 자신의 커리어에 몰입하며 보내도 된다.


주말에는 평일에 고생했던(?) 나를 돌보는 휴식시간이라며 온갖 맛집을 돌아다녔다.

남편과 난 단 하루도 그냥 집에 머문 적이 없었다.

아무 제약이 없었으니까.


어느 날은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나. 만석닭강정이 먹고 싶다."하자 남편은 곧바로 차를 돌려 영동고속도로로 향했다.

그렇게 속초로 가서 게를 몇 마리 잡아먹고서, 다음 날 만석닭강정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모르겠다.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자유에 목메는 인간이 되었는지.


내가 기억나는 건 학창 시절에도 선생님들의 억압을 참지 못해 대들다가 쫓겨나기 일쑤였다는 점이다.


회사 생활도 잘 못했다.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여섯 시에 퇴근하는 정해진 일정이 싫어서 매달 일정이 바뀌는 직업으로 전직했고

그마저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회사를 나왔다.


내 맘대로 스케줄을 짜고, 일하기 싫은 날엔 일하지 않을 자유를 얻기 위해 10년간 노력했다.

돈보다 자유가 좋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철저히 내가 원하는 날만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로운 삶을 위협하는 그 모든 것에 반항심이 들어 투쟁한 결과였으므로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자유.

내게 가장 소중한 가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시간.

내 자유.


43살의 나는 충분히 자유로웠다.

내 인생은 그걸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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