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반의 AI 중심 연구의 경험
AI 시대, 연구의 병목이 달라졌다.
연구는 데이터를 모아 정보를 만들고, 정보를 분석해 지식을 만들고, 지식을 종합해 지혜를 만들어 실질적인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사람이 가장 필요한 지점이다.
데이터가 부족하던 시대에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사람의 노력이 집중되었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들었다. AI 시대에는 이 과정이 빨라졌다. 이제 사람이 가장 필요한 곳은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단계—판단하고, 선택하고, 논증하는 일—로 이동했다.
이 변화에 맞춰, 연구 과정에서 더 많은 피드백과 소통이 필요해졌다. 연구 계획서가 아니라 연구 결과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여러 팀과 팀원들이 결과물을 들고 더 자주 소통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연구는 데이터에서 출발해 지혜에 이르는 과정이다. 데이터를 모아 정보로 만들고, 정보를 분석해 지식으로 만들고, 지식을 종합해 지혜로 만들어 실질적인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 과정 전체가 연구다. 어느 한 단계만 잘한다고 좋은 연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 수집도 중요하고, 분석도 중요하고, 판단도 중요하다.
다만 시대에 따라 사람의 노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지점이 달랐다.
데이터 부족 시대에는 데이터 자체가 귀했다. 연구자는 도서관과 현장을 오가며 조각난 자료를 모았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큰 기여였다. 사람의 노력은 주로 이 단계에 집중되었다.
정보화 시대에는 데이터와 정보가 넘쳐나게 되었다. 문제는 그것을 의미 있는 지식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문헌을 읽고, 분류하고, 구조화하고, 패턴을 발견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사람의 노력은 주로 이 단계에 집중되었다.
AI 시대에는 AI가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일을 도와준다. "이 주제에 대한 주요 학자들의 입장을 정리해줘"라고 하면 몇 분 만에 초안이 나온다.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AI가 만든 지식이 정확한지 확인해야 하고, 빠진 것은 없는지 점검해야 하고, 우리 맥락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일—판단하고, 선택하고, 논증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데이터 부족 시대에는 데이터를 정보로 만드는 데 사람의 노력이 집중되었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데 집중되었다. AI 시대에는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변화가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도 있었다.
과거에는 코드를 짜고 테스트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기획을 완벽히 끝낸 뒤 개발을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이것을 Waterfall 방식이라고 부른다.
개발 도구가 발전하면서, 코드를 짜고 테스트하는 것이 훨씬 빨라졌다. 이제는 완벽한 기획 없이도 빠르게 만들어보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을 Agile 방식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AI 코딩 도구의 발전으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방식이 등장했다. 개발자가 자연어로 의도를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하고, 개발자는 그 결과를 보면서 방향을 조정한다. 코드 작성 자체보다 피드백을 받고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판단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일이 개발자의 핵심 역할이 되었다.
과거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기획을 완료한 뒤 개발을 시작했다. 연구에서도 연구 계획서를 승인받은 뒤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에서는 코드 작성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연구에서는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AI 시대가 되면서, 바이브 코딩에서는 AI가 코드를 생성하고 개발자가 검토하고 수정한다. 연구에서도 AI가 초안을 생성하고 연구자가 검토하고 수정한다. 바이브 코딩에서 개발자의 핵심 역할이 "무엇을 만들지 판단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일"이 되었듯이, 연구에서도 연구자의 핵심 역할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판단하고 논증을 구성하는 일"이 되었다. 피드백 방식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에서는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으로 소통하고, 연구에서는 연구 결과의 프로토타입으로 소통한다.
구체적으로 비교하면 이렇다. 바이브 코딩에서 개발자가 "이런 기능을 만들어줘"라고 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한다. 개발자는 그 결과를 보고 "이 부분은 이렇게 바꿔줘"라고 수정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 연구도 마찬가지다. "이 주제에 대한 주요 논점을 정리해줘"라고 하면 AI가 초안을 생성한다. 연구자는 그 결과를 보고 "이 방향보다는 저 방향이 낫겠다", "이 논거가 빠졌다"라고 수정 방향을 제시한다.
핵심은 병목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효율적인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코드 작성이나 자료 정리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던 일이 빨라지면, 판단하고 방향을 조정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때는, 방향을 먼저 확정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연구 계획서를 가지고 피드백을 받고, 승인이 나면 긴 작업을 시작했다.
이제 이 과정이 빨라졌다. 연구 계획서가 아니라 연구 결과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방향에 대한 논의를 계획 단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결과물 초안을 보면서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연구 과정에서 소통의 방식이 달라진다.
기존에는 연구 계획을 세우고 승인을 받은 뒤 작업을 시작했다. 연구가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결과물을 공유했다.
이제는 연구 결과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주제에 대해 초안을 작성해보았습니다. A 방향과 B 방향을 비교 검토했고, B 방향으로 정리해보았는데, 이 방향이 맞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계획서가 아니라 실제 결과물 초안을 보면서 논의할 수 있기 때문에, 방향에 대한 판단이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방식에서는 여러 팀과 팀원들이 프로토타입 결과물을 들고 더 자주 소통하게 된다. 의사결정권자, 팀장, 팀원 모두가 연구 과정 전체에 걸쳐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소통의 빈도가 높아지고, 다양한 시각이 연구에 반영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Agile 방식이 등장한 것은 개발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빠르게 만들고, 피드백 받고, 수정하는 사이클이 가능해졌다.
연구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AI가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과정을 빠르게 해주기 때문에, 연구 결과의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연구에서도 애자일(Agile) 방식—빠르게 결과물을 만들고, 피드백을 받고, 방향을 조정하며 완성해나가는 방식—이 가능해졌다.
물론 연구자의 고유한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개념을 정교화하는 것, 논증을 구성하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이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는 이 과정을 돕는 도구이다.
연구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데이터를 정보로,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만들어 실질적인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 달라진 것은 사람이 가장 필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 맞춰, 더 많은 소통과 피드백이 연구 과정 전체에 걸쳐 필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