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보람된 일이죠?” 사회복지사라면 꼭 한번은 들었을 말이다. 사회복지사라면 항상 듣는 말이다. 옆집 한국철도공사, 윗집 건설노동자, 아랫집 병원 사무직, 한 칸 건너 옆집 합기도 관장님, 베란다서 보이는 관리소 직원들 퇴근길의 버스 기사님, 이 책을 보는 당신의 부모님, 형제자매, 지인의 직업, 모든 사람이 오늘 하루도 좋은 일을 하고 퇴근했다. 불법을 제외하고 모든 직업은 모든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는 좋은 일이다. 유독 사회복지사에게 좋은 일을 말하는 것은 가혹하게 얘기하면 약자에 대한 관찰자적 입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동시대인으로 살아야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때 동시대를 진정 함께 살아가는 것인데 사회적 약자나 사회문제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면 먼 산 불구경처럼 관찰자가 된다. 각박한 세상에 아픈 일을 직관하고 매 순간 공감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보지 않거나 선을 긋고 건너편의 관찰자가 된다. “좋은 일 하시네요” “보람된 일이죠?” 이제 이 말을 다시 곱씹으면 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사회적 약자가 겪는 고통 또는 사회문제의 경험자가 되기보다는 선 건너편 관찰자로 있으면서 좋지 않은 것은 내 영역으로 넘어오길 바라지 않는다. 그쪽에서 참 고생 많으십니다. 그쪽의 어려운 일들은 거기에서 수고 해주시고 저한테는 안 오게 해요. 너무 잔인한 얘기지만 마음의 깊은 곳을 보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원시 시대 개인으로서는 나약한 인간이 지구 생태계 최상위에 오른 이유는 문명의 발전이 먼저가 아니다. 우선은 공생을 통해 먼 여정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1만 5천 년 전 원시인의 부러진 다리뼈가 발견됐다. 흥미로운 점은 부러진 다리뼈가 다시 회복된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인류학계의 발표 내용을 보면 다리가 낫기까지 6주 이상 걸리는데 원시의 환경에서 이런 부상은 죽음으로 직결된다. 일단 사냥이 힘들어 식량을 못 구하고 맹수 등의 불리한 환경에 회피행동을 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 부러진 다리뼈의 회복은 누군가 이 사람을 오랜 시간 돌봤다는 증거다. 본인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 음식을 나누고 안전한 거처에서 회복이 되도록 도운 것이다.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돌보는 공동체를 위한 돌봄은 인류가 지구의 영장류가 되는 밑바탕이 된 것이다.
돌봄은 선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땅한 일
가장 나약한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연대와 협력이었다. 인류의 DNA에 각인 된 것은 특별히 누군가에게 잘하기 위한 좋은 일이 아니다. 너와 내가 생존하기 위한 마땅한 일이 상호 선린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돌봄이 된 것이다. 1만 5천 년 전 부러진 다리뼈를 돌본 후 세월이 지나 문명을 이루고 마땅히 해야 할 사람의 일로 공동체의 돌봄이 축적되었기에, 옆집 한국철도공사, 윗집 건설노동자, 아랫집 병원 사무직, 한 칸 건너 옆집 합기도 관장님, 베란다서 보이는 관리소 직원들 퇴근길의 버스 기사님이 각자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마땅히 이뤄야 할 일을 하는 사람
모든 직업이 사람에게 도움 되는 좋은 일임에 동의하면, 사회복지사는 단순히 ‘좋은 일’을 넘어서 공동체의 근본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부러진 다리뼈를 맞추는 일이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인간 생존의 본능적 요구이자 ‘공생의 전제’인 것처럼, 사회복지는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기능이 된다. 원시 시대에는 부족 단위의 돌봄과 공동 양육이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이었다면, 오늘날 복잡하고 분업화된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역할이 전문화되며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으로 분리되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즉, 사회복지사는 단지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부서지고 놓인 것을 다시 잇고, 보이지 않는 균형을 지탱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사회복지사의 일은 좋은 일이기 이전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마땅한 일’이다.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근본적인 사명감을 가져야
공동체의 근본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회복하는 마땅한 일을 이루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보면 사회복지사가 거창한 일을 하는 사람 같아도 실상은 열악한 처우에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나와 상대 모두에게 유형의 상품을 생산하거나 가시적인 이익을 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 시장에서의 위치가 낮은 편이다. 사실 전문직일수록 급여 수준으로 사회적 지위가 매겨진다. 급여 수준이 낮은 직종에서 정당성을 찾으려면 사명감을 우선하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아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당위성에서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지위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근본의 자리가 어디인지 명확히 인식하고 위치를 잡은 후 전문직으로 확장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아야 한다. 60~70년대는 종교와 사회복지가 혼재된 시혜의 시대로 사회를 위한 봉사라는 개념이 더 강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자원에 당사자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복지도 아무나 못 받는 시대였다. 오늘날 국가 책임을 최우선으로 하고 권리적 개념으로 바뀌었기에 당사자의 권리 즉, 인격과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두고 사회복지 실천 현장이 준비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기관에서는 현안을 읽을 수 있는 혜안과 권리 증진을 위한 사회적 실천에 중점을 둬야 한다. 후에 말하겠지만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에서 하는 복지 운동이 사실 사회복지계에서 해야 하는 일임에도 그간 봉사, 시혜와 같은 소극적 영역에서 사회복지 활동이 이뤄지면서 우리의 영역을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부하고 지역사회에서 성장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
전문직으로 확장하는 일은 사회복지사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좋은 일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근본을 굳건히 지키는 실천철학을 가지고 확장성을 가지려면 공부해야 한다. 학습은 현재 나의 위치를 알고 뚜렷한 목적과 동기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진 모습으로 실천할 구체적인 사회복지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려운 말로 비전이다. 비전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를 알고 두루두루 다니며 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회복지사의 확장을 위해 중요한 요소다. 사회복지관에 근무하고 있다면 자원봉사센터, 장애인복지관,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사회에 책임이 있는 비슷한 기관의 실무자들과 연대하는 일이 중요하다. 좋은 일 하는 사람이냐 지역의 근본을 다지는 사람이냐는 여기서 차이가 난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안동시종합사회복지관과 안동시자원봉사센터는 김장사업을 규모 있게 진행하되 많은 분이 혜택을 보고 중복이 없도록 시설과 단체에 협조를 구해 명단을 조정하였고 이런 명분이 사회공헌 사업으로 당위성을 얻어 KT&G 경북본부에서 10톤의 김장을 지원하여 김장사업을 단일화하고 종래에는 안동시민이 참여하는 김장사업으로 확장했다. 이런 일은 개별 기관에서 지역사회 수준으로 실천의 범위를 넓히고 연대하는 기관을 신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좋은 일하는 사람은 그만하고 마땅한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 근본을 다지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