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병과 금기가 된 경제학자

by 시골공무원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송강호의 묵직한 연기로 박정희 정권 시절의 사회 분위기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그중 유독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있다. 설사병이 유행하는데, 그 병에 걸리면 경찰에 잡혀가는 장면이다. 당국은 철저한 감시를 당부하며, 주변 사람들을 신고하라고 독려한다. 그런데 그 병의 이름이 다름이 아닌 '마르구스 병'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곧바로 카를 마르크스를 떠올렸다.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인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사회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세계 경제학사의 한 축을 담당한 사상가다. 그의 《자본론》은 노동, 자본, 생산, 착취, 계급투쟁을 분석하며 현대 경제학과 사회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는 오랫동안 ‘금기어’였다. 그의 저서는 금서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곧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가 한 사회에서는 단지 이름만으로도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배경에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있다. 남과 북은 각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전혀 다른 체제를 선택했고,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겪으며 반공주의는 국가의 정체성처럼 자리 잡았다. 공산주의는 곧 적이었고, 마르크스는 그 이론의 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되었다. 그의 책은 학문서가 아니라 이념서로 여겨졌고,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시대의 혼란이 낳은 학문계의 비극


냉전 시대 미국과의 밀착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마르크스를 적대시함으로써 ‘충성’을 증명해야 했다. 국내 정치 상황도 한몫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등 군사독재 시절에는 사상 검열이 일상화되었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는 철저히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마르크스 = 북한 = 반체제’라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공식이 만들어졌고, 이는 지금까지도 사회적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

영화 속 '마르구스 병'은 단순한 설사병이 아니다. 그것은 체제가 두려워했던 사상,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여긴 철학, 그리고 국민이 절대 접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지식을 상징한다. 설사병에 걸린 사람을 신고하고 격리하라는 당국의 지시는, 사상과 생각의 자유마저 질병처럼 다뤘던 시대의 실상을 풍자한다. 웃음을 자아내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장면이다.

오늘날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다양한 사상과 이론이 토론의 장으로 올라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억압과 공포의 기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마르크스를 공정하게 읽고, 자본론을 학문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병의 잔재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를 마르크스는 흔히 "공산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는 공산주의를 주장한 철학자라기보다, 자본주의를 분석한 경제학자이자 사회 비평가였다.


자본주의를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사상가 마르크스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철저히 해부했고, 그 안에 내재 된 모순 예를 들어, 자본의 축적이 빈부격차와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점을 밝혀내려 했다. 마르크스의 핵심 관심은 "현실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공산주의는 완성된 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이후의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자”라고 주장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분석한 결과, 언젠가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즉,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 중 하나였다.

사상은 병이 아니다. 생각을 나누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진짜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영화 한 장면이 떠오르게 한 마르크스의 이름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사상의 자유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사상과 이론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일은 체제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체제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사상은 위험한 것이 아니다. 위험한 것은,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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