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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달래 Jul 06. 2020

바늘과 실, 그리고 엮여간다는 것



 최근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다시'라는 단어라는 단어에서 과거에 이미 뜨개질을 한 전적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나의 뜨개질 역사는 꽤나 오래됐다.


 뜬금없는 TMI이지만 나는 한글 부진아였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도 한참을 한글을 몰라 글자를 그림을 따라 그리듯 썼다. 알림장을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 칠판에 쓰인 선생님의 분필 끝에서 그려진 직선과 곡선을 따라 그려가던 잔뜩 긴장한 내 모습은 초등학교에서의 최초의 기억이다. 그렇게 한글도 모르던 내가 자투리 시간만 생기면 하던 것이 바로 뜨개질이었다. 한글도 모르면서 뜨개질이라니. 요즘 교육과정에서도 뜨개질은 6학년이 되어서야 배우도록 되어있다. 어떤 이는 부모를 찾으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우선순위를 모르는 부모라고 말이다. 잠깐 우리 부모님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엄마가 공방에서 뜨개질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실을 만지며 놀았고 옆에서 작은 손을 꼼지락 대며 엄마의 손 모양을 따라 하다 보니 뜨개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뜨개질은 나의 오랜 친구였다. 잠깐 소원해질 때는 있었으나 영영 헤어진 적은 없다. 올해 초 겨울 나의 일방적인 치댐과 함께 다시 가까워졌던 실과 바늘은 봄과 초여름 동안 다시 멀어졌으나 그저께부터 다시 친해지는 중이다. 이렇게 지독하게 싸우고 가까워지고를 반복하는 관계가 결국 평생 가는 친구가 된다는데 바늘과 실과 나는 아마 평생 함께 할 트리오가 될 모양이다.


 나는 뜨개질이 참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참 많이 좋다. 나에게는 이유를 찾는 버릇이 있는데 이렇게 내가 뜨개질을 좋아한다고 쓰니 그 버릇이 또 발동을 한다. 나는 왜 뜨개질이 이렇게나 좋을까.


 어렸을 적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뜨개질을 하다 보면 시간이 그렇게나 잘 갔다. 한 줄만 다 뜨고 놀아야지, 세 줄만 더 뜨고, 다섯 줄만.... 하다가 시계를 보면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을 갔던 엄마와 아빠가, 학원을 갔던 언니가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뜨개질은 성능이 꽤 그럴싸한 타임머신과 같았다.


 뜨개질은 첫 줄만 했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모양인지, 이게 나중에 정말 목도리가, 행주가, 가방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두세 줄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 맞는 건지, 이게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여전히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첫 번째 줄과 두 번째 줄을 뜨개질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모양도 헷갈리고 익숙하지 않아 실수가 잦은 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글을 알기 전부터 뜨개질을 한 나름의 경력자로서 20년을 넘게 살고 보니 이게 참... 신기하게도 우리네 인생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처음을 어려워한다. 그리고 그 처음에서 이어질 또 다른 처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다 그 두려움이 세 번에 되고 네 번이 되면 그제야 안정을 찾고 익숙하게 일들을 이어간다. 놀라울 정도로 뜨개질을 할 때와 같은 법칙을 가진 우리의 인생사를 살펴보자면 뜨개질을 하고 있는 순간이 숭고해지기도 한다.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 실을 엮어나가며 생각했다. 내 인생도 이 첫 번째 줄부터 시작을 했다. 그러니까 내 오래된 친구는 이 첫 번째 줄에 여덟 번째 코쯤에 있을 거고 내 기억 속 좋았던 그 선생님은 여기 열 번째 코쯤 있을 거고 내가 많이 좋아했던 그 아이는 세 번째 줄 네 번째 코쯤에 있지 것이다. 내 인생을 스쳐간 이들과 그들에 관한 기억이 엮여 하나의 직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는 나라는 직물.


 가끔은 실수로 틀리기도 한다. 한 코를 빼먹어 구멍이 커다랗게 뚫리기도 하고 코가 늘어나 갑자기 모양이 이상해지기도 한다. 뜨개질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법칙처럼 전해져 오는 말이 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풀어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실수를 한 것 같으면 지금까지 한 걸 아까워하지 말고 실수한 그 지점까지 당장 풀라는 말이다. 정말 너무 멋진 말이지 않은가. 뜨개질에는 우리 인생이 숨어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스스로가 실수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실수로 인해 벌어질 상황이 두려워, 그리고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이 무너질까 두려워 그 실수를 모른 척 지나쳐온다. 하지만 나중에 나라는 완성된 직물을 보았을 때 뻥 뚫려있는 몇몇의 구멍을 본다면 후회할 것이다. 그때 풀어서 고쳤더라면...이라고.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삶의 추위는 시리도록 찰 것이다.


 오늘은 가방 하나를 완성했다. 뜨개질로 완성된 물건들을 볼 때면 나는 언제 완성될 수 있을까 조금은 막막해지곤 한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나는 이미 구멍이 몇 개 뚫린 채,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계속 실이 엮이고 있는 건 아닌지 겁이 나기도 한다. 완벽한 직물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라는 직물을 보게 되었을 때 실수마저도 하나의 작품으로 보일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한다.


 지금의 어렵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의 뜨개질이 조금은 쉬워지길 바라며.


2020.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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