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흠은 바로 너다

그대 마음에 등불이 켜지면 영혼은 신을 향해 날아오르리라

by 이강언

항아리를 만드는 건 네가 아니다


흙을 고르고 반죽하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다시 몬순이 찾아왔다. 드디어 라마도 녹로를 돌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라마는 잘 이긴 흙 반죽을 올려놓고 발로 녹로를 돌리며 손으로 항아리의 모양을 잡아갔다. 하지만 발과 손이 따로 놀았다. 발에 힘을 주어 녹로를 돌릴 때마다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 흙 반죽을 으그러뜨렸다. 삼신할머니는 적어도 오늘만큼은 라마의 불쌍한 흙 반죽이 항아리로 태어나도록 점지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사띠야 스승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바깥의 빗소리와 녹로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사띠야의 웃음소리와 라마의 한숨 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흙 괴물들과 실랑이 하던 라마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라마의 의지는 더욱 때글때글해져만 갔다. 뭐든 시작하면 지독스럽게 파고드는 라마의 성정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띠야 스승은 이런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라마야! 항아리를 만들려고 애쓰지 말아라. 항아리를 만드는 건 네가 아니다.”

라마는 생각했다. ‘항아리를 만드는 게 내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항아리를 만든단 말인가?’ 온종일 이 생각과 함께 라마는 흙 괴물들과 전쟁을 벌였다. 물론 전쟁은 라마의 장렬한 패배로 끝이 났다. 아, 정녕 악어에게 웃는 법을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인가! 몬순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라마는 여러 날을 싸웠다. 물론 싸움에 전혀 진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흙 반죽과 라마는 연애를 시작한 연인처럼 여전히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며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오직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자기 위안과 잘 할 수 있다는 희망 고문만이 가뜩이나 눅눅한 이 계절을 버티는 힘이 되어주었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다는 라마의 초라한 자부심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악어에게 웃는 법을 가르치려 한 것인지, 어쩌면 둘 다였는지 사띠야 스승은 라마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라마는 스승의 곁에 섰고 사띠야는 녹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녹로는 저절로 움직이듯 부드럽게 돌아갔다.


이윽고 사띠야의 손이 흙 반죽을 어루만졌다. 라마에게는 악동처럼 굴던 야속한 흙 반죽이 사띠야에게는 길이 잘 든 강아지처럼 고분고분했다. 보고 있노라면 흙 반죽이 스스로 살아서 항아리가 되는 듯했다. 라마는 스승의 솜씨와 항아리의 아름다움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봄이 오면 대지에서 저절로 꽃이 피듯 흙 반죽은 그렇게 녹로 위에서 항아리로 피어났다.


초보 옹기장이 라마는 이걸 보며 ‘그래, 그렇지! 솜씨가 신의 경지에 이르면 항아리를 만든 건 내가 아닌 거지.’라고 생각했다. 라마는 지금은 부족하지만, 자신의 솜씨가 신의 경지에 다다르면 스승도 인정해주리라 확신하며 철석같이 정진을 다짐했다.



그대 마음에 등불이 켜지면 영혼은 신을 향해 날아오르리라


어둠이 주섬주섬 지붕 위로 내려앉아 숲이 고요히 잠들었을 무렵, 라마는 등불을 들고 캄캄한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낮에 만들다가 엎어놓은 항아리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불빛 너머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눈에 쓰윽 들어왔다. 라마는 흠칫 놀라 등불을 비춰 가만히 살펴보았다. 사띠야 스승이었다. 라마는 스승에게 합장한 후, 말했다.

“스승님, 어두운 방에서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뭘 좀 찾고 있었단다.”

“불도 안 켜고 말입니까?”

“그래, 불을 켜지 않으니 어두워서 찾을 수가 없구나.”

“중요한 건가요? 여기 등불이 있으니 다시 한번 찾아보십시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음, 아주 중요한 거지. 난 여기서 신을 찾고 있었단다. 그런데 네가 방에 불을 켰는데도 보이지 않는구나. 네가 한 번 찾아보아라.”


라마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여기서 신을 찾으라시면….”

“뭐가 잘못되었느냐? 어째서 여기서 신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냐?”

라마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서 어떤 섬광 하나가 스윽 지나감을 느꼈다.

“라마야. 방에 불을 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뭔 줄 아느냐? 그건 내면의 불을 켜는 거란다. 잠들지 않는 자각은 신의 존재를 비춰주는 마법의 등불이란다.”

“신을 찾는 너는 신과 다른 것이냐?”

“찾는 자와 찾는 것이 궁극적으로 다르다면 찾는 걸 찾았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찾던 그 사람은 여전히 남아 끊임없이 자신을 주장할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쿤달리니가 깨어나고 삼매를 체험한다고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그 상태로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찾는 자 자체가 이해되고 용해되지 않으면 두 세계를 끊임없이 오가게 된단다.”

사띠야 스승의 말은 라마의 현재 상태를 적절히 표현해주고 있었다. 명상과 일상이라는 두 세계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는!



유일한 흠은 바로 너다


몬순이 끝나갈 무렵에야 라마는 길고도 지리멸렬했던 이 전쟁의 승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흙 반죽과 녹로는 더 이상 라마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않았으며, 그리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라마는 승자의 의기양양을 뭉근히 누렸다. 더불어 제법 능숙하게 항아리를 만들었다. 사띠야 스승은 이런 라마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항아리를 만드는 건 네가 아니다.”


스승의 이 한마디는 악어를 쉽게 웃게 하진 않겠다는 듯이 다시금 라마를 뒤흔들었다. 허나 자신의 솜씨가 아직은 스승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라마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절은 바뀌어 하늘도 서서히 제 색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라마는 여전히 제 색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옛날 어두운 골짜기에서 방황하던 그런 라마는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도 라마는 진정한 집과 완전무결한 항아리를 꿈꾸고 있었기에 노력하는 자로 남아있었다.


한날,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사띠야 스승은 라마에게 항아리 네댓 개를 골라주며 혼자 저자에 가서 팔아보라고 했다. 모두 라마가 만든 항아리였고 제일 잘 만든 것들이었다. 라마는 또 다른 측면에서 그를 뒤흔들어 줄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항아리를 짊어지고 저자로 갔다.


분명 항아리를 받아들고 길을 나설 때만 해도 마음이 흔쾌했었는데, 저자에 가까워질수록 흔쾌함이 삭감되어갔다. 무슨 까닭에선지 저자의 거리와 라마의 마음이 정확히 반비례하고 있었다. 라마가 저자 한복판에 섰을 때 반비례는 정점에 달했고 마음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걸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이었을까. 아니면 초라한 행색으로 여기서 이걸 파는 자신이 창피해서였을까. 마음이 숨을 곳을 찾다가 ‘전에 항아리를 어디서 파셨는지 스승님께 여쭤나 보고 나올걸’하는 후회 속으로 간신히 피신하나 싶더니, 이내 라마는 자신이 아직도 어떤 껍질에 싸여 있음을 직시했다. 뭐랄까. 수행자의 자긍심 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랬다. 라마는 여전히 수행자 정체성에 동일시되어있었고, 그것이 되레 생활인 라마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수행자와 생활인, 거기에서 오는 괴리가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함을 안겨주었다.

라마는 깊이 호흡하며 마음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항아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수행자 자존심도 내려놓기 시작했다. 마음이 점점 평온을 찾아갔다. 그제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라마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냥 피식 웃음이 났다. 아마 방금 겪은 마음의 사건 때문이리라.


오후가 되자 제법 햇살이 눈 부셨다. 라마는 주섬주섬 숄을 머리부터 둘러써 햇볕을 가려보았다. 그때 하얀 도띠를 아랫도리에 두른 한 노인이 다가와 항아리를 하나 고르더니 제 것인 양 그냥 들고 가려고 했다. 라마가 순간적으로 그 노인의 팔을 붙잡았다. 그 노인은 라마를 지긋이 쳐다보며 말했다.

“자넨 자네 스승과 같지 않구먼.”

라마는 전혀 예기치 않은 노인의 말에 흠칫 놀라서 물었다.

“제 스승님을 아십니까?”


노인은 그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라마에게 물었다.

“이 항아리들을 자네가 만들었나?”

“네, 제가 만들었습니다만….”

“그래… 이 항아리의 유일한 흠이 바로 자네가 만들었다는 걸세.”

노인의 말이 사띠야 스승의 말과 묘하게 겹치면서 별안간 라마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까매졌다 했다. 이런 라마를 혼내듯 노인은 다시 한번 일갈했다.

“자네, 알겠는가? 자네가 만들었다는 게 이 항아리의 유일한 흠이란 말일세.”


노인의 이 한마디에 라마의 마음이 갈 곳을 잃고 얼어붙었다. 그런 라마를 뒤로하고 노인은 항아리를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한동안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라마의 시선도, 표정도, 심지어 호흡마저도. 그 뒤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남아있던 항아리마저 온데간데없고 사람들이 항아리값으로 놓고 간 동전과 지폐 몇 장이 나뒹굴고 있었다.


공방으로 돌아온 라마는 사띠야 스승에게 저자에게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사띠야 스승은 껄껄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 영감이 너를 시험한 게로구나.”

“시험이라니요? 그 영감님을 아십니까?”

사띠야 스승은 그저 재미있다는 듯 웃기만 했다.


라마는 자신이 만든 항아리가 처음 보는 노인의 눈에도 티나 날 정도라는 게 내심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라마는 더욱 부지런히 정진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일을 겪고도 라마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완전한 항아리 그리고 그보다 더 완전한 존재


라마는 야생 망고나무의 꽃이 피고 지기를 몇 번 반복했다는 걸 스치듯 어렴풋이 알았지만, 이 숲에 와서 벌써 네 번째 몬순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건 정확히 몰랐다. 이제 라마의 항아리는 완벽했다. 스승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라마는 내심 스승의 인정을 바랐다. 하지만 스승은 여전히 “항아리를 만들려고 애쓰지 마라. 항아리를 만드는 건 네가 아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라마는 골똘히 생각했다. ‘내 항아리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스승은 그런 말씀을 계속하시는 걸까? 내 항아리는 이미 스승의 그것과 견줄만하지 않는가! 내가 모르는 흠결이 있는 걸까?’ 그날 밤 ‘병 속의 거위’ 같은 한 생각에 라마는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새벽녘에야 잠이 든 라마는 공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겨우 잠이 깼다. 코끼리처럼 가늘게 눈을 떠 창밖을 보았다. 온통 회색빛 하늘이긴 했지만, 아침임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라마는 잠시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은 후 공방으로 들어섰다. 사띠야 스승이 손수 항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라마는 스승의 솜씨와 항아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피어난 꽃처럼 차츰 항아리의 모양이 나오기 시작하자 어쩐 일인지 라마의 시선이 저절로 스승을 향했다.


라마는 깜짝 놀랐다. 스승과 녹로와 항아리가 순간 정지화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뿔싸! 라마는 여태껏 항아리와 스승의 기술을 지켜보느라 스승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스승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항아리는 완전히 균형 잡혀 멈춘 듯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시간이 잠시 멈췄던 것일까. 거기에 항아리를 만들려고 애쓰는 노인은 없었다. 스승은 그저 존재했으며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의 현존이 안개처럼 공방을 가득 메웠다.


라마는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문제는 항아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부지불식간에 녹로 앞에만 앉으면 집중을 가장한 긴장이 라마를 칭칭 감았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완전한 항아리에 대한 일념이 ‘있음’을 방해하고 있었다. 라마는 다시 흙 반죽과 녹로를 마주하고 앉았다. 내면에서 굳어있던 어떤 것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며 마음이 한없이 평온했다.


라마는 녹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로를 돌리는 자는 거기에 없었다. 이윽고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항아리 또한 마치 지금 만들어져야만 하는 어떤 인연에 이끌린 듯이 그렇게 완성되었다. 항아리를 만든 건 그 누구도 아니었고 또한 모든 것이기도 했다.


어느새 스승은 라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서 있었다. 라마가 돌아보자 사띠야 스승이 웃으며 말했다.

“라마야! 이 항아리를 만든 게 누구냐?”

라마 또한 웃으며 대답했다.

“말할 수 있는 건 제가 만들지 않았다는 것뿐입니다.”


열어달라고 아무리 떼를 써도 제시간이 아니면 열리지 않는 성채의 거대한 문처럼, 모든 것에는 운명의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라마는 그간의 여정에서 여러 스승을 만나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 깨달음의 섬광을 일별했지만 다시 라마로 돌아오곤 했다. 라마는 자신이 그것을 체험했다고 여겼기에 여전히 그것과 분리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라마는 체험과 체험한 자를 넘어서질 못했다.


이제 라마의 자아는 허공으로 사라졌고 명상과 일상은 완전히 조화를 이루었다. 라마도 모르는 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완벽한 항아리를 만들어야 한다, 스승처럼 완전한 항아리를 만들고 싶다’가 사라지고 ‘그저 항아리를 만드는 일이 일어난다’로 대체되었다.


사띠야 스승이 기뻐하며 말을 이었다.

“드디어 네가 진정한 집을 찾았구나. 정녕 너의 주인이 된 게야. 이제부터는 이 공방과 숲의 주인도 너다.”

라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스승과의 이별을 직감했다. 그것도 이 삶에서의 마지막 이별이란 걸. 라마는 그를 더는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라마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사랑으로 자신을 품어준 스승의 발아래에 엎드렸다. 사띠야 스승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존재마저 주고 가려는 듯 허리를 숙여 라마의 머리에 두 손을 얹었다.


사띠야의 현존이 라마를 따뜻하게 감싸며 녹아들었다. 그를 다시 이곳에서 만났을 때처럼 라마의 두 눈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그를 영영 떠나보낸다는 슬픔 때문도, 다시는 못 만나리라는 아쉬움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가려는 곳이 곧 자신이 있는 곳임을 이젠 확실히 알았기에! 그건 그저 그의 존재가, 그의 자비가 라마를 뜨겁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띠야 스승은 오직 이런 날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서둘러 육신을 떠나셨다. 하지만 그는 존재로서 라마의 가슴과 하나가 되어 여기에 남았다. 라마는 스승의 육신을 갠지스강 강가의 뜨거운 불길 속으로 돌려보냈다. 생전 사띠야 스승의 웃음소리와 그의 가르침이 가슴속에서 한바탕 소용돌이치며 공간을 울렸다.

“껄껄껄. 라마야! 넌 언제까지 마음을 붙들고 씨름할 테냐? 네가 아무리 좋은 마음을 만들려고 애써봐야 세계에서 벗어날 순 없는 법이다. 만들려고 하는 그 좋은 마음도 만들려고 애쓰는 자도 똑같이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조금 더 행복하길 원한다면 마음을 열심히 수련하려무나. 허나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그저 마음을 벗어나거라. 너의 몸과 마음은 세계에 속한 것이고 세계 자체가 바로 속박이다. 참나는 세계에 속해있지 않다. 오히려 세계가 그 안에 있지.”

라마의 입가에 미소가 스르르 번졌다. 라마는 손을 모아 이생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사띠야 스승에게 건넸다.

‘사랑하는 스승님…. 안녕히….’

라마는 모처럼 갠지스강을 따라 걸었다. 진정한 집을 찾아 여정을 시작했을 때처럼 강을 거슬러 갔다. 라마의 발길이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상감이었다. 여전히 검푸른 갠지스강과 회녹색의 야무나강이 거기에서 만나고 있었다. 라마는 강둑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삶의 강 갠지스와 죽음의 강 야무나…. 그리고 그 사이로 영원의 강 사라스와티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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