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독서모임

세상을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예의

by 소원책담


소원책담 300번째 모임이었던 이번 소목회는 특별했습니다. 한 회원님이 참여자 모두에게 『이해찬 회고록』을 선물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두꺼운 책을 받아 든 우리는 고맙고도 들뜬 마음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에세이집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레스프레소』에 연재된 ‘미네르바의 성냥갑’ 칼럼을 엮은 것으로,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주제들을 특유의 시니컬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다만 이탈리아 정치·사회적 맥락이 낯선 우리에게는 이해가 쉽지 않았고,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꼰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렵게만 느껴지던 에코의 사유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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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설

사생활 보호를 외치면서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노출하는 현대인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SNS의 자기 과시뿐 아니라 ‘나는 솔로’, ‘이혼 숙려 캠프’ 같은 관찰 예능에서는 개인의 치부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는 정체성의 위기 속에서 ‘보임’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는 현대 사회의 단면이라는 에코의 지적에 공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프라이버시가 소비 가능한 상품으로 변해가는 현실에 대해서도 씁쓸함을 나누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교사의 역할

에코는 한 학생이 던진 질문, “인터넷 시대에 선생님은 여기서 하는 일이 뭐예요?”를 통해 교사의 역할을 다시 묻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넘쳐나는 정보의 옥석을 가리고 맥락을 짚어주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편화된 정보를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시키는 일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참석자들은 AI가 많은 역할을 대체해 가는 지금일수록, 교사는 학생의 고민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동시에 토론과 사유를 길러야 할 공교육이 입시 중심 체제에 머무르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이어졌습니다.


영웅이 필요한 불행한 사회

에코는 대중 매체가 ‘자기 의무를 다한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현상을 비판합니다. 원래 영웅은 의무를 넘어 타인을 위해 비범한 행동을 한 사람인데, 평범한 직무 수행까지 영웅으로 부르는 사회는 그만큼 기본적 책임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영웅 만들기가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참석자들은 과도한 열정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문화의 부조리를 이야기했고, 일상 속 선행 사례들을 떠올리며 ‘생활 속의 영웅’이 무엇인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사랑과 증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에코는 이를 최소한 ‘증오하지 말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개인적이고 실천하기 까다로운 반면, 증오는 집단을 결속시키는 도구로 쉽게 동원되기 때문입니다. 참석자들은 증오와 혐오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증오는 마주 보는 미움이고, 혐오는 상대를 경시하고 배제하는 감정이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타인을 사랑하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증오와 혐오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미친 세상’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방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디어의 역할과 느리게 읽기

에코는 인터넷의 소음 속에서 신문의 역할을 ‘사실 검증과 필터링’으로 봅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오늘날 레거시 미디어가 그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또 디지털 스크롤 중심의 읽기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문제도 함께 논의했습니다. 몇몇 회원이 여전히 종이신문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라기도 했습니다. 알고리즘이 선별해 주는 정보만 접하는 시대일수록, 한꺼번에 펼쳐진 정보를 마주하는 종이 읽기가 오히려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나누었습니다.


참여자들은 결국 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란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사유하는 태도일지 모른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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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일시 : 2026. 2. 12(목) 오후 7시 30분

참석인원 : 8명

장소 : 소원책담

45번째 소목회에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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