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by 최선화

명동성당

고등학교 시절, 방과 후 무작정 찾아간 명동성당의 육중한 문을 가만히 밀치고 들어갔다. 텅 빈 성당에 혼자 앉아있을 때 들려온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힘으로 나를 감싸주었다. 그 순간 분명 천사가 그곳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고 신이 나를 내려 보고 있는 듯해서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뭔가 내 속에 있는 신성을 재 기억시키고 불러내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묶인 세속적 산물만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신성을 지닌 존재다. 그러기에 내 속에는 천사나 부처의 특성과 자질들을 온전히 지니고 있지만, 미처 다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적절한 상황과 관계가 이루어지면 나의 이런 본성은 언제든 발휘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살다 보니 때가 묻고 더럽혀진 부분들이 먼저 드러나지만, 아직도 온전히 보존된 나의 실체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으며 적절한 여건이 되면 언제든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 우리 모두 속에는 다치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있는 미답의 세계가 존재하며, 적절한 기회가 되면 이곳의 문이 열리고 우리의 삶과 일상 속에서 분명히 그 숨겨진 실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렇게 우리 존재의 진면목이 드러날 때 진정한 존재의 빛을 발하고 가슴이 유순해지며 삶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이런 신성은 나를 통해서 그런 특성이 일상생활 속에서 표현되었을 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품성을 가져도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아무도 모르게 된다. 그런 나의 본질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빛이 되어주는 존재를 따라서 닮아가면서 내 속의 빛과 만나 융합하게 되어 점점 더 큰 빛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비워내며 자신 속에 있는 빛을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내고 표현해내야 한다. 새날은 하늘의 축복과 함께 스스로 준비하고 표현해 나갈 때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인류사에는 이미 많은 성인들이 걸어온 발자취들이 남아있다. 그들은 인간이 단지 세속적 존재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신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자신들의 삶을 통해서 시범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귀한 유산을 기억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나가는 것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진실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가고 드러내는 일이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고등학교에서 접하게 된 예수라는 인간의 행적은 신의 아들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리고 인간이 저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그러니 신의 아들이겠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도 근원인 생명에게서 나온 존재 아닌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져 내 존재에 대한 깊은 탐색과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다.

부처나 예수, 공자와 노자 등 주위에서 배우고 알게 된 특별한 존재들에 대한 동경과 함께 현실적으로 내가 직면한 존재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이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도 흔한 도가 무엇인지도 알고 싶었고 그것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알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호기심은 말이나 글보다는 실제로 그런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면을 통해서 차츰 내 속에서도 이해가 넓혀지기 시작했다. 유유상종으로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서로 끌리게 되고 서로 만나게 마련이다. 이들이 나에게 비춰준 빛을 통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빛이 깨어나기 시작해서 더 큰 빛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빛은 결국 궁극의 빛인 근원의 빛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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