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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Dec 09. 2022

30분 간 화장실에서 상사에게 업무 보고한 A직원

'기승전나 대화법'이지 않은가 돌아보기

눈칫밥 안 먹어본 A군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누구 업무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시기적으로 달라진다. 주력사업이라면 그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에 좀 더 힘을 실어 준다거나, 적기에 따라 어떤 사업에 좀 더 투자하는 등 총력을 기울 때가 있다. 그러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또 인정 욕구가 가득한 이들한테는 별나라의 이야기다.


A직원이 있다. 어떤 부서가 어떠한 주력사업을 행하든 자신의 업무만을 상사가 최우선으로 두길 원한다. 바쁜 상사에게 끊임없이 보고하고 관심을 끌며 높은 평가받으려 한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오전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보고서를 뽑아 미팅에서 막 나온 팀장님께 식사시간 바로 전 보고 채비를 마쳤다.


점심 먹으러 막 나가려던 참이라 팀장님은 점심 먹고 와서 하자고 얘기하지만, 하나만 말씀드림 된다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덕택에 다른 직원들까지 식사하러 떠나지 못한다. 생각보다 길게 지속되는 업무보고.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답변(그것이 칭찬이든 무엇이든 말이다!)을 얻을 때까지 말이다. 길어지는 보고 속에 팀장님은 직원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지만, 그만 30여 년간 여태껏 눈칫밥을 안 먹어봤나 보다. 


몇 주가 지났다. 그 직원은 자신의 일이 돋보이지 않아 걱정이 됐는지 끊임없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업이 우선이든 자신의 업무가, 특히 자신이 빛나야 직성에 풀리나 보다. 보고서에 들어간 수치나 통계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다른 팀에 자료 요청을 부탁할 때가 많다. 


그게 아침 8시가 되었든 점심시간이 되었든 또 자기 전 밤 11시가 되었든 이 직원은 자신이 원하는 자료를 바로 받고 또 확인하며 보고서를 완성해야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필요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다른 직원에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을 보내 자료 확인 요청을 한다. 업무 이외의 시간에도 말이다. 그것도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요구한다. 



'기승전 대화법'이지 않은가 돌아보기


상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로채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의 말이 끝날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어느 정도의 사회성을 기르긴 했으나 그 말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야기만 끊임없이 늘어낼 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더버(Charles Derber)는 대화 주도권을 자신에게 돌려놓으려는 욕망을 그의 저서 <관심의 추구(The Pursuit of Attention)>에서 '대화 나르시시즘(Conventional Narcissism)'이라 표현한다. 대화의 초점을 자기 자신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이 대화 나르시시즘의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이는 대화를 하는데 많은 걸림돌이 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겪으며 또 수많은 일을 겪으며 우리는 조금씩 다듬어진다. 그러나 A직원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전환 반응(shift-response)을 보이기 일쑤다. 식사자리에서 주 업무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도 바로 자신의 업무로 기가 막히게 전환한다. 절 좀 봐주세요!

전환 반응(shift-response) : 관심을 자기 자신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
지지 반응(support-response) : 관심을 상대에게 두는 것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에 그래도 열심히 일하는 그를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절정은 남자 화장실에서 펼쳐졌다. A직원은 바쁜 일정으로 자주 만나 뵐 수 없었던 부서장님을 화장실에서 마주치게 된다. 화장실은 이내 회의장소로 바뀌었다. 화장실 벽을 타고 흘러나오는 울림 목소리와 함께 그의 업무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화장실 앞을 지나가던 누구나 다 그의 업무를 알 수 있었다. 그 보고는 30분이 넘게 지속되었다.



업무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진 않은가 되돌아보기 


그는 '업무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업무가 주력이든 상사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대화를 주도하여 업무(보고)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러나 무의식적인 경우가 많아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관심을 받고 싶고 또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의 지배적 심리가 바로 여기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A직원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걸까? 아님 그는 유달리 인정 욕구가 강한 것일까? 그의 '기승전 대화법'은 업무보고에 그치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직원이 주인공이 되어 청첩장을 나눠주던 그 순간에도 그는 또다시 자신이 대화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신혼여행을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주인공의 말을 가로채며 그곳에서는 기린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며 자신이 티브이에서 본 이야기를 흥분한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그의 신혼여행인 듯 말이다.


화장실 보고와 아프리카 기린 이야기는 회사 전체에 널리 퍼졌다. 상대방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화, 즉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필요하다. 주인공이 되려는 욕심을 때에 따라 양보하는 미덕도 보일 줄 알아야 한다. 잠시 당신의 업무가 조연이 된다고 슬퍼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곧 주연이 될 수 있는 기회도 분명 다가오기 때문이다. 조연도 되었다가 주연도 언젠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회사 내에서 내 역할이자 또한 인생이 아닐까?


작은 역할은 없다. 무대를 채우기 위해선 조연도 꼭 필요하다. © Javad Esmae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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